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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8.29 파도소리와 함께 즐기는 경주 양남면(陽南面) 주상절리(柱狀節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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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로써 시자체가 왕릉을 비롯하여 문화유산으로 묻혀 있어 마치 노천 박물관과 다름없다. 안압지, 계림, 황룡사지 주변에는 계절에 따라 청보리, 유채 등의 아름다운 색채가 고즈넉한 문화유산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또한 형형색색 맛 집과 카페 등으로 구성 된 황리단길은 젊은이들에게 경주를 찾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추령 터널을 통해 동해안을 향해 국도로 이동하면 푸른 평야와 감은사지, 동해구에서의 문무대왕암을 지나 남쪽 울산방향으로 가면 조그만 어촌항인 읍천항을 찾는다. 이곳은 바위가 해변에 너무 많아 항구역할이 힘 드는 지형에도 불구하고 1종 항구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며 어민들은 미역, 전복으로 소득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곳에서 주상절리를 감상하려면 파도소리 길을 이용하는데 이 길은 산책길로 읍천항에서 하서4리 진리항까지 1.7km구간이 되는 해안 길로 몽돌길, 야생화길, 등대길, 데크길 등 해안 환경을 고려한 테마로 구성되어 있고 제주도, 울릉도 못지 않는 주상절리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해안가에 철책선이 있어 주상절리를 볼 수가 없었는데 경주시가 이를 2012925일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하였고 관광 상품화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 발전시켰다.

주상절리(柱狀節理)의 한자는 기둥 , 모양 , 마디 , 다스릴 로 기둥모양으로 쪼개진 돌을 형상화한 것으로 주로 화산지형에서 볼 수 있다. 양남의 주상절리는 신생대 제3기의 에오세(5400만 년 전)에서 마이오세(460만 년 전) 사이에 경주와 울산 해안지역 일대의 활발했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10m가 넘는 정교한 돌기둥들이 1.7에 걸쳐 분포해 있으며, 주름치마, 꽃봉오리, 부채꼴 모양의 특이 주상절리를 비롯한 수평 방향의 주상절리가 대규모로 발달되어 있다.

지하의 기반암이 녹아 형성된 마그마는 지표로 나오면서 빠르게 식는다. 반 액체 상태인 마그마는 고체가 되는 과정에서 부피가 수축한다. 이때 수축면의 중심에서 각 꼭짓점의 거리가 동일한 육각형 모양의 절리가 만들어 지는데, 이것이 지표에 노출되어 기둥처럼 떨어져 나가면 비로소 주상절리가 탄생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상절리의 발달에는 마그마의 급격한 냉각이 필수라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하에서 1,000도 가열된 마그마가 지표 밖으로 분출되어야 하므로 결국 주상절리의 발달은 분출암의 대표주자인 화산암과 관련 깊다.

양남면(陽南面)은 경주 동남쪽 동해변에 위치한 면으로 북쪽으로는 양북면, 서쪽으로는 외동읍, 남쪽으로는 울산광역시의 북구, 동쪽으로는 동해에 접해 있다. 신라시대에는 신라6부의 하나인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에 속하며 영역으로 상서지(웃섯골), 하서지(아랫섯골), 내아가 기록되어 있다. 하서지는 현재의 양남면 하서리 일대를, 내아는 나아리 일대를 가리킨다. 『동경잡기』에는 현재의 양남면과 양북면 및 감포읍 지역이 동해변(東海邊)이라는 1방으로 기록되어있다.

진리항은 진리마을에 있는 항구로 신라시대에는 밤나무가 많은 포구라 하여 율포(栗浦)라 불렸다고 하고 신라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이 왕명으로 왕자를 구하러 왜로 떠날 때 여기서 출범했다고 한다. 그 후 마을로 통하는 길이 없어 나룻배로 길을 건넜다고 나루 진(), 마을 리()를 합하여 진리(津里)라 이름 붙여졌다.

율포는 박제상이 왜로 출발한 항구로 그 위치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1989년 석굴암 연구회에서 울산 정자항을 율포라 여기고 유포석보 주변에 박제상 발선처비를 세웠다. 삼국유사 권제1 2 기이(紀異) 내물왕과 김제상에는 율포 바닷가로만 명시되어 있어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진리항을 포함하고 있는 하서리(下西里)는 동해해변가의 온화한 기온에 옥토를 가진 농어업 겸업의 환경 좋은 마을이다. 신라 초기 육촌 중 배씨 세력지역으로 한기부(漢祇部)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에 해당되며 시조는 기타(祇陀)로 이곳을 입주, 개척한 후 하서지(下西知)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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