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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낭산(狼山) 선덕여왕릉 아래 있는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는 신라가 삼국통일 후 가장 먼저 지은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 배치의 사찰이다. 문무왕 674년(14년) 당나라가 그들의 도독부(계림도독부)를 공격한다는 핑계로 50만 대군으로 신라를 공격하려 하였는데 이때 서해로 오는 당 수군의 침략을 막기 위해 밀교 신인종의 시조인 명랑법사가 여러 개의 비단으로 임시로 절을 만들었다. 그리고 풀로 오방신의 상을 세워서 유가의 명승 12명과 더불어 문두루 비법을 사용하여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풍랑으로 당 수군을 서해에 수장시킨 호국사찰이다.

사천왕사 터 당간지주幢竿支柱)는 679년을 전·후한 시점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5년 후 문무왕 679년(19년) 8월에 양지스님 감독아래 절을 다시 고쳐 세워 사천왕사(四天王寺)라 했고 고려 태조가 나라를 세울 때 해적이 나타나 이를 물리치기 위해 명량계통의 두 스님 광학(廣學)ㆍ대연(大緣) 등 두 고승(高僧)을 청해 법을 만들어 해적을 물리쳤다.
또한 도솔가로 유명한 월명스님이 사천왕사(四天王寺)에 있으면서 피리를 잘 불었고 어느 날 달밤에 피리를 불면서 문 앞 큰길을 지나가니 달이 그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고 서 있어 이 때문에 그곳을 월명리(月明里)라고 했고 월명사(月明師)도 이 일로 생겨난 이름이다.

사각형과 원형이 조합된 형식의 3간공 관통형 당간지주이다.

현재 절터에는 금당 터, 목탑 터, 강당 터, 단석 터 그리고 머리 부분이 없어진 귀부 2기와 당간지주 1기가 남아있다. 특히, 절 동쪽에 남아있는 귀부는 사실적인 표현수법과 등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으로 신라시대 뛰어난 작품임을 보여주고 있다.
절의 구성은 금당을 중심으로 좌, 우에는 목탑이 배치되었고 이들을 둘러 싸는 동, 서익랑을 포함하여 동, 서, 남, 북으로 회랑을 형성하였으며 남쪽에는 중문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북쪽 밖에는 강당(講堂)과 단석(壇席)이 배치되어 있고 남쪽 동, 서에는 귀부 2기, 서쪽에는 당간지주 1기가 배치되어 있다.

서 귀부로 원래 서탑 또는 능지탑인 북쪽을 향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철도공사에 따라 남쪽으로 바꿔졌다.
귀비는 문무대왕 능비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문무대왕의 일대기, 태종 무열왕과 조상의 가계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금당에 불상과 함께 문두루비법의 핵심인 오방신을 두었는지 아니면 가람구조 자체가 오방신을 모시는 시설인지 향후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 즉 오방신을 모시는 시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사찬왕사 목탑 터는 통일신라 최초의 쌍탑 터로 초석이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층수는 비슷한 시기 망덕사 목탑터 초석이 정면 3칸, 측면 3칸에 삼국유사 기록에는 13층이고 황룡사, 분황사의 탑이 9층 또한 남산 탑골 마애조상군의 북면 목탑을 모각한 마애탑이 7층, 9층임을 감안하면 사천왕사 목탑도 층수가 다층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통일신라 최초의 3층 석탑의 쌍탑은 감은사지 3층 석탑으로 여겨진다.

동 귀부는 남쪽으로 머리 방향을 두고 있고 귀비는 사천왕사 사적비로 추정된다.

사천왕사 동 목탑의 내부에는 부처님 일생을 그린 팔상도 또는 부처님 일생에 관련된 내용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장엄하게 만들었으며, 서 목탑 내부에는 문무왕의 일대기와 현세와 내세의 복을 비는 시설을 만들었으리라 추정된다.
쌍탑 출현은 삼국통일 후 정치적 경제적, 후유증을 해결하기 위해 왕권을 강력한 우상으로 만들 필요가 있기에 하나는 석가모니 불탑과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재세 시에 왕권 상징의 위엄과 현세의 복을 바라는 뜻으로 쌍탑을 조성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복원 된 서 목탑 터의 기단 모습
양지(良志) 스님이 조각한 사천왕상을 복원한 녹유신장상(綠釉神將像) 벽전(甓塼)
서 목탑 내부에는 문무왕의 일대기와 현세와 내세의 복을 비는 시설을 만들었으리라 추정된다.
서 목탑 터와 동 목탑 터

사천왕사 터 남쪽 중문의 동편에 자리 있는 동 귀부는 남쪽으로 머리 방향을 두고 있고 귀비는 사천왕사 사적비로 추정된다. 반면 중문의 서편에 자리 있는 서 귀부는 원래는 서탑 또는 능지탑인 북쪽을 향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철도공사에 따라 남쪽으로 바꿔졌다. 귀비는 문무대왕 능비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문무대왕의 일대기, 태종 무열왕과 조상의 가계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사천왕사 터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사찰의 창건 시기인 679년을 전·후한 시점에 조성한 것으로 판단되고, 신라 분황사 당간지주 이후에 조성된 초창기 석조물에 해당된다. 사각형과 원형이 조합된 형식의 3간공 관통형 당간지주로 동일한 3간공 관총형 당간지주인 분황사와 보문동사지 당간지주의 중간 형식 단계로 추정할 수 있다.
삼국유사 제 2권 기이(紀異) 2 문호왕(文虎[武]) 법민(法敏)
총장(總章) 무진(戊辰; 668)에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인문(仁問), 흠순(欽純) 등과 함께 평양(平壤)에 이르러 당(唐)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고구려(高句麗)를 멸망시켰다.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은 고장왕(高藏王)을 잡아가지고 당나라로 돌아갔다.
이때 당나라의 유병(游兵)과 여러 장병(將兵)들이 진(鎭)에 머물러 있으면서 장차 우리 신라(新羅)를 치려고 했으므로 왕이 알고 군사를 내어 이를 쳤다. 이듬해 당나라 고종(高宗)이 인문(仁問) 등을 불러들여 꾸짖기를, “너희가 우리 군사를 청해다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나서 이제 우리를 침해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하고 이내 원비(圓扉)에 가두고 군사 50만 명을 훈련하여 설방(薛邦)으로 장수를 삼아 신라를 치려고 했다.

동 목탑 터의 초석들. 동 목탑의 내부에는 부처님 일생을 그린 팔상도 또는 부처님 일생에 관련된 내용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장엄하게 만들었으리라 추정된다.
동 목탑 터의 심초석

 

동탑 터와 서탑 터

이때 의상법사(義相法師)가 유학(留學)하러 당나라에 갔다가 인문을 찾아보자 인문은 그 사실을 말했다. 이에 의상이 돌아와서 왕께 아뢰니 왕은 몹시 두려워하여 여러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것을 막아 낼 방법을 물었다. 각간(角干) 김천존(金天尊)이 말했다. “요새 명랑법사(明朗法師)가 용궁(龍宮)에 들어가서 비법(秘法)을 배워 왔으니 그를 불러 물어보십시오.” 명랑이 말했다. “낭산(狼山) 남쪽에 신유림(神遊林)이 있으니 거기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우고 도량(道場)을 개설(開設)하면 좋겠습니다.”
그때 정주(貞州)에서 사람이 달려와 보고한다. “당나라 군사가 무수히 우리 국경에 이르러 바다 위를 돌고 있습니다.” 왕은 명랑을 불러 물었다. “일이 이미 급하게 되었으니 어찌 하면 좋겠는가.” 명랑이 말한다. “여러 가지 빛의 비단으로 절을 가설(仮設)하면 될 것입니다.” 이에 채색 비단으로 임시로 절을 만들고 풀[草]로 오방(五方)의 신상(神像)을 만들었다.
그리고 유가(瑜伽)의 명승(明僧) 열두 명으로 하여금 명랑을 우두머리로 하여 문두루(文豆婁)의 비밀한 법(法)을 쓰게 했다.
그때 당나라 군사와 신라 군사는 아직 교전(交戰)하기 전인데 바람과 물결이 사납게 일어나서 당나라 군사는 모두 물속에 침몰(沈沒)되었다. 그 후 절을 고쳐 짓고 사천왕사(四天王寺)라 하여 지금까지 단석(壇席)이 없어지지 않았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금당 터의 초석들
금당터의 본존불과 협시불의 지대석 좌우에 있는 유공초석(有孔礎石)

그 후 신미년(辛未; 671)에 당나라는 다시 조헌(趙憲)을 장수로 하여 5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왔으므로 또 그전의 비법을 썼더니 배는 전과 같이 침몰되었다. 이때 한림랑(翰林郞) 박문준(朴文俊)은 인문을 따라 옥중에 있었는데 고종(高宗)이 문준을 불러서 묻는다. “너희 나라에는 무슨 비법이 있기에 두 번이나 대병(大兵)을 내었는데도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느냐.”
문준이 아뢰었다. “배신(陪臣)들은 상국(上國)에 온 지 10여 년이 되었으므로 본국의 일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멀리서 한 가지 일만을 들었을 뿐입니다. 저희 나라가 상국의 은혜를 두텁게 입어 삼국을 통일하였기에 그 은덕(恩德)을 갚으려고 낭산(狼山) 남쪽에 새로 천왕사(天王寺)를 짓고 황제의 만년 수명(萬年壽命)을 빌면서 법석(法席)을 길이 열었다는 일뿐입니다.” 고종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이에 예부시랑(禮部侍郞) 낙붕귀(樂鵬龜)를 신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그 절을 살펴보도록 했다.

금당 터의 본존불의 사각 지대석과 좌우협시불 지대석
금당이 문두루비법의 핵심인 오방신을 두었는지 아니면 가람구조 자체가 오방신을 모시는 시설인지 향후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

왕은 당나라 사신이 온다는 사실을 먼저 알고 이 절을 사신에게 보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여 그 남쪽에 따로 새 절을 지어 놓고 기다렸다. 사신이 와서 청한다. “먼저 황제의 수(壽)를 비는 천왕사에 가서 분향(焚香)하겠습니다.” 이에 새로 지은 절로 그를 안내하자 그 사신은 절 문 앞에 서서, “이것은 사천왕사(四天王寺)가 아니고, 망덕요산(望德遙山)의 절이군요”하고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국인(國人)들이 금 1,000냥을 주었더니 그는 본국에 돌아가서 아뢰기를, “신라에서는 천왕사(天王寺)를 지어 놓고 황제의 수(壽)를 축원할 뿐이었습니다.”했다. 이때 당나라 사신의 말에 의해 그 절을 망덕사(望德寺)라고 했다.
삼국유사 제 5권 신주(神呪) 6 명랑신인(明朗神印)
〈금광사(金光寺) 본기(本記)〉를 상고해 보면 이러하다. “법사 명랑(明朗)이 신라에 태어나서 당나라도 건너가 도를 배우고 돌아오는데 바다의 용의 청에 의해, 용궁(龍宮)에 들어가 비법(秘法)을 전하고, 황금 1,000냥을 보시(布施)받아 가지고 땅 밑을 잠행(潛行)하여 자기 집 우물 밑에서 솟아나왔다. 이에 자기 집을 내놓아 절을 만들고 용왕(龍王)이 보시한 황금으로 탑과 불상(佛像)을 장식하니 유난히 광채가 났다. 그런 때문에 절 이름을 금광사(金光寺)라고 했다.”
법사의 이름은 명랑이요, 자는 국육(國育)이며, 신라 사간(沙干) 재량(才良)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남간부인(南澗夫人)으로서 혹 법승랑(法乘娘)이라고도 하는데, 소판(蘇判) 무림(戊林)의 딸 김씨(金氏)로서 즉 자장(慈藏)의 누이 동생이다. 재량(才良)에게 세 아들이 있는데, 맏이는 국교대덕(國敎大德)이요, 다음은 의안대덕(義安大德)이며, 법사는 막내다. 처음에 그 어머니가 꿈에 푸른빛이 나는 구슬을 입에 삼기고 태기가 있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서단석(西壇席) 터. 단석(壇席)은 문두루도량의 법단으로 추정된다.
서단석(西壇席) 터의 초석으로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다.

신라 선덕왕(善德王) 원년(632)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정관(貞觀) 9년 을미(乙未; 635)에 돌아왔다. 총장(總章) 원년 무신(戊辰; 668)에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이 대병을 거느리고 신라 군사와 합세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그 남은 군사를 백제(百濟)에 머물러 두고 장차 신라를 쳐서 멸망시키려 했다.
신라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군사를 내어 이를 막았다. 당나라 고종(高宗)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설방(薛邦)에게 명하여 군사를 일으켜 장차 신라를 치려 했다. 문무왕(文武王)이 이것을 듣고 두려워하여 법사를 청해다가 비법을 써서 빌어서 이를 물리치게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신인종(神印宗)의 시조가 되었다.
 태조(太祖)가 나라를 세울 때 또한 해적이 와서 침범하니, 이에 안혜(安惠)ㆍ낭융(朗融)의 후예인 광학(廣學)ㆍ대연(大緣) 등 두 고승(高僧)을 청해다가 법을 만들어 해적을 물리쳐 진압했으니, 모두 명랑의 계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법사를 합하여 위로 용수(龍樹)에 이르기까지를 구조(九祖)로 삼았다. 또 태조가 글들을 위해 현성사(現聖寺)를 세워 한 종파(宗派)의 근본을 삼았다.

동단석(東壇席) 터

삼국유사 제 4권 의해(意解) 5 양지사석(良志使錫)
중 양지(良志)는 그 조상이나 고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고, 오직 신라 선덕왕(宣德王) 때에 자취를 나타냈을 뿐이다. 석장(錫杖) 끝에 포대(布帶) 하나를 걸어 두기만 하면 그 지팡이가 저절로 날아 시주(施主)의 집에 가서 흔들리면서 소리를 낸다. 그 집에서 이를 알고 재(齋)에 쓸 비용을 여기에 넣는데, 포대가 차면 날아서 돌아온다. 때문에 그가 있던 곳을 석장사(錫杖寺)라고 했다.
양지(良志)의 신기하고 이상하여 남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그는 또 한편으로 여러 가지 기예(技藝)에도 통달해서 신묘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또 필찰(筆札)에도 능하여 영묘사(靈廟寺) 장육삼존상(丈六三尊像)과 천왕상(天王像), 또 전탑(殿塔)의 기와와 천왕사(天王寺) 탑(塔) 밑의 팔부신장(八部神將), 법림사(法林寺)의 주불삼존(主佛三尊)과 좌우 금강신(金剛神) 등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영묘사(靈廟寺)와 법림사(法林寺)의 현판을 썼고, 또 일찍이 벽돌을 새겨서 작은 탑 하나를 만들고, 아울러 삼천불(三千佛)을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셔 두고 공경했다. 그가 영묘사(靈廟寺)의 장육상(丈六像)을 만들 때에는 입정(入定)해서 정수(正受)의 태도로 주물러서 만드니, 온 성 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운반해 주었다. 그때 부른 풍요(風謠)는 이러하다.
왔도다. 왔도다. 인생은 서러워라.
서러워라 우리들은, 공덕(功德) 닦으러 왔네.

지금까지도 시골 사람들이 방아를 찧을 때나 다른 일을 할 때에는 모두 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것은 대개 이때 시작된 것이다. 장육상(丈六像)을 처음 만들 때에 든 비용은 곡식 2만 3,700석이었다.
논평해 말한다. “양지 스님은 재주가 온전하고 덕이 충만(充滿)했다. 그는 여러 방면의 대가(大家)로서 하찮은 재주만 드러내고 자기 실력은 숨긴 것이라 할 것이다.”
찬(讚)해 말한다.
재(齋)가 파하여 법당 앞에 석장(錫杖)은 한가한데,
향로에 손질하고 혼자서 단향(檀香) 피우네.
남은 불경 다 읽자 더 할 일 없으니
소상(塑像) 만들어 합장하고 쳐다보네.
삼국유사 제 5권 감통(感通) 7 월명사(月明師) 도솔가(兜率歌)
월명은 항상 사천왕사(四天王寺)에 있으면서 피리를 잘 불었다. 어느 날 달밤에 피리를 불면서 문 앞 큰길을 지나가니 달이 그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이 때문에 그곳을 월명리(月明里)라고 했다. 월명사(月明師)도 또한 이 일 때문에 이름을 나타냈다.
월명사는 곧 능준대사(能俊大師)의 제자인데 신라 사람들도 향가를 숭상한 자가 많았으니 이것은 대개 시(詩)ㆍ송(頌) 같은 것이다. 때문에 이따금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찬(讚)해 말한다.
바람은 종이돈 날려 죽은 누이동생의 노자를 삼게 하고,
피리는 밝은 달을 일깨워 항아(姮娥)가 그 자리에 멈추었네.
도솔천(兜率天)이 하늘처럼 멀다고 말하지 말라,
만덕화(萬德花) 그 한 곡조로 즐겨 맞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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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맹기념비(Blood Compact Shrine, Tagbilaran east road in Tagbilaran City)

혈맹기념비(Blood Compact Shrine)는 스페인의 정복자 레가스피와 보홀섬의 추장인 시카투나가 맺은 우호조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비로 당시의 상황을 조각으로 만든 조형물이다. 블러드 힐의 타그빌라란 프리엔드십 공원(Tagbilaran City Friendship Park)에 있다.

블러드 힐의 타그빌라란 프리엔드십 공원(Tagbilaran City Friendship Park)에 있는 혈맹기념비(Blood Compact Shrine)

타그빌라란 시(Tagbilaran City)는 스페인 정복 이전에는 중국과 말레이 반도와의 교역으로 번성한 마을이었다. 15653월 스페인의 정복자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필리핀으로 향하기 위해 멕시코를 지나 15653월에 보홀섬에 도착했다.

당시 보홀섬에 사는 추장 다투 시카투나(Datu Sikatuna)와 초대 필리핀 총독이 된 레가스피와 화평(우호조약)을 맺고 서로의 왼팔 손목을 베어 피를 내어 하나의 용기에 부어 와인과 섞어 마시면서 혈맹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매년 7월 내내 산두고 축제(Sandugo Festival)에서 재현되고 있다.

바클레욘 성당(Baclayon Church, Tagbilaran east road in Baclayon)

바클레욘 성당(Baclayon Church)은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교회 건물 중 하나로 보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고 1995년 보홀 국보로 지정되었다. 1595년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진 성당으로 약 4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건물들은 여러 해에 걸쳐 세워졌으며, 그 과정은 원주민의 희생이 있었다.

바클레욘 성당(Baclayon Church)

1596년 지어졌는데 회색의 거대한 건물로 산호 가루와 석회석으로 지어졌는데 건물을 견고하게 짓기 위해 달걀흰자를 섞었다고 한다. 바클레욘 성당(Baclayon Church)1596년에 지어졌으나 지진과 화재로 무너졌고 약 200여명의 원주민들이 강제로 재건에 이용되는 아픈 역사를 품고 1727년 완공되었고 지금의 모습이다.

성당(Baclayon Church)은 1596년에 지어졌으나 지진과 화재로 무너졌고 1727년 완공되었고 지금의 모습이다.

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입구에서 맞이하는 것은 16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가톨릭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내부는 여타 유럽의 성당처럼 천정의 그림은 다를 바가 없이 성경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은 소박하고 간결하다.

바클레욘 성당(Baclayon Church) 조형물
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입구에서 맞이하는 16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가톨릭 유물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은 소박하고 간결하다.

성당 앞에는 필리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플루메리아(Plumeria, 칼라추치)가 피어 있어 당시 원주민의 희생을 위로한 듯하다. 꽃의 원산지는 중남미이나 스페인 식민 지배 때 갤리온(Galleon, 스페인 범선) 무역을 통해 들어왔다.

성당 앞에는 필리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플루메리아(Plumeria, 칼라추치) 나무
플루메리아(Plumeria, 칼라추치) 꽃

나비 뱀 농장(Bohol Lemur and Butterfly Park, Tagbilaran east road in Loay)

농장에는 나비, 악어, 토끼, 뱀 등 사육되고 있는데 환경은 열악하다. 특히 악어가 있는 곳은 최악의 환경이다. 들어 가면 처음 만나는 것이 나비이고 나비의 성장 전 과정을 볼 수 있고 포토존도 있다.

뱀이 있는 곳에는 뱀과 스킨쉽을 권하고 사진도 찍어준다. 결국에는 상술인데 사진 파일을 보여주며 사진 구매를 권유한다.

로복 강(Loboc River, agbilaran east road in Loay)의 선상 투어와 뷔페

로복강(Loboc River)'필리핀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강으로 배를 타고 선상에서 뷔페 형식으로 점심을 하는 곳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정글 사이를 흐르는 강을 따라가면 풍경을 감상하는 여정이다.

배는 로복강(Loboc River) 투어 중 강가에서 생활하는 원시 부족 마을을 볼 수 있는데 옛날 모습을 재현했고 10분 정도 정박한다. 원하는 사람은 내려서 마을을 둘러 본다. 그런데 여기에 상술이 있어 사진을 찍어주면서 사진 구매를 권유한다.

옛날 모습을 재현한 원시 부족 마을

선상에서는 한 가수가 선상 여정이 끝까지 노래를 부르며 공연을 하는데 끝날 무렵에는 공연료를 요청한다.

선상에서 한국가요를 노래하는 가수

맨 메이드 포레스트(Bilar Man-Made Forest in Bilar, Loay interior road), 마호가니 숲

초콜릿 힐로 향하는 길에 빌라르 마을 도로 양쪽에 2km를 자리 잡은 '맨 메이드 포레스트'에는 고급 목재로 사용되는 키가 큰 마호가니 나무가 즐비하게 하늘을 덮고 있다. 대규모로 조성된 인공 숲으로 일명 마호가니 숲이라고 부르고 있다

맨 메이드 포레스트, 마호가니 숲
길가에 있는 망고나무

안경원숭이(Bohol Tarsier Conservation Area in Bilar, Loay interior road)

안경원숭이는 타르시어 원숭이로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영장류이고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13cm밖에 되지 않는다. 성인 남자 주먹 하나 크기에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데 마치 안경을 쓴 듯한 모습이라서 안경원숭이라고 불린다.

보홀과 인도네시아 일부에만 사는 멸종위기종으로 필리핀 정부가 지정한 보호구역에서만 만날 수 있다. 나무에 매달려 대부분 시간을 보내며 작은 도마뱀 등을 잡아먹고 산다.

타르시어 원숭이는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와 그렘린 속 '기즈모' 캐릭터 탄생에 영감을 준 존재다.

키세스 초콜릿 모양을 닮은 초콜릿 힐(Chocolate Hills Complex in Carmen, Loay interior road)

보홀섬 중앙에 위치한 초콜릿 힐은 200만 년 전 바다속에 퇴적된 산호섬들이 융기해 만들어진 지형으로, 평소에는 초록빛을 띠지만 건기(12~5)에는 잎이 마르면서 진한 갈색으로 변해 키세스 초콜릿을 닮은 모양이라서 초콜릿 힐이라고 부르고 있다.

원뿔형 언덕 수가 무려 1,270여 개에 달하는데 일정한 모양의 언덕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초콜릿 힐의 웅장한 모습을 보려면 전망대(550m)로 향하는데 전망대까지 놓인 계단은 214개다. 원래는 212개였는데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214일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2개의 계단을 더 놓았다고 한다.

초콜릿 힐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전망대에 오르면 원뿔 모양 언덕들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지는데 특히 세부가 있는 북쪽이 더 많이 보인다. 전망대 아래 주변에는 사륜 오토바이 체험장이 있어 대여해서 초콜릿 힐 속을 누빌 수 있다.

전망대 아래 주변에는 사륜 오토바이 체험장이 있어 대여해서 초콜릿 힐 속을 누빌 수 있다.

이 동화 같은 풍경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먼 옛날 아로고라는 거인이 살았다. ‘알로야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짝사랑 했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 사랑에 눈이 먼 아로고는 자신의 손에 알로야를 쥐고 도망치지만, 너무 꽉 쥔 나머지 알로야가 죽고 만다. 슬픔에 빠진 아로고는 며칠 밤을 울었고 그의 눈물이 땅에 닿으면서 초콜릿 힐이 되었다고 한다.

아바탄 강의 반딧불 감상(Abatan River Community Life tour, Tagbilaran North road in Cortes)

아바탄 강(Abatan River) 보홀섬 북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유입하는 강이다. 해질 무렵에 보트 또는 카약을 타고 아바탄 강과 바다와 만나는 기수지역 상류의 강변에 있는 커다란 맹그로브 나무에 있는 반딧불을 감상하는 것이다.

캄캄한 밤하늘 아래 배를 타고 고요한 강을 따라 반딧불을 찾는 여정은 마치 동화와 같고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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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라 고래상어 스노쿨링(Taug Whaleshark in Lila, Bohol Circumferential Road)

팡라오(Panglao Island)Alona Swiss Resort에서 차로 40분 정도 가면 보홀(Bohol Island) 릴라에 도착하는데 이곳 해상에서 고래상어를 볼 수 있다스노쿨링에 대한 간단한 교육과 안전교육, 고래상어를 만지지 말라 등 주의사항을 듣고 고래상어를 볼 수 있는 바다로 필리핀 전통 배 방카로 이동한다.

필리핀 전통 배 방카

배에서 매일 규칙적으로 크릴새우 뭉치를 뿌리면 고래상어가 다가와서 커다란 입을 벌려 크릴새우 뭉치를 흡입하고 이때 배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이 스노쿨링을 통해 고래상어를 근접 관찰을 하는데 매우 감동적이다. 이것은 고래상어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커다란 입을 벌려 크릴새우 뭉치를 흡입하는 고래상어

고래상어(Whaleshark)는 멸종위기종으로 몸길이는 보통 12m 내외이며, 최대 18m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몸무게는 15~20t에 달한다. 몸 빛깔은 등쪽은 푸른색이고 배쪽은 흰색이다. 배 위쪽으로는 흰 점과 옅은 수직 줄무늬가 있다.

체험업체 LOKALPAGE의 베이스캠퍼인 터틀즈
터틀즈에서 고래상어(Whaleshark) 스노쿨링 마치고 먹는 점심식사

발리카삭 호핑투어(Balicasag Island hopping tour)

발리카삭(Balicasag Island)은 팡라오 섬 남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이곳 일대는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섬 주변 바다는 수심이 낮지만 조금만 나아가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깊어지는 절벽 지형이다. 물이 맑아서 가시거리가 좋은 데다 파도가 잔잔해 수많은 호핑투어(hopping tour)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점심식사 후 발리카삭 (Balicasag Island)으로 가는 방카를 타기 위해 이동
발리카삭 (Balicasag Island)

팡라오 섬에서 필리핀 전통 배 방카로 약 40~ 50분 정도 지나면 관찰 포인트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력 본격적으로 스노쿨링을 통해 관찰하는데 열대어의 무리, 거북이 및 산호초를 관찰한다. 열대어와 거북이의 유영을 바다속에서 보니 감동적이고 시간 흐름을 잊게 한다.

열대어와 유영
거북이와 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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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일반적인 여행지로 보라카이와 세부인데 최근에는 보홀(Bohol Island)의 호핑투어(hopping tour가 주목을 많이 받고 인기가 많다. 특히 직항로가 개설되어 여행가기가 편리하다. 김해공항에서 출발하여 보홀 팡라오 국제공항(Panglao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4시간 30분이다.

보홀(Bohol Island)은 필리핀에서 10번째로 큰 섬으로 면적이 제주도 2배 크기로 부속 섬이 70여 개 있다. 세부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세부에서 배로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보홀(Bohol Island)은 행정명이 보홀주(Province of Bohol)로 주도는 타그빌라란(Tagbilaran City)으로 보홀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세부와 마닐라를 연결하는 타그빌라란 공항(Tagbilaran Airport)이 있다.

보홀(Bohol Island)의 대표적인 호핑투어(hopping tour) 지역은 보홀 남서쪽에 있는 팡라오섬(Panglao Island)으로 보홀과는 두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 국제공항인 보홀 팡라오 국제공항(Panglao International Airport)이 있다.

그리고 보홀(Bohol Island)의 대부분 리조트와 호텔은 팡라오 섬(Panglao Island)에 있고 이동수단은 3륜 오토바이로 일명 툭툭이라고 부르는데 택시 역할을 한다.

이 섬의 유명한 해변은 알로나 비치(Alona Beach)인데 팡라오 섬 남서쪽에 있다. 이름의 유래는 1973년 필리핀의 유명 여배우 알로나 알레그레가 이곳에서 영화를 찍었는데,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는 다정한 성격으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후 알로나 비치로 불리게 되었다.

알로나 비치 (Alona Beach)

돌조 비치(Doljo Beach)은 팡라오 섬 북서쪽에 있는 해변으로 알로나 비치(Alona Beach) 비해 여행객이 적고 조용하며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다. 수심이 얕고 바다 멀리 세부가 보이는 해변이고 인근에는 더 밸뷰 리조트(The Bellevue Resort)가 있다. 알로나 비치(Alona Beach)에서 툭툭이를 타고 가면 30분이면 도착한다.

돌조 비치(Doljo Beach)와 바다 멀리 보이는 세부
오른쪽은 더 밸뷰 리조트(The Bellevue Resort) 건물

필리핀에 입국하려면 이 트레블(e-Travel)을 작성해야 하는데 필리핀 관광부 홈 사이트(etravel.gov.ph)에서 작성해서 등록해야 한다. 내용은 입국 및 세관신고서로 비행기 출발 시간 기준으로 72시간 이내에 작성해야 한다. 필리핀 입국이 처음이면 먼저 이 트레블(e-Travel) 계정을 만들어 거주지, 여권번호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입력해야 한다.

이후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부여 된 트레블(e-Travel) 계정이 만들어지면 로그인하여 입국 및 세관신고서를 작성하여 등록이 완료되면 QR 코드가 생성되는데 이를 캡쳐하여 저장하였다가 필리핀 공항 입국 시 보여주면 된다. 가족이 있는 경우는 보호자가 대표로 작성하여 가족 각 개인에게 생성 된 QR 코드를 휴대폰으로 가족에게 전송하면 된다.

필리핀 입국절차가 끝나면 공항에서 국내에서 구입한 필리핀 유심(e-usim 아닌)으로 교체하여 이동하면 된다. 필리핀과의 시차는 1시간으로 한국보다 1시간 늦다. 필리핀은 출국세가 있어 1인당 현금 560페소를 준비해야 한다.

보홀(Bohol Island)에서 여행하기 위해서는 현지 화폐인 페소를 준비해야 하는데 툭툭이를 부를 때나, 현금만 받는 식당, Tip 등에 필요하고 국내에서는 수수료를 고려하여 최소한의 금액만 환전하고 추가로 필요하면 현지에서 달러를 페소로 환전하면 된다. 그래서 국내에서 최소한의 페소와 달러를 준비 하면 된다.

이곳에는 수질이 안좋기 때문에 마시는 물은 PET에 들어 있는 생수를 마셔야 한다. 가능하면 국내에서 새 필터로 교체한 샤워기 헤드를 준비하여 현지에서 교체하여 사용하면 좋다. 그리고 전신 마시지 가격이 국내의 절반이고 효과도 좋아 현지 마시지 숍을 이용하면 좋다.

현지 음식은 사계절 더운 날씨 탓에 주로 튀기고 볶은 음식이 많고 닭튀김 요리가 현지인의 주식인 것 같다.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나 이곳 팡라오(Panglao Island)에 맛집은 없고 음식도 평이 한 것 같다. 대신 과일 음료인 망고, 코코넛, 수박은 좋다.

그래서 경험을 통해 살펴보면 가격 기준으로 음식점은 3가지 유형이 있다. 한가지는 현금만 받고 부득이 카드 계산 시 3% 수수료를 받는 음식점인데 Monster Crab이라는 음식점으로 한국 사람이 운영하고 가격도 비싸다.

Monster Crab에서는 요리되는 Crab을 손님이 선택한다.

그리고 가격에 5% Tip을 포함시키고 카드가 되는 음식점이다. 사실 손님 입장에서 Tip은 옵션이고 금액은 알아서 주는 것인데 가격에 포함시키는 것은 불쾌한 것이다. 알로나 비치(Alona Beach) 초입에 있는 Gerry’s Grill이라는 음식점이 해당된다마지막 유형은 카드가 되고 Tip은 알아서 주면 되는 음식점이다. Jose Panglao이라는 음식점이 해당된다.

보홀(Bohol Island) 여행은 스노쿨링을 이용하는 호핑투어(Hopping tour) 같은 해상여행과 초콜릿 힐, 안경원숭이 보기 등 내륙여행이 있다여행의 주안점은 호핑투어(Hopping tour) 등 체험이기에 여기에 비용을 많이 두었고 체험은 LOKALPAGE라는 업체를 이용했다. 숙소는 가격이 다소 저렴한 3성급인 Alona Swiss Resort를 했는데 가성비는 무난했다.

Alona Swiss Resort
밤에 발견되는 도마뱀
담위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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