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강읍(安康邑) 육통리(六通里) 회화나무(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1428외 3필)는 수령이 약 400년으로 높이 19.1m, 둘레 6.2m로 줄기의 많은 부분이 상해서 나무 모습이 좋지 못하다. 오랜 세월동안 마을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 왔으며, 음력 정월 보름날에 이 나무 앞에 모여서 새해의 풍작과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
육통(六通)의 유래는 옛날 대표적인 6개 자연부락(능골, 원당, 존당, 못밑, 학지, 거리마을)을 통칭하여 육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활엽수인 회화나무는 생명력이 강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그늘 밑에서 쉬어 가는 마을의 정자나무로도 쓰였고 향교나 사찰 등에 심었다. 활엽수 중 공해에 가장 강한 나무로 가로수나 공원수로도 이용된다.
나뭇가지의 자유로운 뻗음이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 하여 ‘학자수(學者樹)’라고도 하며, 영어 이름도 이와 같은 뜻인 ‘스콜라 트리(scholar tree)’이다.
옛 선비들은 이사를 가면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선비가 사는 곳’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모양이 둥글고 온화하여 높은 관리의 무덤이나 선비의 집에 즐겨 심었다.
이 회화나무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약 600년 전인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이 마을에 살던 젊은이가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터로 나가면서 이 나무를 심어놓고 부모님께 자식처럼 키워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후 젊은이는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부모는 아들의 뜻대로 이 나무를 자식같이 여기며 가꾸어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안강읍(安康邑)은 경주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읍이다. 남쪽으로는 현곡면, 동쪽으로는 강동면과 천북면, 북쪽으로는 포항시의 기계면, 서쪽으로는 영천시의 고경면과 접해 있다. 원래 안강은 무인 하천 지역이었으나 칠평천(七坪川) 유수의 변천으로 민가가 형성되었고 759년 신라 경덕왕 때 주민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뜻에서 '안강(安康)'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칠평(七坪)이라는 지명은 옛날 큰 홍수가 나서 안강 전역이 물에 잠겼을 때, 이곳의 일곱평 정도의 땅이 물에 잠기지 않았는데 그 물에 잠기지 않은 땅모양이 칠(七)자 모양이었다고 하여 그 넓이와 모양을 따서 칠평이라 부르게 되었다.
칠평천(七坪川)은 안강읍 두류리에서 발원하여 안강읍을 관통하고 형산강에 합류되는 하천이다. 동남북의 산지로부터 흘러내린 많은 지류들이 안강읍 지역에 넓은 들을 만들어 옛날 안강현(安康縣)의 중심지가 들어설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삼국사기』에 원래 비화현(比火縣)이었는데, 759년(신라 경덕왕 16)에 안강현(安康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비화현에서의 ‘화(火)’는 신라지역에서‘성(城)’을 의미하는‘벌’을 한자의 뜻을 따서 표기한 것이다. 102년(신라 파사니사금 23) 음즙벌국(音汁伐國)을 취하여 음즙화현(音汁火縣)을 만들었는데 후에 안강현에 합해졌다는 기록도 나온다. 음즙화현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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