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성리 석불입상(活城里 石佛立像)은 외동읍 활성리(외동읍 활성리 385-2번지)에 있는 석불(石佛)로 연지암(蓮池庵) 대웅전에 있는 석조 여래입상(石彫 如來立像, 문화재자료)이다.
사찰이름은 ‘김연지화(金蓮池花)’ 라는 보살이 밭 가운데서 목탁 소리가 들려오는 꿈을 꾸고 그곳에 직접 가서 땅을 파서 보니 이 석불이 나왔으므로 암자를 지어서 연지암(蓮池庵)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석불입상(石佛立像)의 광배(光背)는 배 모양이고, 앞면에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여래입상으로 얼굴이 심하게 마모되어 근래에 다시 만들었다. 광배는 머리둘레 2중으로 선을 돌린 두광(頭光)과 몸 둘레에 역시 2중으로 선을 돌린 신광(身光)을 표현하였는데 그 주위에 화려한 불꽃을 조각하였다.
불상의 머리에는 나선형 머리카락을 표현하였고 귀는 길게 표현하였으며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를 조각하였다. 옷은 목에 테를 두르고 양쪽 어깨에 걸치는 모습을 하였는데 허리까지는 반원형으로 하고 그 아래에는 Y자형으로 갈라지고 있다.
양 다리에는 타원형으로 옷 주름을 표현하였고 양 팔에 걸쳐진 옷 주름은 상당히 굵고 두텁게 조각하였다. 왼손은 들어 올려 약그릇과 같은 것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도 배에 들어 올려 둘째손가락은 펴고 나머지 손가락은 서로 붙여 밖을 향하였다. 다리 아랫부분부터 그 아래는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외동읍은 신라(新羅) 육부촌(六部村) 중 취산진지촌(嘴山珍支村)에 속하며 조선시대 말기 경주부(慶州府)의 남산(南山) 및 마석산을 중앙으로 양분하여 서쪽은 내남면(內南面), 동쪽은 외남면(外南面)이라 칭하고 190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외남면(外南面)의 북부(北部) 일부를 제외하고 불국사(佛國寺)에서 경상남도 경계까지를 외동(外東)이라 칭하게 되었다.
활성리(活城里) 지명은 장이영(長以英)이라는 이가 마을을 개척하였다 하며 이곳에 장군수(長軍水)인 활수(活水)가 솟아났다 하여 활성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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