옛 향기를 찾아서/석조건축물

유일하게 연화문이 새겨져 있는 보문동 북사지 당간지주(普門洞 北寺址 幢竿支柱)

추야우중 2024. 12. 2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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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동 북사지(普門洞 北寺址)는 진평왕릉에서 동남쪽으로 약 400m 떨어진 논 중앙(경주시 보문동 848-6번지 외)에 위치하고 있고 그곳에는 연화문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910) 1기와 석탑재 몇 구가 흩어져 있다. 주변에는 진평왕릉을 비롯하여 보문동 사지, 황복사지, 보문동고분군 등 다수의 유적들이 있다.

보문동 북사지(普門洞 北寺址) 에 대한 문헌기록은 현재 전무하며, 사찰의 명칭이나 연혁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보문동 사지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보문동 북사지로 부르게 되었다. 이 사지에 대한 정식 발굴조사는 아직까지 실시된 적이 없으며, 단지 유적 내에 위치한 연화문 당간지주를 중심으로 몇몇 조사·연구가 실시된바 있다.

경주시 동쪽에 위치한 명활산(明活山, 해발 252m)의 서쪽 능선에 남북 방향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보문동 고분군(普門洞古墳群)이 있다. 이 고분군은 5~7세기에 조성 된 것으로 보문리 부부총과 완총, 금환총이 확인되었는데 여기 보문동 사지는 이들 지배세력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문동 북사지(普門洞 北寺址)에 있는 연화문 당간지주 (幢竿支柱 ,  보물 제 910 호 )

연화문 당간지주 주변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어 사찰 전체의 영역이나 가람배치에 대하여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연화문 당간지주로부터 북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 석탑 부재 4매가 흩어져 있어, 보문동 사지(목탑지)와는 다른 별개의 사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사역 내 남아 있는 연화문당간지주와 석탑재 등을 참고했을 때, 적어도 통일신라 9세기경에는 사찰이 유지되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인 건축학자인 후지시마 가이지로는 그의 저서에서 보문리사지를 설명하는 가운데, ‘北方 幢竿支柱라는 제목으로 이 당간지주에 관하여 상세히 기술하였다. 당시 후지시마는 보문리사지두 개의 당간지주 즉 보문동 사지 당간지주와 연화문 당간지주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1973년 이호관 선생은경주지구유적조사 약보에서 보문리 당간지주와 폐탑재라는 제목으로 당간지주를 포함한 주변에 산재 된 석물 등의 현황을 보고한 적이 있는데 이 보고서에는 연화문 당간지주와 함께 한 변이 127, 높이 40의 폐탑재(기단석부재)가 잔존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문동 북사지(普門洞 北寺址) 연화문 당간지주(幢竿支柱)는 경주 진평왕릉 남쪽 논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 높이는 약 144인데 지주 하부에 치석된 부분을 보았을 때, 일정부분이 땅속에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양 지주는 동서방향으로 마주하고 있으며, 그 간격은 약 60이다. 양 지주의 상부내면에는 폭 13의 간구가 확인되는데, 당간을 고정하는 장치가 있었던 부분으로 생각된다.

또한 지주 외 측면에는 최상부로부터 아래로 약 52까지 한단을 낮게 하여 사각형의 틀을 마련한 뒤, 그 안에 직경 47의 연화문을 장식하였다. 연화문은 8엽의 복판연화문으로 중앙에는 자방이 있고, 그 안에 17개의 연자를 도드라지게 새기었다.

통일신라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장식을 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당간지주는 화려한 연화문 장식이 있어 매우 특이한 예로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당간지주(幢竿支柱) 중 연화문이 있는 유일한 예로 볼 수 있다.

사찰에 의례, 행사가 열릴 때 깃발을 달아 알렸는데, 깃발을 당(幢), 깃대를 당간(幢竿), 긴 당간이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주는 지지대를 당간지주(幢竿支柱)라 한다. 대개 사찰의 입구에 세워진다.

연화문당간지주에서 북서쪽으로 약 10m 떨어진 논둑에 석탑부재 4매가 흩어져 있다. 부재 4매 중 3매는자형 귀틀석으로 가로 100, 세로 131, 높이 45이며 3매 모두 같은 크기이다. 원래는 4개의 부재가 결구된 석탑 하층기단석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지표상에는 3개의 부재만 확인될 뿐이다. 1개의 부재가 보완된다면, 전체가 가로·세로 약 230의 정방형 하층기단석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각 부재 가장 자리에는 폭 2427, 높이 약 22의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윗면은 경사가 없이 편평하다.

나머지 부재 1매는 가로 73, 세로 69, 높이 91의 평면 삼각형의 석재이다. 두 면은 치석되었으나, 다른 한 면은 치석되지 않은 상태이다. 특히 치석된 두 면 중 한쪽 면에는 폭 15의 기둥이 모각되어 있지만, 다른 한 면은 조각 흔적 없이 편평한 것으로 보아 다른 석재와 결합된 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석탑부재 역시 원래는 4개의 부재가 결구된 상층기단면석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이며, 모각된 기둥은 상층기단의 우주로 이해 할 수 있다.

현재 사지 주변은 모두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어 사찰과 관련된 유구 훼손이 심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잔존하는 석탑재의 경우 보호시설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아 훼손이나 망실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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