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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음산(해발:588m)은 정관면과 일광면 원리와의 경계를 이루는 기장군의 명산이자 기장 8경 가운데 제1경이다. 달음산에는 예로부터 산삼이 있었다고 전해오는데 달음산 골짜기의 얼음이 녹을 무렵이면 천년 묵은 산삼이 사람으로 화(化)해서 상주(喪主)의 복장을 하고 이 산에서 내려와 좌천장터로 나들이 한다고 한다.

달음산 수리봉에서 본 풍광

달음산은 만장년 산지로 산정은 주상절리로 형성된 두 개의 봉우리인 취봉과 옥녀봉이 있다. 북쪽 산록에서 좌광천, 남쪽에서는 일광천이 발원한다. 옛날에는 달이 뜨는 산이라는 뜻인 월음산(月陰山)이라고도 하였다.

옥정사 입구

『기장현읍지』에서는 취봉산(鷲峰山)이라고 적고 있는데 옛 기장 사람들은 추봉산 또는 축봉산이라고 불렀다. 주봉(主峰)의 이름은 취봉(鷲峰) 또는 수리봉이라고 하고, 그 동북쪽에 있는 봉우리를 옥녀봉(玉女峰) 또는 구슬 아기봉이라고 한다.
달음산 설명에는 주봉(主峰)인 취봉(鷲峰) 또는 수리봉을 달음산이라 하고 북쪽에 있는 봉우리를 옥녀봉(玉女峰) 또는 구슬 아기봉을 월음산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옥정사 일주문

취봉 일대에서 발원한 하천을 취정천(鷲井川), 옥녀봉에서 발원한 계곡을 옥정천(玉井川)이라고도 한다.
달음산 산행코스는 5가지가 있는데 옥정사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빨리 수리봉 정상에 도착한다. 동해선 전철을 이용하는 경우는 좌천역에서 내려서 광산마을에 까지는 30분정도 걸린다. 차를 가지고 오는 경우는 옥정사 주차장에서 주차하고 출발하면 된다.

달음산 정상인 수리봉 가는 길에 있는 편백나무 숲

옥정사에서 달음산 정상 수리봉까지는 1시간 30부정도 소요된다. 수리봉에서 옥녀봉 방향으로 하산하여 광산마을 초입에 도착하는데 40분 정도 소요된다.

정관

달음산 수리봉(취봉 鷲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일광면 원리 상리마을에서 달음산 기슭을 올라가면 해먹이라는 낙타 등처럼 생긴 능선이 있고, 그 능선 중턱에 골짜기가 있고, 그곳에 장사바우라는 큰 바위가 있다. 장사바위에서 올라가는 곳에 찬물샘이 있고, 그 옆에 집터가 있다. 이곳을 이고(李古) 집터라 하고 있다.

정관

신라 석탈해왕 때 이곳에 이고(李古)라는 늙은 부부가 집을 짓고 살면서 장사바우 앞에서 이들을 점지하여 달라고 기원하였다. 달음산의 신령님이 감응하여 쉰 살이 넘은 외로운 늙은 부부에게 옥동자가 탄생하였다. 늙은 부부는 금지옥엽처럼 키우면서 바우라고 불렀다.

달음산 수리봉의 정상 표지석
수리봉에서 본 정관

바우는 일곱 살이 되자 큰 바위를 번쩍 들고 내던지기도 하고 엄지손가락으로 빙빙 돌리기도 하였다. 바우장사의 소문이 퍼지게 되자 신라에서는 자객을 시켜 암살하려고 하였다. 그 당시 이곳은 신라를 괴롭히던 거칠산국이라는 작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위협을 느낀 바우는 부모 앞에 엎드려 신라국의 첩자가 소자를 죽이려 하니 소자는 성년이 될 때까지 피신을 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하직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나서 장사바위에 올라서 왼쪽무릎을 꿇고 오른손가락을 짚고 힘껏 뛰어오르자 양 겨드랑이 밑에 비늘나래가 3자나 펴지면서 독수리처럼 날아 달음산 수리봉(鷲峰)에 앉았다.

수리봉에서 본 일광
수리봉에서 아득히 보이는 LCT

수리봉의 날카로운 바위를 평탄하게 다지고 이곳에서 며칠간 머물다가 천마를 타고 북쪽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도 장사바위에는 이 바우소년 장사가 왼쪽무릎을 꿇었던 자리와 오른손을 짚었던 흔적이 바위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고, 집터와 샘터가 남아 있다.

수리봉에서 옥녀봉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
수리봉(취봉 鷲峰)
산불감시 초소
달음산 2개의 봉우리 중 하나인 옥녀봉

그때부터 이 바위를 장사바우라고 하고 애기장사를 바우장사라고 불렀고 집터를 이고 집터라 하고 있다. 그리고 달음산의 수리봉(취봉 鷲峰)은 그 위가 묘하게도 넓이가 20평정도 평탄하고 잔디가 덮여져 있는데, 이 바우소년 장사가 독수리처럼 날라 올라가서 머문 곳이라 하여 수리봉이라 하고, 한문으로 취봉산(鷲峰山)이라 표기하고 이를 속언으로는 추봉산이라 한다.

옥녀봉 기슭의 편백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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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산을 가지고 있는 광역시가 부산광역시이며 이것은 부산의 큰 복이다. 이들 중 장산은 해발 634m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며 부산시민이 사시사철 찾는 곳이다. 더불어 대천공원이 조성되어 산행은 물론이며 운동, 각종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해발에 비해 수량이 풍부하여 춘천의 흐르는 물은 가뭄에도 마르는 날이 없어 여름철이면 아이들의 물놀이 터가 된다. 이에 옛 부터 장산 앞 지역은 비옥한 농경지를 이루었고 청사포 앞바다의 풍부한 해산물과 함께 풍요로운 땅이었다.

장산 450m 자락에는 20가구 100여명 주민이 녹차재배 등 농업과 등산객 상대로 하는 식당을 주업으로 살고 있는 장산마을이 있다이 마을은 19636.25전쟁 상이용사 10여명이 원호청으로부터 정착 대부금을 받아 설립한 장산개척단에서 시작된 마을이다.

당시 산정을 개간하여 무, 배추 등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며 살았으나 생활여건이 열악하여 개척단원들은 마을을 떠났다. 그 후 퇴역 장병 40여 세대 120여명이 부산시로부터 토지를 불하받아 무 재배를 하며 정착하였다.

그리고 미국 복지재단에서 기증한 홀스타인 젖소 덕분으로 낙농업을 통해 장산목장으로 마을이 번창하였으나 1985~ 1987년 우유파동과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에 따른 젖소 사육 금지, 자녀교육 등으로 일부가 마을을 떠나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장산을 좀 더 들여다보면 부산국가지질공원,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청산리 대첩의 숨은 영웅 애국지사 강근호의 숨결이 모정원에 남아있다. 또한 민속 및 토속신앙이 전해지고 있는 천제단, 마고당 등 있어 장산을 찾는 이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동국여지승람(1418)과 동래부지(1740)에 의하면 부산의 전신인 동래의 옛날은 장산국(萇山國)이었으며 신라가 이를 취해 거칠산군(巨漆山郡)을 두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장산을 동래부지도에는 상산(上山)이라는 이름으로 장산이라고도 하고 봉래산이라고도 하였다.

규장각 소장의 동래부지도에는 장산의 위치에다 장산국기라 적혀있고 해동지도에는 상산에다 장산국기라 적혀 있다. 동래부읍지 역시 장산이라고 표기하고 기장의 운봉산에서 뻗어 내렸다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동래현의하면 옛날에는 장산국(萇山國) 혹은 내산국(萊山國)이라고도 하였다. 신라가 점유하고 나서 거칠산군(巨漆山郡)두었는데,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고려 현종이 울주(蔚州)속시켰고 현의 동쪽 15리에 상산(上山)이 있으며, 대마도를 바라보기에 가장 가깝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산을 중심해서 장산국, 또는 내산국이라는 부족국가가 형성돼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날씨가 맑으면 저 멀리 대마도가 보이는데 실제 거리는 50km이다.

삼한시대의 부산에는 변한(변한)12국 중 하나인 독로국(凟盧國)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 삼국지 위서 한전에는 독로국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왜와 접해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독로국이 현재로서는 동래지역에 있었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가 동래지역의 거칠산국을 멸망시키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독로국과 거칠산국이 같은 것인지의 여부는 현재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최근 장산 정상 개인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우물터를 발견했는데 지역 향토사학계에서는 옛날 장산국 우물터가 아닌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장산국의 오능은 사라지고

장산국은 신라와 가야의 경계지역에 위치하였는데, 이 장산국에 5개의 왕릉 이 존재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신라와 가야의 침략을 피하기 위하여 궁궐과 왕릉은 장산 안에 있었으며, 6·25전쟁 당시 미군이 탄약 창고를 설치하기 전 좌동 일대 어느 작은 절(약수암) 옆에 5개의 큰 무덤이 바로 그것이라 전해진다.

기원 후 5~6세기경에 신라(석탈해왕) 세력이 이곳에 진출하면서 장산국이 멸망하자, 장산국 사람들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고 산의 오능은 초라한 무덤으로 변해 점차 잊히게 되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좌동 토박이 노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어릴 적 그 무덤을 보았는데 탄약 창고 공사를 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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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은 파리 에펠탑처럼 보통 1 ~ 2 시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이면에는 인상파 거장의 작품 440여 점을 소장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미술관이다. 원래는 종착역의 역사였지만 1986년 박물관으로 거듭 태어났다. 초기에는 1848년 ~ 1914년에 만든 장식예술을 전시하였다. 지금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 마네, 드가, 고흐, 르누아르, 로댕 등 인상파와 포스트 인상파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느 강변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

전시관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지하층으로 입장하여 조각상 1층은 조각상, 2층은 조각상과 아르누보 양식 3층 인상파 작품으로 전시 되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1887년). 고흐는 40점이 되는 자화상을 그렸고 자기 안에 있던 불안, 고독, 예술가로서의 고통을 표현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 그루트 준데르트에서 출생하여 불꽃같은 열정으로 세상을 살다가 1890년 7월 27일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자즈에서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렘브란트 이래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서 태양의 화가로 불린다. 고흐의 노란색으로도 불리는 태양의 색으로 800점이 넘는 유화를 남겼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인정을 받지 못한 불행한 화가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년). 아를에 있는 론 강을 그린 작품으로 친구 외젠 보흐에게 선물로 보냈다. 반 고흐는 별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고흐는 목사의 6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나 16세 때 구필화랑의 헤이그, 런던, 파리 지점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그림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영국에서 학교교사를 거쳐 벨기에의 보리나주 탄광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1880년에 화가의 뜻을 두었다. 20대 후반에 미술에 그는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후대 사람들에게 감탄시킨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빈센트 반 고흐의 오베르쉬르우자즈의 교회(1890년). 반 고희가 아를과 프로방스 생레미 정신병원을 나와서 1890년 5월 오베르쉬르우자즈의 여인숙에 정착하였고 그 해 7월 사망할 때까지 70여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때의 작품이다. 지금도 이 교회는 오베르쉬르우자즈에 있다.

1885년까지 주로 부친의 재임지인 누넨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최초 작품이 「감자 먹는 사람들」로 목사였던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완성한 작품이자 그를 진정한 화가의 반열로 오르게 한 작품이다.

클로드 모네의 국화(1878년)

파리 개선문은 나폴레옹1세의 명령으로 체코의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웨덴의 연맹 군대를 맞아 9시간의 혈전 끝에 승리한 그의 군대를 치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나폴레옹1세의 명령으로 세워진 개선문(1836년 준공)

1806년에 기공식을 시작으로 1836년에 완공했지만 나폴레옹은 유배중이라 완성작을 보지 못하고 훗날 그의 유골이 개선문 아래를 지나 앵발리드의 돔에 안치 되었다. 또한 1차 대전 승전 퍼레이드가 이곳을 지났고 드골 장군이 2차 대전 파리 탈환과 프랑스 해방 선언을 이곳에서 했다.

개선문을 상공에서 보면  12 꼭지의 별을 닮았다고 하여 별의 개선문이라고도 부른다 .

개선문은 건축가 샬그랭의 작품으로 높이 50m, 너비 45m, 폭 22m, 대형아치 29.19m, 소형아치 18.68m로 엄숙하며 장엄하다. 외관은 대형 양각 부조 4개, 액자형 음각 부조 6개로 이루어져 있다. 부조 내용 중 유명한 것이 「라 마르세예즈」라고 부르는 뤼드의 “1792년의 의용병의 출정”이고 의용병을 이끄는 인물이 승리를 상징한다. 샹젤리제에서 개선문을 마주 보았을 때 오른쪽에 있는 부조이다.
아치 내부에 새겨진 이름들은 프랑스 대혁명부터 나폴레옹 1세 섭정기간 중에 일어났던 혁명과 전투 때 사망한 장교의 이름이다. 문 지하에는 1차 대전 참전 무명용사들이 안치되어 있다. 매일 오후 6시 30분에 이들을 기리는 기념의식이 거행된다. 문 아래로 가려고 한다며 지하도를 이용해야한다.

개선문 주변을 에투알 광장 또는 드골광장이라고 부른다.

개선문은 12개의 대로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중 유명한 대로가 샹젤리제다. 개선문을 상공에서 보면 12꼭지의 별을 닮았다고 하여 별의 개선문이라고 부른다. 개선문 주변을 에투알 광장 또는 드골광장이라고 부른다.
루브르박물관과 개선문 사이 일직선상에 있는 콩코르드 광장은 오벨리스크가 있어 유명하다. 오벨리스크는 1836년에 이집트에서 선물 받은 것으로 원래는 1쌍인데 운반문제로 하나만 옮겨왔다. 과거에 루이15세를 축원하기 위한 기마상이 있었고 광장이름도 루이15세 광장이라고 불렀는데 프랑스 혁명 때 기마상이 철거되었다. 이름도 혁명의 광장으로 바꿨다.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1836 년에 이집트에서 선물 받은 것으로 원래는  1 쌍인데 운반문제로 하나만 옮겨왔다 .

프랑스 혁명 때 이곳에 단두대가 설치되어 루이16세를 비롯하여 마리 앙투아네트, 왕가 일족, 혁명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었다. 이 외에도 8년 동안에 약 1,34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피비린 나는 혁명의 광장을 콩코르드(화합, 조화) 광장으로 개칭하였다.

콩코르드 광장의 이름은 루이5세 광장에서 혁명의 광장으로 바뀌었고 최종 콩코르드(화합, 조화) 광장으로 개칭되었다.

파리에서 파리의 획이라는 도시계획 명칭이 있는데 루브르 박물관(궁전, 쿠르 카레)-콩코르드 광장-샹젤리제-개선문이 일직선상에 있다. 절대군주 시대에 왕족들이 사냥터인 생제르맹앙레로 가장 빨리 가는 길이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멀리 보이는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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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곧 국가다를 선언한 태양왕 루이14세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베르사유 궁전은 부르봉 왕조가 프랑스를 통치하는 200년 동안 왕가의 공식 거주지였다. 1789년 대혁명의 발발로 왕조가 몰락할 때 까지 이곳에서 16~18세기 프랑스 정치, 문화, 예술이 시작되었다.

베르사유 궁전 입구와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광객들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13세가 사냥터의 별장으로 사용하기 지은 작은 벽돌 건물을 성인이 된 루이14세가 증축을 하면서 궁전으로써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루이14세에게 있어서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 건립은 절대왕조의 구축을 위한 필수 조건 이였다.

황금색 구조물이 눈에 띈다.

루이 14세의 통치기간인 1660 ~ 1775년에 4번의 대형증축이 있었고 거울의 방, 소의 눈 살롱 등 현재 궁전의 형태를 잡았다. 기초 설계는 건축가 르 보, 조경사 르 노르트 그리고 장식가 르 브룅이 맡았다이들의 참여는 니콜라 푸케 재무대신의 보르비콩트 성에 이은 두 번째 협동 작업이다.

베르사유 궁전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을 하고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궁전을 제대로 보고자 한다면 최소 2일이 필요한 것 같다. 하루는 궁전 내부, 하루는 야외 정원과 건물을 둘러보는 것이다.

궁전 구조는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고 1층은 왕실 예배당이고 2층이 왕의 공식 처소, 왕비의 처소, 공식회랑, 왕의 내실로 구성되어 있다. 왕의 공식 처소에는 헤라클레스의 방, 아폴로의 방 등 8개의 방이 있고 왕비의 처소는 왕비의 방, 귀족의 방 등 5개 방, 실이 있다. 공식회랑은 거울의 방, 전쟁의 방, 평화의 방으로 되어 있다. 왕의 내실은 국왕의 침실, 만찬실 등 5개의 실, 방이 있다.

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전의 모형
피에르 파텔의 베르사유 궁전(1668년)

이 중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곳이 거울의 방, 왕비와 방, 국왕의 침실이다거울의 방은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진 방으로 전체길이 73m, 너비 10.4m, 높이 13m로 정원을 향하여 17개의 창문이 있으며, 반대편 벽에는 17개의 거울이 배열되어 있다. 왕족의 결혼식이나 외국 사신의 접견 등을 행하는 의식장이다. 왕비의 침실은 3명의 왕비 침실이며 19명의 왕손이 태어난 곳이다.

마리 앙투와네트와 자녀들
샤를 7세
헤라클레스 방의 천장화
「선행이 인간을 제도한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천장화로 헤라클레스를 포함하여 로마신화 주인공 142명이 등장하고 있다.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국왕의 침실
거울의 방
거울의 방은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진 방으로 전체길이 73m, 너비 10.4m, 높이 13m로 정원을 향하여 17개의 창문이 있으며, 반대편 벽에는 17개의 거울이 배열되어 있다. 왕족의 결혼식이나 외국 사신의 접견 등을 행하는 의식장이다.
거울의 방에서 야외 정원 풍경을 볼 수 있다.

베르사유 궁전 야외 또한 거대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압도적인 경관을 연출한다. 화려한 분수와 조각상 그리고 정비되어 절제 된 나무와 광활한 삼림지대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우며 웅장하다. 작은 숲을 이루는 14개의 정원이 전체 정원을 이루고 있다. 거울의 방에서 정원 풍관을 볼 수 있다.

주요 건물에는 별궁인 그랑 트리아농은 루이 14세 때 그의 애인인 매트농 부인을 위해 지어진 것이다. 나폴레옹 황제가 베르사유에 오면 묵었던 장소이다. 또 다른 별궁인 프티 트리아농은 루이 15세 때 애첩 마담 드 퐁파두르를 위해 지어진 것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때 자신의 취향에 맞게 정원과 실내장식을 꾸몄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영지 그리고 왕비의 촌락이다.

왕비의 촌락은 작은 시골 촌락 형식의 별궁으로 왕비의 시골생활 체험을 위하여 지어진 것이다.

파리에서 예술가 하면 연상되는 곳이 몽마르트 언덕이다. 이곳은 1860년대까지 파리의 외곽에 지나지 않았으나 성자 드니의 길이라는 전설과 언덕이 있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종교, 문화적 정체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생활이 궁핍한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피카소, 누아르, 로트레크가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몽마르트는 순교자들의 시체를 쌓아 두었던 언덕을 의미한다.

몽마르트 언덕의 테르트르 광장

특히 몽마르트 화가들의 광장으로 알려진 테르트르 광장은 18세기에 지어진 저택에 둘러싸여 있는데 무명화가와 화가 지망생이 그림을 그리는 곳으로 작품을 전시하거나,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돈을 벌고 있다. 이곳에서는 관광 인파들이 많아서 이를 이용한 소매치기들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과거 중세시대부터 파리의 석조 건물에 사용된 돌은 파리 지하에서 가져왔다. 파리 지하가 채석장인 것이고 지하에는 평균 깊이20m, 길이가300km인 자연 채석장이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이중 몽마르트 아래가 돌이 가장 풍부했다. 이로 인해 다른 지방에서 돌을 공수 할 필요가 없었다. 현재에도 파리지하에 채석하여 남은 돌이 많이 있다.

몽마르트 언덕 꼭대기에 하얀색의 대성당이 있는데 이름이 사크레퀴르 대성당이다. 정부에서 건립을 주도하였는데 1876년에 착공하여 1919년에 완공하였다. 목적은 프랑스 제3공화국 수립을 축하하고 시민들의 도덕성을 회복하자는데 있다.

몽마르트 언덕 꼭대기에 있는 사크레퀴르 대성당

그리스 십자가 모양에서 착안했는데 비잔틴과 로마양식을 절충해서 지었는데 흰색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맘껏 표현했다. 대성당 중앙 가장 큰 돔의 높이는 83m이고 지름이 55m이다. 시간이 되면 안에 들어가서 반월형 천장 모자이크를 감상해보자. 가톨릭 재단과 프랑스가 찬양하는 예수의 성심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대성당 앞 계단에서 전방을 바라다보면 파리전경이 파노라마처럼 180도 펼쳐지는데 장관이다. 또한 앞마당 공터에서 날씨가 좋으면 거리공연과 음악회가 열려 여행자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준다.

파리에 오면 호기심으로 먹는 달팽이 요리(에스까르고)

프랑스 3대 요리 중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 달팽이 요리이다. 「에스카르고」라고 부르며 부르고뉴와 상파뉴 지방의 최고의 요리이고 이 달팽이는 양식하여 키운 것으로 20여 가지의 조리법이 있다. 그리고 거위 또는 오리 간을 포도나 우유에 재웠다가 만든 요리인 「푸아 그라」가 있고 송로버섯 요리인 「트뤼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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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햄프셔(New Hampshire) 州는 뉴잉글랜드 지방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 캐나다의 퀘벡 州와 국경을 접하며, 서쪽으로 버몬트 州, 남쪽으로 매사추세츠 州, 동쪽으로 메인 州에 접하며 남동쪽의 매사추세츠 州와 메인 州 사이의 좁은 지역에는 항구도시 포츠머스(Portsmouth)가 있어 대서양을 접하고 있다.

40개가 넘는 봉우리로 이뤄진 화이트 산맥(White Mountains)의 설경

州의 별명은 '화강암의 주(The Granite State)'로 한때 화강암 채석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산업이었고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다트머스 대학이 하노버에 있다. 매사추세츠 주, 로드아일랜드 주, 코네티컷 주, 버몬트 주, 뉴햄프셔 주, 메인 주 등 여섯 주를 뉴잉글랜드라고 부르고 지리적으로 서쪽으로는 애팔래치아산맥이 경계를 이루고 동쪽으로는 대서양과 접해 있다.

화이트 산맥(White Mountains) 중 최고봉이 미국 대통령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워싱턴 산(해발 1,916m)이다.

40개가 넘는 봉우리로 이뤄진 화이트 산맥(White Mountains)이 뉴햄프셔 주와 메인 주에 걸쳐 뻗어있는데 그 중 최고봉이 미국 대통령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워싱턴 산(1,916m)이다. 원주민 인디언들은 이 산을 아지오코축(Agiocochook)라고 부른다.

워싱턴 산을 원주민 인디언들은 아지오코축(Agiocochook)라고 부른다.

미국 북동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1934년에는 시속 372㎞의 세계 최고 풍속이 측정된 바 있으며 기상변화가 극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산 정상의 평균 온도가 여름에는 7도이고 바람이 끊임없이 분다. 그러나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9월 말이면 절정에 달한다.
워싱턴 산을 자가용으로 정상까지 드라이브로 풍광을 즐기려면 핑크햄 넛치(Pinkham Notch)에 있는 Mt Washington Auto Road를 이용하며 된다. 직접 운전하지 못할 때는 1시간 30분에 걸쳐 가이드가 동행하는 밴 관광을 하면 된다.
또한 노스 콘웨이(North Conway)에는 옛 증기기관차로 단풍구경을 할 수 있는데 11마일 길이의 워싱턴 산 계곡을 1시간에 걸쳐 통과하며 운행하는 노스 콘웨이 레일로드(North Conway Scenic Railroad)가 있다.

노스 콘웨이 레일로드(North Conway Scenic Railroad)에서 본 늦가을 풍경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연합국 44개 국가가 국제 통화 체제인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를 뉴햄프셔 州 브레튼 우즈에서 체결하였다. 회의 장소가 브레튼 우즈에 있는 Mt Washington Hotel인데 200개 이상의 객실이 있고 1902년에 개장하였다.

워싱턴 산 정상까지 증기기관차로 가는 Mt Washington Cog Railway

이 전에는 지역 주민과 일부 부유층에게 브레튼 우즈는 조용한 여름 휴양지로만 알려졌다. 근처에 워싱턴 산 정상까지 증기기관차로 가는 Mt Washington Cog Railway이 있는데 정상까지의 소요시간은 3시간이다. 꼭 예약을 해야 하고 기상변화가 극심한 워싱턴 산 날씨를 고려하여 옷을 든든히 준비해야한다.

그리고 한국사에서 뼈아픈 사건의 하나인 포츠머스 (Portsmouth) 강화조약이 1905년 9월 5일 뉴햄프셔 주 항구도시 포츠머스에서 맺어져서 러일전쟁이 종식되었다.
주홍글씨로 유명한 19세기 미국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단편 소설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은 ‘산의 노인(The old man of the mountain)’을 빗대어 이름 붙인 제목이다.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은 주홍글씨를 통하여 미국 청교도들의 위선을 묘사하였다.

Flume Gorge Visiter Center 입구

프랑코니아 협곡 국립공원에는 자연적으로 갈라진 화강암 플룸(Flume) 경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눈이 많이 오는 이곳 날씨를 반영하여 지붕 있는 다리(Covered Bridge)를 볼 수 있다.

Flume Gorge의 지붕 있는 다리 (Covered Bridge)

뉴햄프셔 지명은 영국의 햄프셔 지방에서 유래했는데 1629년 존 메이슨 선장이 피스캐터콰 강(Pis-cataqua River) 과 메리맥(Merrimack River) 강 사이에 있는 땅을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그곳을 「뉴햄프셔」라고 이름 지어졌다. 당시 유럽인들이 오기 전에는 대략 5,000명의 아메리카 원주민알곤킨 족들이 살고 있었다.
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은 미국시민들의 자유로운 행동이다. 남을 의식하지 자유스러운 복장 특히 대중교통 대기실에서는 바닥에 누워서 책을 보거나 잠을 자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결코 떠들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간혹 실수로 약간 부딪히면 먼저 이야기 한다 “ Excuse me "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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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은 애리조나(Arizona) 주 북부에 있는 거대한 협곡으로 20억 년 전에 생성되었고 길이 447km, 너비 6~30km, 깊이 1,500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으로 콜로라도 강이 동서로 가로 질러 흐르고 있다. 협곡의 벽에는 시생대 이후 20억년 동안의 많이 지층이 드러나 있어 지질학 교과서라고 부르고 있다. 콜로라도 소나무를 비롯하여 식물과 조류 300여종, 포유류 76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79년에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네바다 주의 라스베이거스 매캐런 국제공항

애리조나 주는 미국 서부의 상징물인 사구아로 선인장을 많이 볼 수 있고 남쪽 절반은 소노란 사막(Sonoran Desert)로 덮여 있다. 스페인 탐험가 코로나도가 이곳을 누빈 후 유럽 이주민과 선교사들이 살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많은 부족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1886년 미국이 영토 확장을 위해 인디언과 전쟁을 하였고 아파치 전사 제로니모가 항복을 함으로써 미국 지배하에 들어갔다.

도박과 유흥의 도시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Las Vegas)는 여행자에게 말에게 물과 음식을 먹일 수 있는 초원이라는 뜻이다.

보스턴에서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여행의 출발은 보스턴의 로건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네바다 주의 라스베이거스 매캐런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그곳 라스베이거스 룩소르 호텔에서 1박을 하였다. 룩소르 호텔은 금속과 유리로 이루어진 30층 짜리 피라미드형 호텔로 1993년에 개장하였다. 라스베이거스의 명물로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가 정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밤이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광선을 쏘아 올린다.

비행기에서 본 라스베이가스

도박과 유흥의 도시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Las Vegas)는 옛날 북쪽에 작은 샘이 위치하고 있어 여행자들이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거주지가 시작되었다. 라스베이거스(Las Vegas)는 여행자에게 말에게 물과 음식을 먹일 수 있는 초원이라는 뜻이다. 1905년 5월 15일에 철도회사 유니언 퍼시픽이 이 지역을 1200여개로 분할하여 매각하였는데 하루 만에 매각이 끝났다. 그래서 이 날이 라스베이거스의 창립일이 되었다.
도박 산업은 1942년 로스앤젤레스의 개발업자와 마피아 연합이 화려한 대규모의 카지노를 짓기 시작했다. 1946년에 벅시 시겔이 Flamingo를 개장하면서 정장차림의 관습이 정착되었다. 1960년대에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수많은 카지노를 사들임으로써 조직 폭력배의 영향력이 사라지게 되었다. 카지노 출입은 18세 이상 가능하고 21세 이상이면 도박하거나 술을 마실 수 있다.

US-93 도로 위에서 본 네바바 주 풍광

다음날 차를 렌트하여 아침부터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하였다. US-93 도로를 타고 가다가 I-40 도로로 바꾸어 달렸다. 중간에 후버 댐을 만나는데 높이가 756피트에 아르데크 양식의 우아한 곡선미를 갖추고 있다. 원래 이름은 볼더 댐(Boulder Dam)이고 대공황 타개책인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공사가 1931년에 착공하여 1935년에 완공되었는데 라스베이거스 등 대도시에 용수와 수력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마지막 도로 AZ-64 이용하여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의 사우스 림(South Rim)에 도착했는데 소요시간은 약 6시간이 걸렸다.

I-40 도로 위에서 본 풍광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에서 관광하기 좋은 달은 6월 ~ 9월이고 공원 내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자가용차를 이용할 수 있고 자연의 지형을 이용한 전망 포인트도 많다. 그리고 계곡 아래 콜로라도 강까지 내려가는 트레일 코스도 있다. 여름에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경우가 있어 우비를 지참해야 한다. 고도차가 커서 온도 변화와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기 때문에 여러 벌의 옷을 준비해야 한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풍광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을 투어 하는 방법에는 셔틀버스와 승용차, 헬리콥터를 이용하는 것이 있다. 공원 안으로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어 드라이브하면서 돌아보는 것이 편하다. 또한 렌터카를 이용할 수 있다. 셔틀버스는 무료이고 4월 ~ 9월에만 운행하며 3개 노선이 있다.
야바파이 포인트(Yavapai Point)까지 가는 빌리지 루트, 웨스트 림의 끝 부분인 허미츠 레스트(Hermit′s Rest)까지 가는 허미츠 레스트(Hermit′s Rest) 루트 그리고 이스트 림의 야키 포인트(Yaki Point)까지 가는 야키 포인트·사우스 카이밥 루트가 있다. 또한 요금을 지불하는 관광버스 투어도 있다.
헬리콥터 투어는 허미츠 레스트(Hermit′s Rest) 서쪽부터 콜로라도 강 위를 횡단하는 소요시간 30분의 노스 캐니언 투어와 그랜드캐니언 협곡에서 동쪽의 사막까지 가는 소요시간 50분의 임피리얼 투어가 있다.

하이킹을 좋아하면 노새 상행도 생각해볼만하다. 1일 노새여행이 왕복 7시간 정도 걸린다. 유의 할 것은 체중 75kg 미만이고 키가 142cm이상 이어야 한다. 그리고 급류타기가 있는데 4월부터 10월 까지 운영하며 다양한 보트를 타고 콜로라도 강의 급류를 즐기는 것이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의 입구는 사우스 림(South Rim)과 노스 림(North Rim)이 있는데 사우스 림은 연중 개방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많은 관광객이 모여 든다. 노스 림은 5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만 개방하는데 사우스 림에 비하면 조용하여 여행 스타일에 따라 선택하여 즐기는 곳이다. 노스 림과 사우스 림까지 직선거리는 6km이지만 자동차를 이용해서 350km를 돌아가야 되기 때문에 약 5~6시간 걸린다. 정기버스는 하루 1 회 운영한다.

사우스 림은 그랜드캐니언 빌리지(Grand Canyon Village)를 중심으로 이스트 림(East Rim)과 웨스트 림(West Rim) 나뉘는데 그랜드캐니언 빌리지 인근의 관광명소로는 1540년 스페인의 탐험대가 최초로 그랜드 캐니언을 발견하게 된 장소인 야바파이 포인트(Yavapai Point)가 있고 근처에는 야바파이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그랜드 캐니언의 여러 전망 포인트 중 가장 경관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마더 포인트(Mather Point)있고 일출 풍광도 최고다.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Bright Angel Point) 코스는 중앙에 흐르는 콜로라도 강까지 약 20km를 지그재그로 내려가는데  왕복시간이 10~12기간이 소요되어 하이킹으로 야영장에서 1박을 하여야 한다.

이스트 림은 동쪽으로 끝인 데저트 뷰(Desert View)까지 약 40km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일 년 내내 차량 통행이 가능하여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셔틀버스의 종점으로 바람과 물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기묘한 산들을 볼 수 있는 야키 포인트(Yaki Point)와 이스트 림에서 풍광이 가장 뛰어난 그랜드 뷰 포인트(Grand View Point)가 있다. 미국 대서부의 경관을 그렸던 화가 토머스 모란(Thomas Moran)의 이름을 붙인 모란 포인트(Moran Point)있다. 그리고 이스트 림의 끝부분인 데저트 뷰(Desert View)가 있는데 1932년 인디언의 유적을 재현한 전망탑(The Watch tower)이 있다.

그리고 사우스 림의 반대쪽에 있는 노스 림은 사우스 림보다 규모는 작고 교통이 불편하지만 조용하다. 해발 8천 피트가 넘으며 사우스 림에 비해 평균 980피트나 높아서 여름철이면 시원하고 겨울철에는 더 추우며 기후는 더 습하다. 전나무 숲이 노스 림이 더 울창하다. 관광명소에는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임피리얼 포인트(Imperial Point)가 있는데 거대한 암벽들이 여명 속에서 드러나는 일출 모습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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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주(州)는 미국 남동부에 위치하고 멕시코 만과 대서양 사이에 놓인 반도로 면적은 한반도 면적의 85%이다. 미국의 남쪽에 있어서 적도에 가까운 편이고 반도 끝에서 다시 플로리다 키스 (Florida Keys) 제도가 이어진다. 플로리다 북부에는 익히 알고 있는 스티븐 포스터 작사, 작곡의 스와니 강이 있는데 조지아 주(州) 남부의 오커퍼노키 습지대에서 흐른 강은 플로리다 주(州)의 북부를 지나 멕시코 만(灣)에 흘러든다. 온대기후지만 매우 무덥고 습하고, 남쪽 끝으로 내려가면 아예 열대기후이다.

월트 디즈니랜드의 랜드 마크인 신데렐라 성(Cinderella Castle)

1513년에 지금의 케네디 우주 센터 옆의 케이프 케너버럴(Cape Canaveral) 지역에 상륙한 스페인의 정복자이자 푸에르토리코의 전 지사인 후안 퐁세 데 레온이 스페인 부활절 꽃 축제인 파스쿠아 플로리다(Pascua Florida) 기념일에 상륙하였다 하여 이름을 라 파스쿠아 플로리다라고 붙였다. 당시 그곳 플로리다에는 아팔라치 인디언, 티뮤쿠안 인디언, 칼루쟈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신데렐라 성(Cinderella Castle)의 야경

1565년에 스페인 귀족 페드로 메넨데즈 데 아빌레스가 신대륙에서 가장 오랜 된 식민지 정착지인 세인트어거스턴(St Augustine)을 세웠다. 따라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가 세인트어거스턴(St Augustine)이고 유렵식 건축과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분위기가 남아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해군기지가 건설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실버 촌이 최초로 유행을 일으켰다. 케네디 우주 센터 등 우주산업이 풍요로움을 가져 주었고 1959년 쿠바 혁명으로 마이애미에는 피델 카스트로 정권에 반대하는 쿠바인이 영구 정착촌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월트 디즈니랜드로 인해 관련 관광업 직종에 수백만 일자리가 창출됐다.
플로리다 반도에서 플로리다 키스 (Florida Keys) 제도 끝인 키웨스트(Key West)는 마이애미보다 오히려 쿠바 아바나가 가깝다. 이곳에 작가 헤밍웨이가 1931년부터 1940년까지 살았던 헤밍웨이 하우스가 있고 그의 피 묻은 군복 등 유물이 소장되어 있는 키웨스트 미술관과 박물관도 있다. 또한 헤밍웨이 데이 축제가 있어 헤밍웨이를 느끼게 하는 도시이다.

월트 디즈니 랜드의 리조트 전경

플로리다 중앙의 올랜드에 위치하고 있는 월트 디즈니 랜드는 1964년 월트 디즈니가 놀이공원 부지를 찾던 중 습지, 오렌지 농원 등 미개발지인 이곳을 놀이 공원으로 확정하여 공사를 시작하여 1971년에 개장하였다. 면적은 43만 평방 마일이다.
올랜드(Orland) 지명은 1830년대 미국과 세미놀 인디언과의 전쟁(세미놀 전쟁, 플로리다 전쟁으로 세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전사한 미국 병사 올랜드 리브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세미놀(Seminole) 인디언은 16세기 스페인이 플로리다 정복 후 원주민 인디언은 질병으로 급감하였고 18세기에 타 지역 조지아 주, 미시시피 주, 앨라배마 주, 등에서 이주해온 인디언이다. 이들은 문명화된 다섯 부족(체로키족, 치카소족, 촉토족, 크리크족, 세미놀족) 중 하나이다.

월트 디즈니랜드는 애니멀 킹덤, 디즈니 MGM 스튜디오, 매직 킹덤, 엡코트 센터 등 4개의 테마 파크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유를 갖고 충분히 즐기려면 최소 7일은 걸린다. 대충 파악하고 즐기려면 4~5일 정도 걸린다. 플로리다 올랜드 날씨는 여름이 고온다습하여 9월 ~ 12월에 오는 것이 야외 놀이 공원 즐기기에 좋다. 6월, 7월, 8월은 매우 덥고 습하며 국지성 소나기가 내려서 피하는 것이 좋다.
애니멀 킹덤(Animal Kingdom)은 1998년에 오픈한 월트 디즈니 월드의 네 번째 테마파크로 공룡시대의 지구부터 아프리카의 사바나, 동남아의 열대우림 등을 재현하고 있다. 애니멀 킹덤 중앙에는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라는 거대한 나무가 있는데 14층 높이에 밑둥은 약 15m이고 나무에는 325종 이상의 동물모습이 새겨져 있다. 아프리카 구역에서 32명 정원의 사파리차를 타고 사자, 기린 등 아프리카 동물을 탐험하는 킬리만자로 사파리 투어가 있다.
라이온 킹을 모티브로 춤과, 노래 그리고 특별한 퍼포먼스로 가득한 라이온 킹 축제(Festival of the Lion King)가 있다.

애니멀 킹덤(Animal Kingdom) 입구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Donald Duck
애니멀 킹덤의 중앙에 있는 생명의 나무로 14층 건물 높이에 밑둥 둘레가 약 15m이다.
나무에는 325종 이상의 동물모습이 새겨져 있다.
아프리카 구역의 입구
아프리카 구역에서 32명 정원의 사파리차를 타고 사자, 기린 등 아프리카 동물을 탐험하는 킬리만자로 사파리 투어
라이온 킹을 모티브로 춤과, 노래 그리고 특별한 퍼포먼스로 가득한 라이온 킹 축제(Festival of the Lion King)

디즈니 MGM 스튜디오(Disney-MGM Studios)는 디즈니 영화 관련 캐릭터의 출현과 촬영 현장 투어, 스턴트 쇼, 거친 놀이기구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디즈니 MGM 스튜디오 투어(Disney-MGM Studios Backlot Tour)는 셔틀을 타고 의상, 소품 제작현장과 실제 촬영 현장을 둘러본다. 그리고 거리 세트를 직접 걸어 보고 Catastrophe Canyon에서는 자연재해의 특수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디즈니&MGM 스튜디오 투어 (Disney-MGM Studios Backlot Tour) 는 셔틀을 타고 의상 , 소품 제작현장과 실제 촬영 현장을 둘러본다.
거리 세트를 직접 걸어 보고 Catastrophe Canyon에서는 자연재해의 특수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매직 킹덤(Magic Kingdom)은 월트 디즈니랜드의 랜드 마크인 신데렐라 성(Cinderella Castle)이 있다. 다양한 놀이 기구와 디즈니 캐릭터가 펼치는 퍼레이드 등 있다. 매일 밤 10시에는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불꽃놀이 행사

엡코트 센터(Epcot Center)는 미래사회의 실험적인 모델(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의 머리글자를 따서 이름 붙인 곳으로 미래의 세계(Future World)와 월드 쇼 케이스(World Showcase)로 구성되어 있다. 미래의 세계는 에너지, 바다, 대지의 축복 등을 테마로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조명한 미래의 세계는 각종 흥미진진한 파빌리온(Pavilion)들이 있다.
엡코트 센터의 상징물로 우주선 지구호(Spaceship Eearth)라는 거대한 은색 구체가 있는데 지름은 약 50m으로 삼각형 알루미늄 패널 1만 1,324장을 서로 붙여서 만든 것이다. 내부에는 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역사가 만들어져 있다.

농업을 통해 환경 문제를 생각하는 대지(The Land) 퍼빌리언. 온실 안의 각종 식물들

미래의 세계(Future World)는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미래에 대한 예견과 과학기술을 돌아 볼 수 있는 곳이다. 월드 쇼 케이스(World Showcase)는 영화 상영과 크루즈 등의 흥미진진한 어트랙션 외에 특색이 풍부한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야간에는 우주선 지구호 (Spaceship Eearth)에서 레이저 쇼를 연출하고 있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주변지역을 여행을 가는데 거기서 여행객들을 많이 접한다. 젊은 남녀들은 혼자인 경우가 많고 특히 노부부들이 자주 보인다. 전반적으로 여행이 생활화가 되어서 다정하게 유유자적 차를 마시고 책을 읽는 모습을 보니 무척 행복해 보인다.

올랜드(Orland)에 있는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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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9월 101명의 남녀 퓨리턴(Puritan, 청교도)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 플리머스 항에서 뉴욕 항을 향해 출발했다. 그들은 몇 마리의 동물, 여러 가지 생활도구, 씨앗, 음식 등을 싣고 약 2달에 걸친 항해 끝에 뉴욕이 아닌 보스턴 남쪽 지역인 케이프 코드(Cape Cod)에 도착했다. 그곳은 그들이 정착허가를 받지 않는 곳이라 12월에 다시 남쪽으로 항해하여 뉴욕 항에 도착하려 했으나 오랜 항해에 지쳐서 포기하고 인근 지역에 상륙했는데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40마일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1620년 12월 상륙하여 정착한 퓨리턴(Puritan)의 마을을 재현 한 플리머스 플랜테이션 (Plymouth Plantation) 입구

그리고 이곳에서 정착했고 출발한 영국의 항구 이름을 따서 플리머스(Plymouth)라고 명명하였다. 이들은 북아메리카 해안의 추운 겨울을 나면서 준비 부족으로 그해 절반가량만 살아남았다. 다행히도 주변 인디언 부족과 반세기 이상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였고 초기에 우연히 영어를 할 줄 아는 파투셋(Patuxet) 부족 출신의 스콴토(Squanto)라는 인디언의 도움도 받았었다. 나중에 이들을 순례시조, 필그림 파더스(Pilgrims Fathers)라고 불렀다.

현재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는 1620년 12월 상륙하여 정착한 당시 퓨리턴의 마을을 재현 한 플리머스 플랜테이션(Plymouth Plantation)이 있는데 17세기 주민의 모습으로 한 배우들이 퓨리턴의 생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이곳에서 3마일 떨어진 곳에서 메이플라워호를 복제해서 만든 메이플라워호(Mayflower) Ⅱ가 있고 필그림이 맨 처음 밟은 자리라는 플리머스 록(Plymouth Rock)이 있다.

플리머스 바위는 도리아 양식의 사방이 뚫린 신전 건물 안에 들어있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움푹 파인 바닥 아래 놓여있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바위이고 표면에는 1620이란 숫자가 새겨져있다. 1620년 퓨리턴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상륙할 때 밟은 바위이다.

1620이란 숫자를 보면서 비록 21세기 세계 최강 미국이나 200년의 짧은 역사의 문화재를 보니 웃음이 나온다. 진정 퓨리턴이 이 플리머스 바위를 밟고 내렸는지.

16세기 초 서유럽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면죄부판매와 성직 매매 등으로 비판을 받았고 이에 대하여 종교 개혁을 주장하며 마틴 루터와 장 칼뱅이 주도한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 이때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생겨났다.
당시 영국 국왕 헨리 8세는 스페인 출신의 왕비인 캐서린과 이혼을 원했지만 카톨리 교회의 교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을 이룩한다는 명분으로 영국 국왕이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는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를 설립하였다.

플리머스 플랜테이션(Plymouth Plantation) 가옥 내부

그러나 무늬만 종교 개혁 일뿐 기존 교회의 부패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이를 정화(Purify)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퓨리턴이다. 퓨리턴은 신학적으로 장 칼뱅의 추종자들이었다. 점차 영국에서 탄압을 받자 퓨리턴의 회중파와 분리파 중 분리파는 신대륙에서 자신들만의 신앙 공동체를 건설할 계획으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 플리머스 항을 떠났다. 이후 10년이 지나서 퓨리턴 중 회중파도 신대륙을 향해 영국을 떠났다.

플리머스 플랜테이션(Plymouth Plantation)에서 17세기 주민의 모습으로 한 배우들이 퓨리턴의 생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메이플라워(Mayflower)는 5월의 꽃으로 의미인데 산사(山査)나무의 꽃이다.
산사나무 꽃은 5월에 피는데 흰색으로 배꽃과 유사하다. 산사나무는 서양에서는 호손(Hawthorn)부르는데 천둥이 칠 때 생겨난 나무라고 한다. 그래서 벼락을 막아 주는 나무라하여 가지를 옷에 꽂아 놓으면 벼락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집안에 꽂으면 화를 면할 수 있다는 벽사신앙을 가지고 있다. 또한 목재로 쓰이고 밭에 설치하는 울타리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메이플라워호를 복제해서 만든 메이플라워호(Mayflower) Ⅱ
메이플라워호(Mayflower) Ⅱ 내부

퓨리턴이 영국 플리머스 항을 출발할 때 배이름을 메이플라워(Mayflower)라고 불렀던 이유는 항해 중 벼락을 막기 위해서였다.

 미국에 와서 먼저 느끼는 것이 보행자 중심의 교통문화이다. 특히  집에 아기가 있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신호등 쪽으로 가고 있으면 지나가려던 차들이 미리 정지하여 기다리는 것을 보면 미국이 교통문화의 선진국이라는 것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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