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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여타 광역시 보다 관할 내 산이 많고 사연 또한 다양하다일제 강점기 때 일본 제국주의는 대륙침략과 한반도 병참기지화와 이를 위한 자원수탈 목적으로 국토의 산을 유린하였고 무차별 광산을 개발하였다. 부산지역의 산 또한 예외가 없었고 금과 구리 채굴목적으로 광산을 개발하였고 황령산, 금련산, 백양산, 이기대, 기장군 달음산 등이 도륙을 당한 산이다. 특히 이기대 구리광산은 폐광유출수로 인한 중금속 오염이 심각하였다.

황령산은 퇴적암, 금련산은 화산암으로 암석구성이 되어 있고 당시 황령산 및 금련산 일대는 구리 및 아연 제련소도 있었다. 황령산은 금을 채굴하였고 금련산은 구리를 채굴하기 위해 광산을 개발하였으며 지금은 폐광되어 막혀있거나 묻혀 버렸지만 80년대까지는 폐광 갱도가 여름철 피서장소로 인근 주민들이 사용하였다.

우암사에서 바라 본 전경

 

이곳 우암사는 폐광 된 갱도2곳을 매입하여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고 사찰 입구 진입로의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겨울에는 빙판길이 우려 되어 차량이용하기가 어렵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안전할 것 같다. 첫 번째 맞이하는 우미사의 갱도 사찰은 두 번째에 비하여 길이가 길다. 갱도 곳곳에 불교용품으로 사찰을 장식하였고 마지막 부분에는 불상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실제 갱도 끝은 아니고 단지 안전을 위한 방법인 것 같다. 두 번째 갱도 사찰은 길이는 짧지만 끝 부분은 넓고 분위기는 첫 번째에 비해 경건함과 숙연함을 많이 느껴진다. 다만 소원성취 돌이 있어 아쉽다.

첫 번째 갱도 사찰 입구
두 번째 갱도 사찰 입구

무엇보다도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 자원수탈 일환으로 이러한 갱도 건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강제징용을 당하였고 가혹한 노동착취를 시달렸는지 여기서 그분들의 고통을 가늠 해본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본성은 침략과 지배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곳 망미1동 광산촌 마을은 당시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터를 잡기 시작하여 조성 된 마을로 6.25 전쟁을 거치면서 현재는 100여 가구 200여명으로 대부분 노인들이 살고 있는 산동네다. 금련산 중턱 가파른 곳에 위치한 관계로 집들이 밀접하게 자리 잡고 있고 골목길 또한 좁다. 그렇지만 원색의 지붕 색깔과 산 아래 자연 환경과의 어울림이 조화를 이루어 전체 마을모습은 정겹고 아늑하다.

우암사 사찰 앞 광산촌 마을
금련산 중턱이라서 마을주민이 염소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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