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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말사 중 하나인 비로암은 극락암에서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암자로 고려 충목왕 원년(1345) 영숙(靈淑)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조 11(1578) 태근(太釿)대사가 중건하였고 이후 원명화상이 중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비로암 전경에는 정족산, 천성산으로 형성 된 큰 능선과 백련암, 옥련암을 품고 있는 작은 능선이 앞, 뒤가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영취산 자락에 위치한 암자이기에 가능한 경관이다. 종무소 옆 샘물은 영축산 암능을 타고 내려온 석간수로 산정약수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 샘물은 효능이 좋다고 알려져 찾는 이가 많다. 소위 영축산 정기를 담고 있어 몸과 마음 치유에 좋다고 한다.

  비로암 전경에는 정족산, 천성산으로 형성 된 큰 능선과 백련암, 옥련암을 품고 있는 작은 능선이 앞, 뒤가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영취산 자락에 위치한 암자이기에 가능한 경관이다.

 비로암의 서쪽에 발달한 계류(溪流)에 형성된 폭포로 소리가 일품이라 하여 통도팔경 중 제3경인 비로폭포가 있다. 영축산에서 발원되는 비로천에서 생성된 폭포로 유량이 풍부했던 예전에는 낙수 소리가 비로암과 영축산의 계곡을 삼킬 만큼 우렁찼다고 한다.

종무소 옆 샘물은 영축산 암능을 타고 내려온 석간수로 산정약수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 샘물은 효능이 좋다고 알려져 찾는 이가 많다. 소위 영축산 정기를 담고 있어 몸과 마음 치유에 좋다고 한다.

조선 후기 불화(佛畵) 연구에 귀중한 비로암 탱화(毘盧庵幀畵)

비로암에는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모니후불탱화를 비롯하여 극락탱화, 칠성탱화, 비로암에는 산신탱화, 독성탱화, 조왕탱화8점의 불화(佛畵)를 가리키는 귀중한 탱화가 있다. 화기(畵記)에 따르면 1899(고종 36) 비구 주화(周華) 등이 주도하여 조성한 후 비로암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현재 8점 중 3점은 비로암, 나머지 5점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다.

이들 탱화는 주제가 다양하고 연대가 확실하여 조선시대 불교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석가모니후불탱화는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을 보여 주는 가로로 긴 그림인 가로구도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중간 색조의 차분한 색감보다 원색에 가까운 색깔이 사용되었다.

석가모니후불탱화는 크게 삼세불화(三世佛畵)와 독존도(獨尊圖)로 나뉘는데, 비로암 대웅전의 석가모니후불탱화는 독존도에 해당한다. 크기는 가로 165, 세로 128이고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불화의 구도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상을 두고 좌우를 각각 2단으로 나누어 아래쪽에는 두 사람의 보살, 위쪽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 가섭과 아난 두 명의 제자, 바깥쪽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배치하였다.

석가모니의 피부는 황색으로 채색하였으며 계주(髻珠)와 정상계주(頂上髻珠)는 붉은색 바탕에 흰색 선으로 바림하였다. 광배(光背)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둥글게 표현하였고 테두리는 흰색 선으로 처리하였으며, 그 안에 군청색과 붉은색 2조의 선으로 원을 만들었다. 두광은 안쪽을 녹청색을 칠하였으며, 신광은 안쪽에 녹청색·황색·군청색·붉은색 띠를 차례대로 배열하여 빛을 형상화하였다.

석가모니 협시보살은 아래쪽 보살들의 경우 두광은 흰색 테두리 안을 녹청색으로 처리하였고 신광은 붉은색을 발랐고, 위쪽 보살들은 두광과 신광 모두 안쪽을 녹청색으로 처리하였다. 가섭과 아난은 녹청색의 두광만 표현하였다. 보살들은 모두 의자에 앉은 모습인데 오른쪽 다리는 내리고 왼쪽 다리는 올린 유희좌(遊戱座)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가섭과 아난 두 제자는 손을 가슴에서 모아 합장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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