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25년(1592년 4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일으킨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당시 16세기 일본에서는 다도가 유행하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또한 차를 좋아하여 다회를 자주 열었다고 한다. 이에 임진왜란에 참전한 왜군의 장수들은 수많은 조선의 도공과 사기장, 칠기장 같은 장인을 일본으로 끌고 갔다. 또한 장인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젊은 남녀를 끌고 가서 전쟁 노예로 삼아 상업적 이익을 취했다. 왜란 7년 동안 일본은 조선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큰 만행과 악행을 저질렀다.
일본에 끌려 간 다양한 장인의 수는 기록에 따라 다르며,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10만 ~ 20만 명, 일본 쪽에서는 5만 ∼ 6만 명으로 보고 있으나, 장인 외의 사람들도 일본에 끌려가서 포르투갈 상인에게 노예로 팔렸다고 하니 전체 인원은 파악하기가 어렵다. 참으로 천인공노할 짓을 일본이 하였다.
왜란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참담한 현장 중 하나가 죽성리 왜성(또는 두모포 왜성)이다. 이 왜성에서 도공을 비롯한 많은 장인들이 왜선을 통해 일본에 끌려 간 것이다. 이곳에는 서답골, 또는 세답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왜란 당시 전국에서 끌려온 수많은 도공들이 왜선에 타기 전 억류생활 하면서 빨래를 했다고 하여 세탁골이라 불리었다.
1593년(선조 26) 봄 왜군은 전남 여수에서 울산에 이르는 우리나라 동남해안 일대에 30여개의 성을 쌓고 이 성들을 근거지로 삼아 장기전으로 조선을 굴복시키려 하였다. 이들 왜성은 대개 강이나 바다에 근접한 구릉을 택하고 수송, 연락관계 등을 고려하여 선박의 출입이 편리한 장소에 성을 축성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죽성리 산 52-1일대의 죽성리 왜성은 이들 왜성 중 하나로 왜군 장수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인원 3만3000명 동원하여 축성한 것으로 인근 기장읍성과 두모포 진성 성벽 돌을 사용하였다. 이 왜성은 죽성포(두모포)만 서쪽의 서답골을 끼고 있는 두 개의 구릉을 중심으로 남쪽 높은 구릉(해발 64m)에 본성을 쌓고 북쪽 낮은 구릉(해발 45m)에 본성 방어를 위한 외성(지성)을 두른 형태다. 여기에 다시 본성과 외성의 서쪽 성벽 밖에 너비 7m 이상 구덩이(해자)를 길게 파 방어망을 강화했다.
성벽은 주로 화강암을 써서 70도 정도 경사지에 비스듬히 쌓았는데, 총 면적 2,600평에 둘레가 약 960m이고 성벽 높이는 약 4m이며 3단으로 축조했다. 외성 일부 구간에서는 수직으로 축조 된 성벽이 나타나는데 이는 기존의 두모포 진성과 연결시킨 것이다. 즉 기존 조선 수군 두모포 진성을 활용한 것이다. 죽성리 왜성은 청강천(죽성천)의 자연지형과 해자를 통해 북서쪽의 외곽 방어망을 강화하고 동쪽으로는 죽성만 포구를 감싸 안은 해안요새인 것이다. 이 성은 일본에서는 기장성이라고도 부르고, 왜란 중에는 울주군 서생포성(西生浦城)과 울산 학성(鶴城), 그리고 증산왜성(부산포성)을 연결하는 요충지 역할을 했다.
죽성 지명은 이곳에 있던 성곽과 이곳에 죽이 많이 자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에는 신라토성, 두모포 진성의 석축성(石築城)과, 또 임진왜란 때의 석축성인 왜성(倭城)이 있었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 의하면, “두모포는 현에서 동쪽 5리에 있고 수군만호(萬戶)가 수비하고 있다.” 라는 기록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두모포영은 수군만호가 있고 중종 5년(1510)에 설치하였다.” 라는 내용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기장현이 폐현되면서 두모포 만호영은 동래부 부산(釜山)으로 이전하였다. 죽성이 행정지명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이다.
현재 죽성리 왜성 입구는 철문에 의해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다. 땅 소유자인 신앙촌(천부교)에 대하여 기장군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사유는 신앙촌이 문화재에 대하여 현상 변경을 하였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옛 향기를 찾아서 > 석조건축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00년 전 5cm 기적으로 신라 원형의 모습을 간직한 열암곡 마애불상 (0) | 2022.11.22 |
---|---|
동해용이 금당에 넘나들었던 동해구(東海口)의 감은사지感恩寺址) (0) | 2022.05.29 |
전함홍기(戰艦紅旗)로 유명한 개운포성지(開雲浦城址)는 쓸쓸함에 묻히고 (0) | 2022.05.01 |
기장읍성(機張邑城)에서 옛 흔적을 생각하다. (0) | 2021.11.21 |
벚꽃이 아름다워 슬픈 서생포(西生浦) 왜성(倭城) (0) | 2021.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