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머무는 곳’, ‘배를 움직이는 곳’으로 알려진 운주사(雲住寺)는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의 나지막한 야산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10~11세기 고려 초에 창건한 사찰로 14~15세기에 가장 번창하였고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폐찰 되었다. 지금은 현재 석불 70구와 석탑 18기만이 남아 있으나, 1942년에는 석불 213구,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이곳의 탑이나 석불을 헐어다가 묘지 상석을 만들기도 하고 주춧돌, 섬돌로 축대를 쌓는 데 사용했고, 때로는 통째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했다고 한다.


1921년에 간행된 『도암 면지(道岩面誌)』에 의하면, 1918년에 전 군수(前郡守) 박윤동(朴潤東) 등 16명이 시주하여 재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72년~1978년 대웅전과 요사채를 건립하였고, 근래에 송광사의 말사로 편입되면서 대대적 중창 불사가 이루어져 수많은 전각을 건립하고 주변을 정비하고 있다. 운주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 교구 본사 송광사(松廣寺) 소속 사찰이다.
절 주변은 사적 제312호로 지정되었고 입구의 구층 석탑은 보물 제796, 중심부의 석조불감(石造佛龕)은 보물 797호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원형다층석탑은 보물 789호로 지정 되어 있다.

이곳의 석탑은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방식이 매우 독특하고 층수도 다양하며 둥근 공 모양의 원형 탑이나 호떡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듯 등 특이하다. 또한 탑의 표면에 ‘X’, ‘◇’, ‘川’과 같은 기하학 무늬들이 새겨 있어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운주사(雲住寺) 內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70여 구의 석불도 그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평면적이면서 토속적인 생김새에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신체 구조는 고려시대 지방적인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와불(臥佛 : 누운 부처)이 유명한데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불상으로 도선 국사가 천불(千佛) 천탑(千塔)을 하룻밤에 세울 때 맨 마지막으로 좌불과 입상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는데, 공사에 싫증난 동자승이 닭이 울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불상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관련 문헌을 살펴보면 1530년(중종 5)에 증보된 『동국여지승람』의 능성현(綾城縣) 조에 「운주사(雲住寺)는 천불산(千佛山)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 있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 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1632년에 간행된 『능주목지(綾州牧誌)』에 「운주사(雲住寺)는 지금 폐찰 되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폐사된 이후 설담자우(雪潭自優)의 「운주동 불탑 수리 후 중건 약사전 권선문(雲住洞 佛塔修理 後 重建 藥師殿 勸善文)」에 의하면 19세기 초반 훼손된 불상과 무너진 불탑을 중수하고 새로이 약사전(藥師殿)을 중건하였고 이를 약사사(藥師寺)로 기록하고 있다.

운주사(雲住寺)에 대한 발굴조사는 전남대박물관에서 1984년부터 네 차례를 실시하였는데 운주사(雲住寺)의 본래 절터는 현재 대웅전이 있는 곳이 아니라 주차장이 있는 곳 위의 밭 근처였음이 확인되었다. 1989년 조사에는 석탑들 가운데 두 기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출토 유물로 운주사 환은천조, 홍치 8년(雲住寺 丸恩天造, 弘治 八年)이라고 적힌 암막새 기와가 나와서, 원래 절 이름이 운주사(運舟寺)가 아니라 운주사(雲住寺)라는 것과 1495년(연산군 1)에 중창된 적이 있음을 밝혀졌다. 그리고 발굴 후 다시 흙으로 덮어 현재는 잡초만 무성하다,
운주사 일대의 암석은 중생대 백악기에서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와 돌덩이가 켜켜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응회암이다.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라 경도가 약한 응회암은 잘 깨지고 부스러지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석탑과 석불을 제작하였다. 운주사에는 여기저기 벽에 기대어 간신히 서있는 불상이나 탑이 있는데, 대부분 풍화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원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그럼 이 절, 운주사를 누가, 무엇 때문에 창건했을까?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것은 도선국사(道詵國師)와 관련 된 풍수비보설이다.
도선국사가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고 배 한복판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 땅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 국운(國運)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나라의 기틀을 공고히 하고자 기울 것을 염려하여 1,000개의 불상과 1,000개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운주사 유적들이 12 ~13세기의 양식이고 도선국사는 9세기의 인물이라서 연대가 맞지 않다.
다른 하나는 밀교에서 절을 세웠다는 것인데 운주사에서 출토 된 수막새 기와에 “옴마니반메홈” 이라는 진언이 범어로 양각되어 있고 석조불감(石造佛龕) 안에 남북으로 등을 맞댄 불상은 밀교적인 음양불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부처들이 대부분 지권인을 하고 있고 천불을 조성하여 모시는 천불신앙은 밀교에서 널리 믿어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것은 몽고침략기에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1238년(고종 25년) 몽고군이 고려인들의 저항의식을 무너뜨리기 위해 호국사찰인 황룡사를 불태워버렸다. 이에 고려 조정에서 황룡사를 대신할 사찰이 운주사이고 이곳에 천불 천탑(千佛 千塔)을 세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륵신앙으로 고려 무인정권 시절 이곳에 반란을 일으킨 노비와 천민들이 미륵이 도래하는 용화세계를 기원하며 그들의 염원으로 천불 천탑(千佛 千塔)을 세웠다는 것이다.
운주사(雲住寺) 입구부터 펼쳐진 다양한 석탑과 석불을 살펴보자.
구층 석탑 (九層 石塔)은 보물 제796로 운주사(雲住寺) 일주문을 지나서 가장 먼저 맞이하는 석탑(石塔)으로 높이 10.7m로 석탑 중 가장 높다. 기단부(基壇部)의 지대석은 하나의 평평한 바윗돌을 사용하여 각형의 3단으로 가공한 굄 위에 탑신부(塔身部)를 세웠다.
탑신부(塔身部)의 1층 탑신(塔身 : 몸돌)은 4장의 널돌로 세워서 짜였으며,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긴 후 다시 면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굵게 새겨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2층 탑신(塔身)부터는 각 면마다 2중으로 마름모꼴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조각하였다. 옥개석(屋蓋石 : 지붕돌)은 밑면이 약간 치켜 올려져 있고, 여러 겹의 빗살무늬가 조각되어 있는데 옥개석 받침은 생략되었다.
상륜부(相輪部)는 원기둥모양으로 다듬은 돌과 보륜(寶輪 : 바퀴모양의 장식)을 올렸다. 전체적인 탑의 모습은 지방적인 색채가 뚜렷하다.
운주사(雲住寺)의 석불군은 일주문을 지나서 북쪽 대웅전을 향한 길을 걸으면 오른쪽, 즉 동쪽 암벽에 조성되어 있다. 첫 번째 석불군은 구층 석탑 동쪽에 있는 높이 약 8m, 너비 20m의 암벽 수직 단애 면에 좌불 1구와 입상 5구를 배열하였는데 입상 1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좌대를 갖추고 있다. 두 손을 합장하고 좌불을 한 비로자나 부처님은 1984년 발굴 조사 때, 불상 대좌 뒤편에서 8~9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 불상과 여래 불상이 출토되었다.


두 번째 석불군은 첫 번째와 10여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높이 5m, 너비 25m의 암벽에 8구의 석불이 배열되어 있다. 중앙에 높이 4.75m의 대형 입상이 주불이고 좌우에 입상 7구의 협시불이 있다.


높고 큼직한 방형으로 다듬은 기단 위에 원형의 1단 굄을 만들고 그 위에 7층의 탑신부(塔身部)를 세운 칠층석탑(七層石塔) 은 높이는 9.6m이다. 1층과 2층 탑신(塔身)은 4매의 판석으로 되어있고 각 면의 모서리에는 우주(隅柱)가 모각되었고 탱주(撐柱)는 생략되었다.

3층 이상 탑신(塔身)은 모두 1매석이며 각 면에 우주(隅柱)가 모각되었고 탱주(撐柱)도 생략되었다. 각 층의 두툼한 옥개석(屋蓋石)은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옥개석(屋蓋石) 받침은 6단이다. 추녀와 처마는 직선형으로 표현되었다. 상륜부(相輪部)는 유실되었지만 비교적 단정하고 소박한 석탑이다.

석불좌상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는 쌍교차문 칠층석탑(雙交叉紋 七層石塔)은 각층 탑신에 쌍교차문(XX)과 마름모꼴(◇) 형태를 조각하여 국내 석탑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 높고 큼직한 방형의 기단 위에 1단의 방형좌대를 만들고 그 위에 탑신을 세웠다. 비교적 안정되고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다.

광배석불좌상(光背石佛坐像)은 운주사(雲住寺) 석불 가운데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과 함께 유일하게 광배(光背)가 표현된 불상이다. 사다리꼴 판석에 조각된 광배(光背)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구분이 없고 불신 주변으로 선각에 의한 화염문(火焰紋)을 음각하였다. 광배(光背)는 고 부조된 불상에 비해 두께가 얇은 편이다.

불신은 광배(光背)에서 약간 도드라지게 표현되었으며 수인과 코, 눈썹, 귀는 양각하였다. 전체적으로 상호는 원만상이며, 눈에 비해 약간 높게 표현된 눈썹과 기다란 코, 두툼한 입술을 표현하였다. 귓바퀴가 큰 귀는 눈썹부근에서 입술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광배석불좌상(光背石佛坐像) 길 건너편에 있는 세 번째 석불군은 암벽 왼쪽에 사각형과 원반형의 대좌에 불상4구가 세워져있다. 중앙에는 복련(復蓮)이 묘사된 사각형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있는 불상이 있고 그 좌우로 판석을 이용한 듯 얕은 부조와 선각으로 묘사되어 있는 석불이 배치되었다.

중앙의 석불은 두 손이 형태가 없어졌으나 다른 불상들보다 입체감 있게 묘사 되었는데 얼굴에는 긴 귀와 코의 흔적이 있으며 머리에는 육계가 있고 두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식의 법의를 걸쳤다.

바로 옆에는 불두 5편, 석불 입상 3구가 있다. 이중 가장 큰 석불 입상은 세 조각으로 파손 된 것을 1993년 보수하여 세워 놓은 것이다.


석조불감(石造佛龕) 앞 칠층석탑(七層石塔)은 주변의 다른 큰 석탑이 큰 방형을 설치하여 기단을 대신한 것과 달리 규모가 작은 지대석 위에 1단 굄을 마련하여 탑을 세웠다. 옥개석(屋蓋石) 받침은 5단으로 넓고 평평한 옥개석(屋蓋石)과 그 윗면 네 귀퉁이의 우동마루가 예리한 선을 이루지 않고 두툼하게 표현된 것은 백제계 석탑에서 나타나는 기법이다. 또한 옥개석(屋蓋石)의 폭과 탑신 높이의 체감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탑이다.


석조불감(石造佛龕)은 보물 797호로 운주사(雲住寺)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앞, 뒤에는 석탑이 1기씩 놓여있어서 야외 불당의 주존 불 구실을 하고 있다. 불감(佛龕)이란 석굴 형태의 일정한 공간(龕室)에 부처님을 안치하는 건조물을 말하는데 직사각형 모양으로, 양쪽 벽을 판돌로 막아두고 앞뒤를 통하게 하였다.



그 위는 목조 건축의 모양을 본떠 옆에서 보아 여덟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처럼 다듬은 돌을 얹어놓았다. 감실(龕室) 안은 남북으로 통하게 하여 2구의 불상이 등이 서로 맞붙은 모습으로 흔히 볼 수 없는 예이다.


불상을 새긴 수법은 그리 정교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들어 나타난 지방적인 특징이 잘 묻어나온다. 그리고 석조불감 안에 등을 맞댄 불상은 그 유래가 없는 특이한 형식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원형 다층석탑(圓形 多層石塔)은 보물 797호로 높이 5.8m이다. 기단부의 기단(基壇)은 두툼한 원형 단을 만들고 탑을 세웠다. 기단 면석은 5매석을 조립하여 8각을 이루고 원형의 갑석에는 연꽃을 선으로 16장을 표현하였다.

원형의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층마다 몸돌 측면에 2줄의 선이 돌려져 있다. 탑신 1층 옥개석(屋蓋石)은 윗면이 편평하고 옆면이 둥근데 비해, 2층부터 옥개석(屋蓋石)은 정반대로 아래가 편평하고 윗면이 둥글다. 이는 상하의 조화와 안정감을 꾀하려 한 의도로 추측된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6층뿐이나 원래는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운주사(雲住寺) 대웅전(大雄殿) 앞 다층석탑(多層石塔)은 높이 3.23m로 탑신부의 4층 옥개석(屋蓋石)까지 남아 있고 그 이상 부재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옥개석(屋蓋石) 상부는 전탑과 같은 3단의 계단 형으로 이루어진 모전석탑 유형이다. 즉 돌을 작은 벽돌모양으로 만들어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통돌을 계단 형으로 깍은 것이다. 특히 각 층의 옥개석(屋蓋石) 모서리 부분에서는 가벼운 반전이 있다.


운주사(雲住寺)에는 거북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암반위에 석탑 2기를 조성하였는데 오층석탑(五層石塔)과 교차문 칠층석탑(交叉紋 七層石塔)이다. 그리고 암반아래에도 석불군을 조성하였다.



거북바위 오층석탑(五層石塔)은 높이 5.57m로 거북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암반위에 탑을 세웠다. 1층 탑신은 1매의 방형에 각 면의 모서리에는 우주가 모각되었고 탱주는 생략되었다.

2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짜 맞추었는데 각 면의 귀퉁이에 우주가 정연하게 각출되었다. 옥개석 받침은 뚜렷하며 상면에 탑신 굄이 생략되었다. 상륜부는 복발형의 부재가 안치되고 그 위에 보주가 연결되었다. 전체적으로 치석의 기법이나 각 부재의 비례가 안정된 탑이다.

거북바위 교차문 칠층석탑 (交叉紋 七層石塔)은 높이 7.17m로 다소 경사진 암반을 완만하게 다듬어서 기단부 없이 그 위에 탑을 세웠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는데 각 면 모서리에 우주가 모각되고 면석중앙으로 보조 우주가 하나씩 얕게 표출되었고 탱주는 생략되었다.


2층에서 7층까지 탑신 4면에 X자문이 새겨져 있고 옥개석(屋蓋石) 우동마루가 두툼하게 튀어나오고 옥개석(屋蓋石) 받침은 5단이다. 한국석탑에서는 매우 희귀한 사례에 속한 탑으로 모두 건축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한다.

서쪽 산기슭에 있는 와불(臥佛)로 가는 길 중간의 거북바위 아래에 있는 석불군은 높이 5m, 너비 15m의 거북바위에 조성한 공간의 넓이는 일부 암반이 떨어져 나가 3m × 4m × 2m이다. 이는 너무 깊게 암벽 감실을 조성하려다 상부 암반이 무너져 내린 결과로 추정된다.

높이 4m지점에 지름1m정도의 암벽을 다듬은 흔적이 보여 이곳에 대형 불상을 모시려던 것으로 짐작된다. 불상 중앙은 좌상, 그 주위는 입상이 배열되어 있다. 불상은 9구이나 대좌는 12개라서 불상 3구가 다른 곳으로 옮겨진 곳으로 보인다.


와형 석조여래불(臥形 石造如來佛)은 운주사(雲住寺) 계곡 서쪽 산 정상에서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석불 2구로 큰 불상인좌상과 작은 입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명 와불(臥佛 : 누워있는 불상)이라고도 한다. 크기는 길이 12.7m, 너비 10.3m로 국내 석불 중 가장 크다


좌상의 대불은 어깨와 목에 비해 양 무릅 사이의 폭이 너무 넓어 인구(사람의 형상)의 균형을 잃고 있다. 작은 불상인 입상의 수인(손 모양)은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한 것 같으나 어색하고 사실적이지 않다. 또한 옷 주름은 수직선과 사선으로만 처리하여 매우 단순하다.


창건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하루 밤 사이에 천불 천탑을 다 세우고 이 와불을 마지막으로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새벽닭이 울어 중단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일어서지 못한 채 남겨진 존재가 바로 이 와불(臥佛)이라고 한다.
실제로 불상을 조성하려다 난관이 생겨서 포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와불의 형태를 보면 일반적으로 가로 누운 형태가 아니라 가부좌를 틀고, 서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와불과 지면 사이에는 결이 나 있는데 이 결을 따라 암반을 쪼갠 흔적이 발쪽을 보면 밑에서 보인다.
즉, 원래 계획대로라면 암반의 결을 따라 와불을 쪼개서 일으켜 세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깨부분부터 결이 사라지는데 이 부분의 암반이 생각 이상으로 커서 이대로 세우면 불상이 부러지기 때문에 그대로 둔 것으로 보인다.

화순군(和順郡)은 전라남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군이다. 내장산, 추월산, 설산으로부터 이어져 온 호남정맥이 무등산에서 안양산, 두봉산, 국사봉으로 연결된다. 하천은 지석천과 동복천이 군의 유역을 나누고 있다.
『삼국사기지리지』(능성)에“ 여미현(汝湄縣)은 본래 백제의 잉리아현(仍利阿縣)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였는데 지금의 화순군(和順郡)이다.”라고 기록되어 현재의 지명을유추할 수 있다.
도암면(道巖面)은 화순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이다. 북쪽은 고당산과 해망산이 도곡면과 경계를 이루고 해망산에서 남쪽으로 천태산, 깃대봉, 금성산, 화학산으로 동쪽산지를 이루면서 춘양면과 청풍면의 경계를 이룬다. 남쪽에는광덕산, 선왕산이 있다. 서쪽은 나주호가 있고 나주호 남쪽으로는 봉학천이나주시 다도면과 경계를 이룬다.
1914년에 능주군 도장면(道莊面), 호암면(虎巖面), 남평군 다도면 일부를 합해 서도장면의 ‘도(道)’자와 호암면의 ‘암(巖)’자를 따서 도암면(道巖面)이라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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