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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바퀴/부산광역시'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9.07.24 장산의 호랑이
  2. 2019.07.07 해운대 팔경
  3. 2019.06.16 달맞이고개의 우산낙조(牛山落照)
  4. 2019.06.16 동백섬으로부터 시작하는 천년고을, 해운대

장산의 호랑이

동네 한바퀴/부산광역시 2019. 7. 24. 16:51 Posted by 추야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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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부터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많이 살고 있어 속담, 민담, 민화를 비롯하여 문학작품까지 등장하여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호담지국(虎談之國)라 불렀고 중국 문헌 후한서 동이전에도 호랑이를 신으로 받들어 제사지내는 나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호랑이는 박지원의 호질, 사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 중 하나이며 산신각에는 산신을 시자(侍者)하는 신령한 동물로써 그 용맹스러움으로 권선징악과 벽사의 주재자로 신격화되어 있는 영물이다.

또한 호랑이의 민속적인 유형으로는 인간에 감화되어 인간을 돕는 보은형, 토끼 등 작은 동물에게 조롱받는 우화형, 여우처럼 둔갑하는 다중 인격적 변신형, 담배를 피우거나 까치와 놀고 있는 길상형,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호식형 등으로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호랑이는 범속에 속하며, 우리나라와 만주, 시베리아에는 백두산 호랑이로 분류되는 특산종으로 영명으로는 Amur Tiger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1918년 강원도 춘성군 가리산에서 수컷 1마리,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수컷 1마리, 평안북도 초산에서 1마리 사살된 것이 백두산 호랑이의 마지막 기록이다.

장산에서 호랑이 관련 이야기는 반여동 장산 산록에 굴이 있는데 중리마을 주민들은 범이 살았다 하여 범굴이라 부른다. 지금은 무속인들의 기도처로 변하였다. 재송동 새마을 당산 옆 계곡을 범전골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옛날 달밤에 범이  밭에 내려와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장산 양운폭포에도 숲이 우거져 호랑이가 내려왔다고 하고, 송정 지역에는 호랑이 새끼를 구해준 최씨의 부인이 범굴에서 해산을 했다는 보은(報恩)의 호랑이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금정구 서동의 부녀자들이 해방 전 장산에 나물 캐러 갔다가 바위 밑에서 호랑이 새끼를 발견하여 귀여워 그 새끼에게 다가가자 바위 위에서 어미 호랑이가 어흥하며 소리를   내어, 부녀자들이 놀라 신발이며 나물 캔 바구니를 두고 마을로 도망쳐 내려왔는데 다음 날 아침 마당에 신발과 나물   바구니가 고스란히 놓여있더라는 얘기도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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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팔경

동네 한바퀴/부산광역시 2019. 7. 7. 13:27 Posted by 추야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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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는 고운 최치원에 의해 지명이 형성 되었고 신라시대부터 온천으로 인해 유명해지기 시작하여 오늘 날의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경관이나 풍광이 뛰어난 곳을 가보면 팔경 또는 십이경이라 하여 아름다운 곳을 지정하여 그 곳을 찾아오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해운대 또한 대한민국 대표 관광 명소로써 옛부터 해운대 팔경이 있어 그때나 지금이나 해운대는 모든 이가 찾는 유명한 지역이다

팔경(八景)의 유래는 중국 송()나라의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라는 회화(繪畵)에서 시작되어 중국의 경승지인 호남성(湖南省) 소상(瀟湘)에 있는 동정호 남쪽 언덕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의 물이 한데 모여 흐르는 지역에 경치가 좋은 여덟 곳을 그린 그림(繪畵)의 제목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려 명종(明宗, 11701197)의 명으로 이광필이소상팔경도를 그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12세기 중엽에 도입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전국 각지의 아름다운 경치에 팔경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① 해운대상(海雲臺上)

동백섬 바위 해운대란 각석이 있는 곳에서 보는 아름다운 경치이다. 이곳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앞바다를 보면, 저 멀리 수평 선 너머로 대마도가 아주 가깝게 보이고 우측으로는 바다 위에 오륙도가 떠있고 좌측에는 은모래 빛 광활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그 옛날 고운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시무10여조를 올려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실패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망망대해와 뜬구름을 벗 삼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해인사로 가서 종적을 감추었다.

② 구남온천(龜南溫泉)

해운대 온천의 옛 이름이 구남온천(龜南溫泉)이다. 옛날 이 일대는 갈대밭으로 거북이가 많이 서식하여 거북 ()’자를 따서 구남들, 구남평원이라 불려졌다. 또한 동래온천을 구야온천(龜也溫泉)이라고 하는데 비해 해운대온천은 남쪽에 있다 하여 구남온천으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이 구남온천은 옛날부터 유명하여 신라 말 진성여왕이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이곳에서 목욕을 한 후 나았다는 전설이 있다.

③ 우산낙조(牛山落照)

달맞이 길에서 보는 해지는 풍경이다. 해운대 동쪽 관문격인 달맞이고개는 멀리서 달맞이고개를 바라보면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 것 같다하여 옛 부터 우산 또는 와우산(臥牛山)이라 부른다. 이곳 우산에서 서쪽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말하는데 일몰 때 해운대 해수욕장과 오륙도를 품고 있는 바다를 바라다보면 아름다운 풍광에 압도당한다고 한다. 도시화 이전 석양이 찾아들면 바닷가 들판은 서산을 넘는 햇빛에 의해 홍조로 물들고, 이 광경을 와우산 위에서 바라보면 노을이 된 경치가 장관을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시대가 흘러 요즈음은 해운대 야경이 이를 대신하고 있는데 옛 모습이 보고 싶다. 그리고 소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는 곳이 미포(尾浦)이다.

④ 오륙귀범(五六歸帆)

오륙도 쪽에서 범선이 귀향하는 풍경이다. 저녁이면 만선을 이룬 배들이 흰 돛을 펼쳐 달고 오륙도를 지나 미포항으로 귀항을 하는데 이 광경을 미포, 동백섬, 와우산에서 바라보면 흰 돛단배 위로 갈매기가 맴돌고 하얗게 포말을 날리면서 뱃전에 부서지는 흰 파도가 오륙도와 함께 멀리 석양의 불그레한 노을빛과 어울려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고 한다. 동력선 등 선박기술 발달로 흰 돛을 단 배를 볼 수가 없어 아쉽다.

이기대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해운대

오륙도(五六島)는 용호동 승두말로부터 부산만으로 향해 나란히 위치한 바위섬들이다. 오륙도가 밭섬(등대섬), 굴섬, 송곳섬, 수리섬, 방패섬, 솔섬 등 여섯 개 섬으로 이뤄졌으나 썰물 때 방패섬과 솔섬이 연결되어 다섯 개 섬으로 보이는 것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원래 방패섬과 솔섬은 우삭도(于削島)라 불렸다.

이기대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오륙도
오륙도 각 섬에 대한 설명도

⑤ 봉대점화(烽臺點火)

간비오산의 봉화가 밤에 치솟는 풍경이다. 간비오산은 해운대의 주산인 장산에서 남쪽 동백섬으로 뻗어 내린 산맥 중간에 있는 산으로 우동 롯데 아파트 뒷산에 있는 산이다. 이곳에 봉수대가 있으며 봉수는 병란을 알리는 횃불로써 밤에는 불을, 낮에는 연기를 신호로서 연락하였다.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까지 해운포 일대를 감시하며 이곳에서 봉수를 올렸는데, 밤에 봉수대에 불을 점화하면 그 불꽃이 밤하늘을 뚫고 치솟아 올라 해운대 일대를 밝혀주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⑥ 장지유수(萇旨流水)

해운대 장지천에서 흐르는 물과 물가의 버드나무 늘어진 광경이다. 장지천은 우동 해운대 중고교의 북쪽 장지봉 안봉골에서 발원하여 굽이굽이 곡선을 이루며 흐르다 춘천과 합류한다. 장지천 제방에는 버드나무, 개나리, 소나무가 울창하게 늘어서 있고, 흐르는 맑은 물은 속세를 떠나 무엇에도 속박되지 아니하고 조용하고 편한 마음으로 빠져들게 하는 선경을 이루니 이것이 장지유수이다. 신도시조성과 도시개발로 인해 하천은 복개되고 나무들도 사라졌다.

⑦ 춘천약어(春川躍魚)

해운대 춘천의 물고기가 뛰노는 풍경이다. 춘천 장산의 장산계곡과 구곡계곡에서 발원하여 폭포사, 석태암, 장산사, 대천공원을 지나 복개구간(삼정 그린 코아 아파트동백섬)을 거쳐 수영만으로 유입한다. 해운대 일대의 지명인 좌동, 우동의 기준은 춘천을 기준으로 명명하였다. 상류부는 급경사로 이곳에서 침식되는 물질이 하류의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의 공급원이었으나 도시개발로 인해 물길이 바뀌어 모래공급이 차단되었다.

장산에서 내려오는 춘천

옛날 달밤이면 춘천의 맑은 물에서 물고기들이 은빛을 내며 뛰노는 모습이 신비경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천공원 산책로가 조성되었고 수렵행위도 금지되어 대천공원에서 삼성 디지털 플라자까지 물고기들이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삼정 그린 코아 아파트부터는 춘천이 복개되어 볼 수 없다.

수영강을 향하여 내려가는 춘천

⑧ 양운폭포(養雲瀑布)

좌동 장산에 있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풍경의 아름다움이다. 장산의 지표수는 화산암으로 형성된 돌무더기 밑을 지나 좌동방향의 장산계곡으로 내린 물이 모여 장산 폭포사 위쪽에서 폭포를 이루는데 마치 구름이 피어나는 광경과 같다고 하여 양운폭포라 한다. 높이가 7~8m 가량으로 양운롱(養雲瀧) 또는 양운폭, 장산폭으로 불려왔으며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는 직경 10m 가량의 소()가 이루어져 있는데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가마소라 불리어 왔으며 물이 맑고 깊다. 주변 산수가 수려하고 자연풍치가 빼어나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양운폭포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양운폭포의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으나 물줄기가 마르지 않고 수질이 깨끗하여 1960년대까지만 해도 지역주민의 상수원 역할을 하였고 신시가지 조성 이전까지는 좌동은 물론 중동지역 일부와 해운대 각 호텔에까지 생활용수를 공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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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동쪽 관문격인 달맞이고개는 일제강점기 때는 경마장으로, 1960년대까지 미군 골프장으로 사용되었다. 1970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부터 고급빌라가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에 많이 지어졌다. 이후 카페, 음식점, 공방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섰다.

달맞이 고개에 위치한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원작가 김성종의 추리 문학관

특히 달맞이길(미포↔송정, 8km)은 15번 이상 굽어진다하여 15곡도(曲道)라고 부르며 가로수로써 벚나무가 가꾸어져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애용되고 있다. 그리고 해월정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2013년 동해와 남해의 경계로 정해져 있어 바다를 감상하는데 묘미를 제공하고 있다. 겨울날씨 좋은 아침 해월정에서는 대마도를 볼 수가 있다. 또한 문탠 로드(Moontan Road)라 하여 월출을 감상하기 위한 왕복 2km의 달빛 산책길도 조성되어 있다.

청사포 다릿골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정

일제 강점기 때 자원수탈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해남부선(부산↔포항구간 : 147.8km)이 근래 80년의 역사를 마치고 철거 되었다. 부산↔해운대 구간은 1934년에 연결되었는데 없어진 철길을 생각하니 예전 기차에서 바라본 달맞이 앞 바다가 그리워진다. 舊 철길의 우동↔송정구간에는 새로운 관광산업으로 걷기 코스(미포↔송정구간)와 해변열차(미포↔송정구간), 스카이 캡슐(미포↔청사포구간)이 운영하고 있다.

舊 철길의 걷기 코스(미포↔송정구간)에서 본 해운대 야경
달리는 해운대 해변열차(미포↔송정구간)

예전부터 달맞이고개는 해운팔경 중 하나인 우산낙조(牛山落潮)풍광을 보는 것으로 달맞이고개를 멀리서 바라보면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 것 같다하여 옛 부터 우산 또는 와우산(臥牛山)이라 부른다. 이곳 우산에서 서쪽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말하는데 일몰 때 해운대 해수욕장과 오륙도를 품고 있는 바다를 바라다보면 아름다운 풍광에 압도당한다고 한다. 도시화 이전 석양이 찾아들면 바닷가 들판은 서산을 넘는 햇빛에 의해 홍조로 물들고, 이 광경을 와우산 위에서 바라보면 노을이 된 경치가 장관을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시대가 흘러 요즈음은 해운대 야경이 이를 대신하고 있는데 옛 모습이 보고 싶다. 그리고 소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는 곳이 미포(尾浦)이다.

끊어진 소의 등에는 인재는 사라지고

송정 구덕포에서 해안선을 따라 가면 조그만 포구가 있는 마을이 있어 이름이 청사포(靑沙浦)이다. 와우산(臥牛山)에서 소의 등(잘랭이)부분으로 일제강점기에 개설 된 동해 남부선 철도가 이 청사포 마을을 관통한다. 마을사람들은 이후 이 마을에서는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옛날 이곳 마을에는 남달리 금슬이 좋은 정씨 부부가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고기잡이 나간 정씨가 돌아오지를 않자 기다리다 지친 정씨 부인이 소나무 두 그루를 심고 그 나무에 의지하여 바다를 바라보며 수년을 기다려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하루, 바닷물을 가르고 푸른 구렁이(용왕)가 정씨 부인 앞에 나타나 물길을 인도하여 남편과 상면(相面)하게 되었으나 남편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간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전설(傳說)에서 청사포(靑沙浦)의 원래 지명(地名)은 청사포(靑蛇浦)로 모래 (沙字)가 아닌 뱀 (蛇字)였다고 전한다.

처녀를 사랑하는 송아지는 사람으로 환생되고

예로부터 달맞이로 유명하여 지어진 달맞이 고개에는 정월 대보름날 달집태우기, 연날리기 등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를 하고 있는데 이곳을 찾는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달은 보름을 단위로 초승달에서 반달로, 다시 만월로 옮겨가는 과정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달이 끊임없이 생성-소멸-재생을 반복하기 때문에 소생과 생명력의 상징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달의 신비로움 때문에 소원을 빌고 달의 상태를 보고 풍년과 흉년을 미리 점()을 쳐보았다고 한다.

해운대 대보름달 관련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양반집 도령이 사냥을 좋아하여 매일 사냥을 나갔다. 어느 날 도령은 와우산 계곡에서 나물을 캐던 미모의 처녀를 만나게 되었다. 도령이 처녀에게 무슨 짐승을 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으니 처녀는 못 보았다고 대답하여 도령은 아쉬운 듯 지나갔다. 한참 후 어디서인지 송아지 한 마리가 나타나 처녀 앞에서 음매 음매 울며 갈 줄 모르더니, 날이 저물어 처녀가 집으로 귀가하자 송아지도 처녀의 집까지 따라왔다. 그 날 송아지는 처녀의 보호를 받으며 하루를 보냈고, 다음 날 처녀는 송아지를 데리고 어제 갔던 계곡으로 나물을 캐러 갔으나 이제까지 따라오던 송아지는 간 곳이 없고 어제 만났던 도령이 나타나 처녀와 인사를 나눈 후 헤어지면서 정월 대보름날 달이 떠오르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 후 도령과 처녀는 정월 대보름달이 떠오를 때 다시 만나 달을 보고, 서로가 부부가 될 수 있도록 소원을 빌어 그 소원을 이루었으니, 그 때부터 정월 대보름날에는 선남선녀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와우산이 보이는 카페 작은창큰풍경에서 예쁜 풍경을 감상하다.

 

카페 입구

 

와우산과 청사포

 

청사포에서 맞이하는 신년 해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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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관광을 대표하는 랜드 마크 중에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이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海雲臺지명은 신라 최치원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동백섬에서 시작하는데 예전에는 독립된 섬이었으나 오랜 세월 퇴적작용으로 현재는 해운대 백사장과 연결되어 육지화 되었다.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동백섬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섬으로 표시되어 있고 옛날에는 동백섬이 거북이가 많이 서식하여 거북섬이라고도 불려졌다.

본래 동백섬은 장산의 산등성이인 간비오산의 말단에서 떨어져 나간 바위섬이었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전 후빙기의 해수면 상승과 함께 춘천천의 토사공급으로 모래톱이 형성되면서 육지의 일부가 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동백섬은 2005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였고 동백꽃이 된 어부의 아내, 인어공주 황옥 등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하면 해운대는 동래현의 동쪽 18리에 있고 산의 절벽이 바다 속에 빠져 있어, 그 형상이 누에의 머리와 같으며 그 위에는 온통 동백나무와 두충나무 그리고 소나무, 전나무 따위로 덮여 있어 싱싱하고 푸르기가 사철 한결 같고 이른 봄철이면 동백꽃잎이 땅에 쌓여 노는 사람들의 발굽에 채고 밟히는 것이 3, 4()나 되며, 남쪽으로는 대마도가 아주 가깝게 바라보이며 신라 때 최치원이 일찍이 대()를 쌓고 놀았다 하는데, 유적이 아직도 남아있고 전하는 말에는 최치원이 자()를 해운(海雲)이라고 하였다 한다.

동백섬 최치원 관련 유적은 돌에 海雲臺라고 새긴 것으로 동백섬 남단에 자리한 해운대 석각(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45, 1999. 3. 9. 지정)이 있다. 신라 말기의 대유학자 고운 최치원의 친필이라 추정되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문헌이나 기록은 없다. 다만 최치원은 서기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조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때부터 정계를 떠나 전국을 유람하였다고 한다. 기록에는 서기 89911월 신라 최치원이 면직되어 가야산 해인사로 은둔하였다.”라고 남겨져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해운대 석각은 최치원 이 가야산 입산 전에 석각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서기 8942월부터 89911월 사이의 시기로 추정된다. 최치원이 석각한 지 천백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해운대를 천년고을이라 부른다.

 

동백꽃 사연, 꽃으로 환생한 어부의 아내

옛날 동백섬 마을 사람들은 섬이 다리미 같이 생겼다 해서 다리미산으로 불렀고 간혹 운촌 마을에서는 앞섬이라고도 불리어졌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갑자기 거센 파도가 일어나, 다른 어부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한 어부만이 돌아오지 못했다. 어부의 아내는 다리미산 꼭대기에 올라 날마다 바다를 보며 남편을 기다리며 울다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불쌍한 아내의 무덤을 다리미산 꼭대기에 만들어 주었고, 몇 년 후 아내의 무덤가에 동백나무가 솟아 나와 동백꽃 한 송이가 붉디붉은 꽃을 피웠다. 이 사연을 가수 이미자의 노래 가사에는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 라고 표현하였다. 그 후 이곳에는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게 되어 동백꽃 섬이라 불리어졌고 세월이 흐르면서 동백섬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백섬 달빛아래 인어공주 황옥의 고향 그리움이 느껴지고

동백섬에는 덴마크 인어공주와 같은 인어공주 동상이 있으며 월트 디즈니사인어공주 이야기와 버금가는 나란다나라 황옥 공주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서려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구남(龜南, 해운대 이전) 고장에는 무궁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건국 전 이곳에는 나라를 다스릴 왕이 없었지만, 하늘이 특별히 보내준 금 상자 속에서 황금알을 깨고 나온 어린아이가 십여 일만에 성인으로 자라나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나라의 이름을 무궁이라고 칭한 왕은 하늘의 은혜로 임금이 되었다고 하여 은혜 왕이라 불렸다. 날이 갈수록 나라는 번창하였으나 왕에게는 마땅한 왕비가 없어, 모든 신하들이 왕비가 될 여인을 찾았으며 왕에게는 결혼할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은혜왕은 신하들의 간곡한 청을 굳이 사양하며 하늘이 보내줄 왕비만을 기다렸다.

왼손에 황옥을 쥐고 있는 인어모습의 황옥공주

한편 바다 건너 멀리(지금의 마도 혹은 인도로 추측) ‘나란다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 나라는 본래 바다 속에 있는 수정국이라는 나라와 형제 같은 나라였고, 그 나라 사람들의 몸 끝에는 물고기 지느러미가 있어 옷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이 나란다국의 왕과 왕비가 첫 여자아기를 낳으매 선례에 따라 공주의 이름을 부모의 나라인 수정국에 가서 지어 와야 했다. 왕은 특사로 거북(별주부)을 보냈는데, 이 거북이 바로 그 옛날 용왕의 병을 낫게 하려고 토끼를 잡아갔다가 다시 놓치는 수정국에서 쫓겨난 거북이었다. 거북은 수정국의 늙은 왕비에게 황옥이라는 공주의 이름을 얻었으며, 아직도 이 거북은 살아남아 황옥공주를 그리며 동백섬을 맴돈다는 전설이 해운에 전해진다.

모진 비바람에도 바다를 바라보는 황옥공주

한편, 황옥공주가 어느덧 선녀처럼 아름답게 자라나자 나란다국의 임금과 왕비는 공주의 신랑감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 나타난 신령이 바다 건너 무궁국의 은혜 왕에게 시집을 보내라 말하고 마침내 무궁국의 은혜 왕과 나란다국의 인어공주 황옥이 짝을 맺으니, 황옥왕비가 머문 궁궐이 지금의 동백섬이다. 수정국의 왕비인 외할머니가 일러준 말에 따라, 황옥왕비는 무궁국의 땅인 동백섬에 도착하자 겹겹이 입은 옷 중에서 제일 깊은 속치마를 벗어 산신령 에게 바쳤다. 물들어가는 저녁노을에 반짝이던 속치마가 바람에 나부끼며 높푸른 하늘로 멀리 날아가니 황옥왕비는 갑자기 발이 갖추어진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황옥왕비는 외할머니의 나라인 수정국을 매우 그리워하였다. 옆에서 이를 항상 안타까워하던 거북은 외할머니가 선물했던 황옥을 꺼내 달을 비추어 보라고 일렀다. 왕비가 그 말로 황옥을 달에 비추자, 어느새 눈앞에는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던 수정국과 나란다국의 아름다운 달밤이 펼쳐져 있었고 황옥왕비 역시 옛날 모습으로 바뀌어 바다 속을 마음으로 헤엄칠 수가 있었다. 이것을 가끔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동백섬 앞바다에는 인어가 있다는 이야기가 오늘날까지도 전해져 오고 있다.

해운대해수욕장 모래축제 작품 중 심슨가족(?)

거북이의 보은이 실현 된 해운대 해수욕장

우리나라 1호 해수욕장은 1913년에 개장한 부산의 송도해수욕장이다. 최초의 해수욕장인 만큼 여름철이면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지금의 해운대 해수욕장 모습 이였다. 이에 반해 해운대는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일본인에 의한 온천개발에 의해 해운대가 알려지기 시작으로 1920년 초반을 지나서 해수욕장으로써 명성이 알려졌다. 1934715일 동해남부선 개통(부산 해운대)으로 인해 해운대 해수욕장이 송도 해수욕장 명성을 압도했다. 그러나 6.25 전쟁과 이에 따른 피난민 등 많은 인구 유입으로 도심권 중심의 송도해수욕장이 다시 각광을 받았지만 해운대 해수욕장은 미군 수륙양륙선의 원활한 상륙을 위해 주변 해송이 베어졌고 철조망을 처져서 민간인 출입도 금지 시켰다.

1960년대초 해운대해수욕장

1960년에 이르러서 민간인에게 해수욕장이 개방되었고 마침내 1963년에 국가에서 국내외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대규모 개발을 시행하였으며 동백공원도 이때 조성하였다. 이런 와중에 1964526일 새벽 무게 95kg, 200년 묵은 거북이가 파도에 밀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발견되었다. 예로부터 거북이는 영험한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에 528일에 신속하게 거북이를 어선에 실어 바다로 돌려보냈다. 이후 호사가들은 거북이의 보은으로 인해 지금의 대한민국 대표 해수욕장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1960년대초 한여름날의 해운대해수욕장 피서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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