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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리사지(獐項里寺址)는 토함산 동쪽의 한 능선이 끝나는 기슭에 있는 절터로서, 동서는 길고 남북은 좁은 대지에 조성된 절터다. 전면인 남쪽과 동쪽은 큰 계곡으로 둘러싸고 있어서 터의 상당부분이 절개 유실되어 협소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장항리(獐項里)마을 앞산의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노루목, 장항이라 불렀다. 절 이름은 오랫동안 유실되어 알 수 없어 마을을 따서 장항리사지(獐項里寺址)라 부르고 있다.

절터에는  서 5층 석탑, 1층 탑신 위에 옥개석 5개만 올려놓은 동 5층 석탑과 갑석이 결실된 동 5층탑 기단 부재, 원형주좌초석,  금당지와 함께 석조불상의 대좌가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가람배치에 있어 쌍탑과 금당의 관계는 쌍탑이 금당 앞 좌우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장항리사지는 탑과 금당이 같은 선상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1923428일 오전 11시경 도굴범이 오층석탑 속에 있는 사리장치를 탈취하기 위해 파괴한 것을 1932년 서 오층석탑을 복원 및 보수하여 현재의 자리에 세웠고 동 오층석탑은 절터의 붕괴로 인하여 무너져 북쪽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19662월에 옮겨 현재의 자리에 또한 세워졌기 때문이다.

좁은 절터에 쌍탑을 세우고 뒤쪽 중앙에 금당을 배치한 쌍탑 1금당으로 통일신라시대 사찰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고 있으나 강당이나 회랑의 존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금당 터의 기단 규모는 동서 15.8m, 남북 12.7m이며, 남아 있는 초석을 볼 때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으로 원형주좌초석과 가운데는 팔각 석조불상의 대좌가 남아 있다.

금당 터 기단 규모는 동서 15.8m, 남북 12.7m이고, 남아 있는 초석을 볼 때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의 규모로 추정된다.

한편으로는 전후(남북)가 좁고 좌우(동서)가 넓은 지형으로 보아 좌전 우탑(左殿 右塔) 가람배치도 추정할 수 있지만 동탑의 위치가 불확실하다.

금당 터 중앙에 있는 석조불상의 대좌

금당 터 중앙에 있는 석조불상의 대좌는 2단으로 아랫단은 팔각형으로 조각이 새겨져 있고 윗단은 연꽃을 조각한 원형대좌이다.

석조불상의 대좌는  2단으로 아랫단은 팔각형이고 윗단은 연꽃을 조각한 원형대좌이다.

석조불상의 대좌를 세세히 살펴보면 대좌 아랫부분은 높이 600이며 팔각형으로 조성하였는데, 각 면마다 안상을 마련한 다음 그 속에 신장(神將)과 신수(神獸)를 부조(浮彫)로 처리하였다. 윗부분은 높이 53이며, 복련을 조각한 원형연화대좌이다. 석조불상의 대좌 최대 폭은 2.4m이다.

석조불상의 대좌 아랫부분 안상 속의 신수(神獸)
안상 속의 신장(神將)

이 대좌 위에 놓여 있던 석조불상은 석조여래입상으로 1923년 서 오층석탑이 파괴될 때 같이 피해를 입었으나 1932년 서탑을 복원할 때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옮겨졌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북쪽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불상은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었던 것을 두 팔이 잘리고 허리 위부분과 광배만 복원하였으나, 뒷부분의 광배 일부와 무릎 이하는 결실되었다.

머리와 얼굴모습 그리고 광배에 새겨져 있는 작은 부처인 화불 등의 새긴 수법을 볼 때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여래입상으로 판단되며 현존 높이는 3m이나 실제로는 4m이상 되는 장육상으로 추정된다.

서 오층석탑 (西 五層石塔, 국보236)과 동 오층석탑 (東 五層石塔)

서 오층석탑 (西 五層石塔, 국보236호)

서 5층석탑은 높이 9.5m로 경주지역에서는 나원리 5층석탑, 경주 남산 늠비봉 5층석탑과 함께 3기가 있다. 탑 기단부의 상,하층 갑석은 결실부분이 많아서 시멘트로 보수하는 등 전반적으로 부재의 훼손이 심하다.

서 오층석탑의 기단부는 이중기단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갖추었고 비교적 넓게 만들어져 안정감이 있다. 이중기단 중 1층 기단은 지대석 1매석과 면석 7매석으로 면석 양쪽에 우주를 두고 가운데는 탱주 2주로 총 8매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석 위에 갑석부연과 갑석을 올려놓았는데 총 4매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갑석 위에는 호각형(弧角形) 2단 받침으로 2층 기단을 받치고 있다.

2층 기단 면석의 양쪽에는 우주를 두고 가운데는 탱주 2주로 총 7매석으로이루어져 있다. 면석 위에 갑석부연과 갑석을 올려놓았는데 총 4매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위에는 각형(角形) 2단 받침으로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기단부에는 총 23매석의 부재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부는 옥개와 옥개석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의 옥개와 옥개석이 각각 1매석으로 총 10매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탑신 네 면에는 문비(門扉)를 모각(模刻)하고 가운데 한 쌍의 도깨비 문양 문고리가 부조(浮彫)되어 있으나, 가운데 문짝 분할 선은 표현되어 있지 않다. 문비 양쪽에는 연화대좌를 한 인왕상(仁王像, 금강역사상)1구씩 정교하게 조각했는데 8세기 전반기에 처음 나타나는 양식이다. 2층 이상 탑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고 2층 이상 탑신은 1층 탑신에 비해서 현저하게 줄어들어서 급격한 체감을 나타내고 있다.

서 5층석탑 1층 탑신 면석에는 문비(門扉)를 모각(模刻)하고 가운데 한 쌍의 도깨비 문양 문고리가 부조(浮彫)되어 있다.
문양의 도깨비는 신라의 도깨비 모습 아닐까?
문비(門扉) 가운데 문짝 분할 선은 표현되어 있지 않다.
문비 양쪽에는 연화대좌를 한 인왕상(仁王像, 금강역사상)이 1구씩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밑면에 5단의 옥개받침을 두고 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받침이 있다.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한 편이며, 처마의 앙곡은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부의 네 귀퉁이는 뚜렷하게 치켜 올려져 경쾌함을 더하고 있다네 귀퉁이에는 풍령(風鈴) 등 장식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상륜부는 노반 1매만 남아 있고 찰주를 포함한 다른 부재는 모두 결실되었다. 노반은 방형 육면체로 가운데에 원형으로 찰주공이 뚫려 있고, 상단(上端)2단으로 돌출된 돌림띠를 두르고 있다.

서 5층석탑의 부재 수는 모두 34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감은사지 3층석탑과 비교해 볼 때 층수는 높아도 부재 수는 1/3이 조금 넘는다. 이 또한 초기 석탑과 비교해 볼 때 시대적 차이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전체 비례가 아름답고 조각수법도 우수한 8세기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동 5층석탑은 1층 탑신(塔身)5층까지의 옥개석만 남아 있는 석탑으로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19662월에 현재의 자리에 세웠다동 5층석탑 뒤편에 갑석이 결실된 동탑 기단 부재 일부가 있다.

동 5층석탑은 1층 탑신(塔身)과 5층까지의 옥개석만 남아 있는 석탑이다.
동 5층석탑 뒤편에 갑석이 결실된 동탑 기단 부재 일부가 있다.
동 5층석탑 1층 탑신(塔身)의 연화대좌를 한 인왕상(仁王像, 금강역사상)과 문비 (門扉)의 도깨비 문양 문고리
국립경주박물관 내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 된 도깨비얼굴 기와
주차장에서 본 장항리사지(獐項里寺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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