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소리 떠난 송정마을

동네 한바퀴/부산광역시 2020. 1. 5. 18:31 Posted by 추야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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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은 단연 해운대해수욕장이다. 이에 뒤지지 않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송정에 있는 송정해수욕장이다. 송정에는 사시사철 여행객이 찾는 송정해수욕장을 비롯하여 석양과 일몰을 즐기기에 좋은 죽도공원이 있고 구덕포 광어골에는 맛 집과 카페들이 해안선 따라 즐비하게 있으며 야경 또한 아름답다.

동해남부선 폐구간 트레킹코스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하다. 기적소리가 멈춘 송정역에는 현재 환경개선 작업이 진행 중이다. 특히 역사건물에는 40년대 건축양식 중 하나인 아르누보 양식을 가진 건축물도 있어 영화촬영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송정(松亭)이란 지명은 본래 갈개 또는 가래포(加來浦), 가을포(加乙浦)라고 불렀다. 갈개는 갈대의 지방 방언으로 갈대가 많이 서식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전하며, 가래포의 가래는 갈대의 사투리이다. 가을포는 가래포의 차음에서 나왔다고 한다.

가을포를 송정으로 부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의 세거 씨족인 광주 노씨(光州盧氏)가 해송림이 울창한 언덕에 정자를 지은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하고, 또 하나는 죽도(竹島) 앞 거북 바위에 서 있는 일송정(一松亭)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이 나무는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섬의 바위 위에서 수백 년 동안 자라 마을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으나, 6·25 전쟁 당시 주둔한 영국군이 표적 삼아 사격 연습을 하면서 고사하였다고 한다.

송정 마을[송정동]의 명확한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기장현의 9포 중 제일 포구인 가을포(加乙浦)로 기록되어 있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1831]에 기장현 남면 송정방으로 기록되어 있다.

1880(고종 17) 기장현의 전부와 양산군의 일부가 동래군으로 편입되며 동래군 기장면 송정리로 되었으나 기장군읍지(機張郡邑誌)[1899]에는 다시 기장군 남면 송정리로 나타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동래군 기장면 송정리 송정 마을이 되었다.

1963년 부산시가 부산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해운대출장소에 편입되어 송정리 송정 마을이 되었고, 1966년 송정리가 송정동으로 개칭되었다. 1970년부터 5개년에 걸쳐 토지구획 정리 사업을 시행한 송정천 일대 늪지 매립으로 대규모 택지가 조성되며 마을의 북쪽이 개발되었다. 1980년 해운대출장소가 해운대구로 승격하였으며, 1995년 부산 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며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 송정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일제 강점기 때 명창 선우일선이 부른 송정의 노래가 다음과 같으며 대한팔경의 노래가사를 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에헤 광어골 열두골은 골마다 기염(氣焰)이요

다리돌(청사포와 구덕포 경계 바다 속의 바위) 바라보니 여름의 나그네라

에헤야 좋구나 좋다. 에헤야 좋구나 좋아

명승의 송정이 자랑이로구나.

에헤 대섬(죽도)에 일본송(一本松)은 못 보면 한이 되고

섬 위에 돋는 달은 볼수록 찬란하네.

에헤야 좋구나 좋다. 에헤야 좋구나 좋아

명승의 송정이 자랑이로구나.

에헤 간진암(오륙도 쪽으로 바다 속에 있는 바위) 열두봉은 봉마다 기암이요

우뚝 선 망덕봉은 평온을 지켜주네

에헤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아

명승의 송정이 자랑이로구나.」

망덕봉은 해운대 송정동과 기장읍을 경계하고 있는 봉우리다. 고종 때 충신이던 흠재 노영경 대감이 태어날 때 그의 모친이 이 산 정상에 보름달이 뜨는 꿈을 꾸었다고 하여 망덕봉이라 하였다 한다. ()은 보름달을 뜻하기도 한다. 이 산은 봉우리가 말의 머리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멍두산, 망아지머리산, 마두봉이라 불리고 있다. 송정과 기장 지역에는 노영경 대감의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개발로부터 살아난 송정해수욕장과 송정항

기장군과 경계에 있는 송정해수욕장은 도회적이고 화려한 해운대해수욕장에 비해 아담하고 순수한 아름다운 해수욕장이다. 요즘 서핀을 타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재 송정해수욕장 모습을 가지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1968년 부산직할시는 5개년 사업의 일환으로 송정해수욕장을 어항으로 만들기 위한 3차 공사를 시행하였다. 방파제 기초 조성사업인 석축 공사가 죽도에서 해수욕장 중심부를 향해 약 30%쯤 진행되고 있었을 때, 당시 송정동에 거주하던 모 기관장인 김낙희 라는 분이 이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어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속적으로 반대한 결과 공사를 중단시키고 어항은 동쪽(죽도공원 뒤편)으로 옮기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지금 규모의 아름다운 송정해수욕장 가지게 되었다.

소금배가 지나갔던 송정천(松亭川)

해운대구 송정동과 기장군 기장읍 당사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송정천은 장산 동편 앵림산에서 발원되어 동해바다로 유입되고 있다. 옛날에는 강폭이 넓고 수심도 깊어서(일제 강점기 때 측량된 지적도에는 강폭이 약 200m 이상 되는 것 같다.) 큰 배가 오르내릴 수 있었고, 앞바다에서 소금배가 하구에서 상류까지 짐을 싣고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강 중간 당사리 앞쪽 강변에는 천석바위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어느 옛날 천석의 소금을 가득 싣고 장사꾼들을 태운 큰 배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이곳 강으로 대피하였으나 사나운 태풍과 폭우로 끝내 이 천석바위 근처에서 뒤집히고 장사꾼 들은 강물에 빠졌다.

사람들은 격류에 떠내려가던 중 강가에 있는 이 바위에 걸려 구조될 수 있었다. 그 후부터 천석의 소금 배를 구출하였다 하여 이 바위를 천석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나무가 많아서 지어진 죽도(竹島)와 죽도공원

죽도라는 지명은 현재는 공원 일대에 대나무가 많이 없지만 예전에는 경상 좌수영의 전시용(戰時用) 화살이 제조될 정도로 많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 죽도의 모습은 송정천에서 내린 모래로 바다가 메워져 육지와 이어져 있지만 옛날에는 육지와 떨어진 섬 이였다.

죽도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197147일 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일몰 감상하기 좋은 장소로 유명하다.

1940년대 역사 건축양식을 가진 송정역사(驛舍)

송정역은 194012월 건립된 역사(驛舍)로써 70년 역사를 간직한 목조단층 기와지붕 형태의 건물로 전체적으로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건축사적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철제 창고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아르누보 양식을 띠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크고 2006124일에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302호로 지정되었다.

바닷가에 위치한 동해남부선 송정역은 지금은 세월의 뒤안길에서 기적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19341216일 역원을 배치하지 않은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194151일 송정역이 준공되자, 동년 61일 보통 역으로 승격되었다. 19767월에는 차급화물 업무가 중지됐다.

또한 송정역은 해운역과 기장역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철에는 피서객 이 몰리는 곳이였다.  최근에는 송정역 주변이 각종 영화 촬영 장소로 많이 이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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