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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옛길은 산성산과 일광산 사이 기장읍 서부리 용소골에 있는 계곡 길이다. 용소골 지명은 옛날 이곳에서 용이 났다고 하여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 골짜기는 청강천 상류계곡에 해당되고 하류에는 둑을 막아 만든 용소골저수지가  있고 주변은 용소웰빙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기장초등학교 자리에는 옛날에 기장 동헌이 있었는데 동헌에서 남으로 큰 길을 만들고, 길의 동쪽은 동부동(東部洞), 서쪽은 서부동(西部洞)이라 하였다.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서부동 일부가 서부리로 되었다,

용소윌빙공원 입구에서 바라본 산성산(성산)
용소웰빙공원 입구. 직진방향으로 저수지와 나란히 조성 된 길을 따라가면 기장 옛길 이정표를 만난다.

기장 옛길은 신라 갑화양곡현(505년)에서 비롯하여 이전 선사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넘나들던 유서 깊은 길이자 기장의 관문길이다. 옛날 용소 계곡 길의 상류 지역은 험한 바윗길로서 사람이나 우마차의 통행이 어려워 잔도(棧道)를 만들어 이용하였다. 이 옛길은 지역 주민들의 나들이 길이자 양산, 동래, 김해를 비롯하여 멀리 서울을 내왕하던 관리와 백성, 그리고 장꾼, 보부상, 남사당 등 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고 대한제국 말기까지 존속된 길이였다. 이 길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2년 동래~기장간의 신작로 개설로 자연히 폐도 되었다. 최근 기장군에서는 이 옛길(약 200m)을 문화유적지 차원에서 보존 및 관리해 왔고 잔도(棧道)도 재현시켰다.

부산포항고속도로 교각 밑에 세워진 기장 옛길 안내 표지판
최근 기장군에서는 이 옛길(약 200m)을 문화유적지 차원에서 복원한 기장 옛길 입구

기장 옛길을 답사하기 위해서는 산성산 또는 성산 북쪽에 위치한 용소웰빙공원에 찾아오면 된다. 용소웰빙공원 입구에서 직진방향으로 저수지와 나란히 조성 된 길을 따라가면 부산포항고속도로 교각 밑을 지나다 되는데 산기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막과 밭을 만난다. 5분 정도 걸어가면 기장 옛길 표지석을 마주하게 된다. 짧은 구간의 한적한 옛길을 거닐다 보면 조선시대 기장에서 군수 및 현감을 지낸 이해륜(李海崙), 엄신영(嚴信永), 손영희(孫永禧), 손경현(孫慶鉉), 오영석(吳榮錫), 송재우(宋載遇), 이경우(李敬佑) 등 7명이 1751년부터 이임으로 떠날 때 계곡 수 좌측 바위와 길 우측 바위에 이름을 새긴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중 엄신영(嚴信永)과 손경현(孫慶鉉)은 시랑대에도 각석(刻石)을 하였다.

맨 먼저 볼 수 있는 각석은 군수(郡守) 이해륜(李海崙)으로 계곡 수 건너편 바위에 행(行) 군수(郡守) 이해륜(李海崙)을 새겼다.
행(行) 군수(郡守) 이해륜(李海崙)

맨 먼저 볼 수 있는 각석은 군수(郡守) 이해륜(李海崙)으로 계곡 수 건너편 바위에 행(行) 군수(郡守) 이해륜(李海崙)을 새겼다. 1897년 6월에 기장 군수로 부임해 왔고 동부리 공덕비군(東部里 功德碑群)에 청덕거사비(淸德去思碑)와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세워져 남아 있다. 여기 군수(郡守)는 기장이 기장현에서 1894년 갑오개혁이 단행되고 1895년(고종32년) 2차 개혁 때 동래도호부가 동래관찰부(東萊觀察府)가 되었고 그 아래 군이 되었을 때다.

다음 바위에는 엄신영(嚴信永)의 행(行) 군수(郡守) 엄신영(嚴信永)이 새겨져 있다.
행(行) 군수(郡守) 엄신영(嚴信永)

다음 바위에는 엄신영(嚴信永)의 행(行) 군수(郡守) 엄신영(嚴信永)이 새겨져 있다. 군수(郡守) 엄신영(嚴信永)은 1905년에 부임하였고 시랑대 바위에 엄신영 제우영(嚴信永 弟宇永)’이라는 각자가 새겨져 있다. 동부리 공덕비군(東部里 功德碑群)에 1904년 4월에 세워진 청덕거사비(淸德去思碑)와 1904년 10월에 세워진 유애불망비(遺愛不忘碑)가 남아 있다.

손영희(孫永禧)의 행(行) 군수(郡守) 손영희(孫永禧)가 새겨져 있는 바위
행(行) 군수(郡守) 손영희(孫永禧)

연이어 손영희(孫永禧)의 행(行) 군수(郡守) 손영희(孫永禧)가 새겨져 있고 군수(郡守) 손영희(孫永禧)는 1901년 8월에 부임하여 1903년에 이임하였다. 전임은 중추원 의관이었다.

계곡 수 좌측 바위에 새겨진 마지막 각석은 손경현(孫慶鉉)의 현감(縣監) 손경현(孫慶鉉) 영세불망(永世不忘)이다.
현감(縣監) 손경현(孫慶鉉) 영세불망(永世不忘)

계곡 수 좌측 바위에 새겨진 마지막 각석은 손경현(孫慶鉉)의 현감(縣監) 손경현(孫慶鉉) 영세불망(永世不忘)이다. 기장 부임 전 손경현(孫慶鉉)은 홍문관 교리로 1894년 9월에 현감(縣監)에 부임하여 1895년 11월에 이임하였고 이곳 시랑대의 글귀와 절경을 본 후 주변 바위에 세 글자 학사암(學士岩)과 시(詩)를 남겼다. 그리고 『기장현 읍지』 형성조에 의하면 “기장 현감 과 홍문관 교리를 지낸 손경현이 놀러 와서 학사암(學士嵓)이라 부르기도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부리 공덕비군(東部里 功德碑群)에 1895년 5월에 세워진 청덕선정비(淸德善政碑)가 남아 있다.

옛길을 거닐다 보면 길가 안내 표지판에는 여근석(女根石)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바위 형상을 따서 여근석이라고 부른데 지형변경으로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 신앙(性信仰) 즉 성기숭배신앙(性器崇拜信仰)은 신석기시대 이후 형성된 것으로 개인적인 목적은 기자(祈子)나 기복(祈福)이고 국가나 공동체 집단의 목적은 다산(多産)과 풍년, 풍어, 마을의 평안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유교의 영향으로 남호선호사상과 칠거지악에 의해 여인들의 고통과 아픔이 여근석(女根石)에 남아있으리라 생각된다.

옛길 우측에 3명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바위에 있는데 현감(縣監) 오영석(吳榮錫), 현감(縣監) 송재우(宋載遇)와 군수(郡守) 이경우(李敬佑)이다.

옛길 우측에 3명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바위에 있는데 현감(縣監) 오영석(吳榮錫), 현감(縣監) 송재우(宋載遇)와 군수(郡守) 이경우(李敬佑)이다. 현감(縣監) 오영석(吳榮錫)은 1892년 10월에 부임하여 1895년 11월에 이임하였고 동부리 공덕비군(東部里 功德碑群)에 1893년에 세워진 생사단(生祀壇)과 애민구해불망비(愛民捄海不忘碑)가 남아있다.

현감(縣監) 오영석(吳榮錫)과 현감(縣監) 송재우(宋載遇)의 각석

현감(縣監) 송재우(宋載遇)는 무관으로 1751년 9월에 부임하여 1753년 6월에 사직하였고 동부리 공덕비군(東部里 功德碑群)에 휼민선정 만고불망비(恤民善政 萬古不忘碑)가 남아 있다.

군수(郡守) 이경우(李敬佑) 영세불망(永世不忘)

군수(郡守) 이경우(李敬佑)는 1895년 5월에 부임하여 1896년 9월에 이임하였고 동부리 공덕비군(東部里 功德碑群)에 1896년 9월에 세워진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남아 있다.

산성산의 야경
용소웰빙공원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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