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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장산 풍수지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9.07.06 사라진 국가의 전설을 품고 있는 해운대의 주산(主山), 장산(萇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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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산을 가지고 있는 광역시가 부산광역시이며 이것은 부산의 큰 복이다. 이들 중 장산은 해발 634m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며 부산시민이 사시사철 찾는 곳이다. 더불어 대천공원이 조성되어 산행은 물론이며 운동, 각종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해발에 비해 수량이 풍부하여 춘천의 흐르는 물은 가뭄에도 마르는 날이 없어 여름철이면 아이들의 물놀이 터가 된다. 이에 옛 부터 장산 앞 지역은 비옥한 농경지를 이루었고 청사포 앞바다의 풍부한 해산물과 함께 풍요로운 땅이었다.

장산 450m 자락에는 20가구 100여명 주민이 녹차재배 등 농업과 등산객 상대로 하는 식당을 주업으로 살고 있는 장산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19636.25전쟁 상이용사 10여명이 원호청으로부터 정착 대부금을 받아 설립한 장산개척단에서 시작된 마을이다.

당시 산정을 개간하여 무, 배추 등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며 살았으나 생활여건이 열악하여 개척단원들은 마을을 떠났다. 그 후 퇴역 장병 40여 세대 120여명이 부산시로부터 토지를 불하받아 무 재배를 하며 정착하였다. 그리고 미국 복지재단에서 기증한 홀스타인 젖소 덕분으로 낙농업을 통해 장산목장으로 마을이 번창하였으나 1985~ 1987년 우유파동과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에 따른 젖소 사육 금지, 자녀교육 등으로 일부가 마을을 떠나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장산을 좀 더 들여다보면 부산국가지질공원,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청산리 대첩의 숨은 영웅 애국지사 강근호의 숨결이 모정원에 남아있다. 또한 민속 및 토속신앙이 전해지고 있는 천제단, 마고당 등 있어 장산을 찾는 이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동국여지승람(1418)과 동래부지(1740)에 의하면 부산의 전신인 동래의 옛날은 장산국(萇山國)이었으며 신라가 를 취해 거칠산군(巨漆山郡)을 두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장산을 동래부지도에는 상산(上山)이라는 이름으로 장산이라고도 하고 봉래산이라고도 하였으며 규장각 소장의 동래부지도에는 장산의 위치에다 장산국기라 적혀있고 해동지도에는 상산에다 장산국기라 적혀 있다. 동래부읍지 역시 장산이라고 표기하고 기장의 운봉산에서 뻗어 내렸다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동래현의하면 옛날에는 장산국(萇山國) 혹은 내산국(萊山國)이라고도 하였다. 신라가 점유하고 나서 거칠산군(巨漆山郡)두었는데,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으며, 고려 현종이 울주(蔚州)속시켰고 현의 동쪽 15리에 상산(上山)이 있으며, 대마도를 바라보기에 가장 가깝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산을 중심해서 장산국, 또는 내산국이라는 부족국가가 형성돼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의 부산에는 변한 12국 중 하나인 독로국(凟盧國)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 삼국지 위서 한전에는 독로국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왜와 접해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독로국이 현재로서는 동래지역에 있었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가 동래지역의 거칠산국을 멸망시키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독로국과 거칠산국이  같은 것인지의 여부는 현재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최근 장산 정상 개인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우물터를 발견했는데 지역 향토사학계에서는 옛날 장산국 우물터가 아닌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대마도가 보인다. 특히 겨울에는 자주 볼 수 있다.
대마도는 예전 부터 해적들의 본거지로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피해을 주었다.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

장산과 해운대 신도시를 풍수지리로 보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다. 봉황의 오른쪽 날개는 장산-간비오봉이고  왼쪽날개는 구곡봉-부흥봉-와우봉으로 案山인 중동의 梧山공원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둥지이다. 즉 봉황이 오산공원에서 알을 품고 있는 모습으로 영웅 또는 임금이 태어나거나 대대손손 번창하는 터다.

봉황은 상상의 새로서 상서로움을 상징하는데 五色의 깃털을 지니고 五音을 내며 오동나무에 둥지를 틀고 대나무 열매를 먹고사는 새라 하여 고결한 성품을 가진 인물 또는 임금을 의미 한다. 또는 알을 품고 있는 둥지, 터는 자손이 번창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해당 지역의 마을사람들은 봉황이 떠나지 않도록 오동나무와 대나무를      지키고 보호했다.

풍수에서 기본적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땅을 명당이라고 한다. 산을 등지면서 병풍을 둘러친 것처럼 아늑하고, 물을 앞에 끼면 사람에게 좋은 것은 물론이고 들판의 곡식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이것을 세부적으로 산의 위치별로 기능별 보면 左靑龍, 右白虎, 南朱雀, 北玄武로 마을 뒤에 있는 산이 거북이로 主山이라 하고 좌우 병풍 역할을 하는 것이 용이고 호랑이다. 그리고 마을 앞에 있는 산이 새로 朝山이라 하며 주산과 조산 사이에 안산이 있다.

주산과 조산은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관계이고 좌우는 이들을 보호하며 주산과 안산은 주인과 나그네 관계이다. 안산은 나지막한 산인데 여기서는 오산공원이 그 기능을 한다. 해운대의 임수는 춘천이고 배산은 장산이나 조산이 없어 다소 부족한 명당이라 무척 아쉽다.

최근 해운대에도 택지개발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오산공원 만큼은 개발에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가꾸어야     해운대가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

지엽적으로 살펴보면 달맞이고개는 臥牛山, 누운 소 형국으로 손이 부자가 되는 터이다. 소는 예로부터 모든 생산 활동의 원동력으로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것으로 알았다. 부여시대에는 하늘의 뜻을 알리는 靈物이라 하여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 발굽으로 점을 쳤으며 하늘에 바치는 제물로도 썼다. 또 소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 쇠코뚜레를 문에 걸어두면 잡귀가 달아난다고 믿었다. 장산정상에서 달맞이고개를 바라다보면 고층 아파트에 의해 마치 소 등에 창이 꽂힌 것처럼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장산국의 오능은 사라지고

장산국은 신라와 가야의 경계지역에 위치하였는데, 이 장산국에 5개의 왕릉 이 존재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신라와 가야의 침략을 피하기 위하여 궁궐과 왕릉은 장산 안에 있었으며, 6·25전쟁 당시 미군이 탄약 창고를 설치하기 전 좌동 일대 어느 작은 절(약수암) 옆에 5개의 큰 무덤이 바로 그것이라 전해진다.

기원 후 5~6세기경에 신라(석탈해왕) 세력이 이곳에 진출하면서 장산국이 멸망하자, 장산국 사람들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고 산의 오능은 초라한 무덤으로 변해 점차 잊히게 되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좌동 토박이 노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어릴 적 그 무덤을 보았는데 탄약 창고 공사를 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6.25 전쟁의 아픈 흔적은 남아있고

장산 정상은 6.25전쟁이후 민간인 출입이 통제돼왔다. 이유는 정상에 군, 경찰 등 9개 기관의 무선기지국이 설치되어 있고 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이도 해운대구에서 장산구립공원을 추진 중, 정상부지 중 폐쇄된 미군주둔지를 국방부와 협의 후 ‘21. 1월부터 장산 정상을 개방한다고 한다.

장산 8부 능선에는 과거 지뢰매설 지역이 있어 2003년 인근 공군부대에서 지뢰제거를 실시하였으나 유실 또는 제거하지 못한 지뢰가 남아 있어 출입금지 지역으로 남아있다. 장산 산행을 하는 이에게는 큰 지장을 주지 않으나 남북 분단으로 인한 상처가 부산 근교 산에도 있어 이곳을 지나갈 때 마음이 씁쓸하다.

헬기장 주변 철거 된 군 시설물
장산의 봄, 양운폭포
장산의 가을, 계곡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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