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 에펠탑처럼 보통 1 ~ 2 시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이면에는 인상파 거장의 작품 440여 점을 소장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미술관이다. 원래는 종착역의 역사였지만 1986년 박물관으로 거듭 태어났다. 초기에는 1848년 ~ 1914년에 만든 장식예술을 전시하였다. 지금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 마네, 드가, 고흐, 르누아르, 로댕 등 인상파와 포스트 인상파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느 강변에 있는 오르세 미술관

전시관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지하층으로 입장하여 조각상 1층은 조각상, 2층은 조각상과 아르누보 양식 3층 인상파 작품으로 전시 되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1887년). 고흐는 40점이 되는 자화상을 그렸고 자기 안에 있던 불안, 고독, 예술가로서의 고통을 표현했다.

19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 그루트 준데르트에서 출생하여 불꽃같은 열정으로 세상을 살다가 1890년 7월 27일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자즈에서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렘브란트 이래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서 태양의 화가로 불린다. 고흐의 노란색으로도 불리는 태양의 색으로 800점이 넘는 유화를 남겼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인정을 받지 못한 불행한 화가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년). 아를에 있는 론 강을 그린 작품으로 친구 외젠 보흐에게 선물로 보냈다. 반 고흐는 별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고흐는 목사의 6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나 16세 때 구필화랑의 헤이그, 런던, 파리 지점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그림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영국에서 학교교사를 거쳐 벨기에의 보리나주 탄광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1880년에 화가의 뜻을 두었다. 20대 후반에 미술에 그는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후대 사람들에게 감탄시킨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빈센트 반 고흐의 오베르쉬르우자즈의 교회(1890년). 반 고희가 아를과 프로방스 생레미 정신병원을 나와서 1890년 5월 오베르쉬르우자즈의 여인숙에 정착하였고 그 해 7월 사망할 때까지 70여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때의 작품이다. 지금도 이 교회는 오베르쉬르우자즈에 있다.

1885년까지 주로 부친의 재임지인 누넨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최초 작품이 「감자 먹는 사람들」로 목사였던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완성한 작품이자 그를 진정한 화가의 반열로 오르게 한 작품이다.

클로드 모네의 국화(1878년)

파리 개선문은 나폴레옹1세의 명령으로 체코의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웨덴의 연맹 군대를 맞아 9시간의 혈전 끝에 승리한 그의 군대를 치하하고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나폴레옹1세의 명령으로 세워진 개선문(1836년 준공)

1806년에 기공식을 시작으로 1836년에 완공했지만 나폴레옹은 유배중이라 완성작을 보지 못하고 훗날 그의 유골이 개선문 아래를 지나 앵발리드의 돔에 안치 되었다. 또한 1차 대전 승전 퍼레이드가 이곳을 지났고 드골 장군이 2차 대전 파리 탈환과 프랑스 해방 선언을 이곳에서 했다.

개선문을 상공에서 보면  12 꼭지의 별을 닮았다고 하여 별의 개선문이라고도 부른다 .

개선문은 건축가 샬그랭의 작품으로 높이 50m, 너비 45m, 폭 22m, 대형아치 29.19m, 소형아치 18.68m로 엄숙하며 장엄하다. 외관은 대형 양각 부조 4개, 액자형 음각 부조 6개로 이루어져 있다. 부조 내용 중 유명한 것이 「라 마르세예즈」라고 부르는 뤼드의 “1792년의 의용병의 출정”이고 의용병을 이끄는 인물이 승리를 상징한다. 샹젤리제에서 개선문을 마주 보았을 때 오른쪽에 있는 부조이다.
아치 내부에 새겨진 이름들은 프랑스 대혁명부터 나폴레옹 1세 섭정기간 중에 일어났던 혁명과 전투 때 사망한 장교의 이름이다. 문 지하에는 1차 대전 참전 무명용사들이 안치되어 있다. 매일 오후 6시 30분에 이들을 기리는 기념의식이 거행된다. 문 아래로 가려고 한다며 지하도를 이용해야한다.

개선문 주변을 에투알 광장 또는 드골광장이라고 부른다.

개선문은 12개의 대로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중 유명한 대로가 샹젤리제다. 개선문을 상공에서 보면 12꼭지의 별을 닮았다고 하여 별의 개선문이라고 부른다. 개선문 주변을 에투알 광장 또는 드골광장이라고 부른다.
루브르박물관과 개선문 사이 일직선상에 있는 콩코르드 광장은 오벨리스크가 있어 유명하다. 오벨리스크는 1836년에 이집트에서 선물 받은 것으로 원래는 1쌍인데 운반문제로 하나만 옮겨왔다. 과거에 루이15세를 축원하기 위한 기마상이 있었고 광장이름도 루이15세 광장이라고 불렀는데 프랑스 혁명 때 기마상이 철거되었다. 이름도 혁명의 광장으로 바꿨다.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1836 년에 이집트에서 선물 받은 것으로 원래는  1 쌍인데 운반문제로 하나만 옮겨왔다 .

프랑스 혁명 때 이곳에 단두대가 설치되어 루이16세를 비롯하여 마리 앙투아네트, 왕가 일족, 혁명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었다. 이 외에도 8년 동안에 약 1,34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피비린 나는 혁명의 광장을 콩코르드(화합, 조화) 광장으로 개칭하였다.

콩코르드 광장의 이름은 루이5세 광장에서 혁명의 광장으로 바뀌었고 최종 콩코르드(화합, 조화) 광장으로 개칭되었다.

파리에서 파리의 획이라는 도시계획 명칭이 있는데 루브르 박물관(궁전, 쿠르 카레)-콩코르드 광장-샹젤리제-개선문이 일직선상에 있다. 절대군주 시대에 왕족들이 사냥터인 생제르맹앙레로 가장 빨리 가는 길이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멀리 보이는 개선문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