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경남 밀양도 여타 도시처럼 아름다운 풍광이 만발하여 밀양팔경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만어산(萬魚山, 고도 700m) 운해(雲海). 이곳 9부 능선에 위치한 만어사(萬魚寺)에서 새벽녘이나 봄비 내리는 날에는 운해(雲海)가 주변 천지를 뒤덮어 마치 백두대간 장관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맑은 소리 울리는 경석(磬石)이 유명하다.

만어사는 가야국 46년 김수로왕 때 창건되었고 고려 명종 1180년에 중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 만어사의 대웅전, 범종각, 미륵전은 근래에 지어졌지만 절 마당에 고려중기 삼층석탑(보물 제466)이 있어 고색창연한 사찰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다.

만어사 미륵전 아래 산비탈에는 너비 100m, 길이 500m 규모의 너덜지대, 암괴류가 있는데 마치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입질하는 모습이자 강물처럼 흘러가는 모습이다. 이곳 돌들을 만어석(萬魚石)이라고 불리는데 동해의 물고기들이 변한 것이라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암괴류는 3만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섬록암, 반려암,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태는 거무스름하고 둥근 편이다. 이 바위를 두드리면 종소리처럼 맑은 소리가 난다하여 경석(磬石)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화강암 성분 차이에 따른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경석은 국악기 중 타악기인 편경(編磬)과 특경(特磬)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돌이다. 옥돌이라고도 한다. 편경은 궁중제례악에 사용되는 돌로 된 유율 타악기로 자 모양의 돌 16개를 두 단으로 된 나무틀에 매달아 놓고 치는 악기이다. 특경은 편경과 달리 자 모양의 돌 1개를 나무틀에 매달아 놓고 치는 악기이다. 초기에는 중국에서 수입했으나 세종 7(1425) 경기도 남양에서 경()이 발견되어 국내에서 제작되었다. 남양 이외에 평안도 성천과 함경도 단천에서도 채취, 생산되는데 남양 경돌 품질이 가장 좋다고 한다.

어산불영(魚山佛影)어산(魚山)에 서린 부처님의 그림자라는 뜻으로 삼국유사에서 관련 내용을 정리하면,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 때 이 나라의 옥지라는 연못에 살던 독룡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불교에서 말하는 사람 잡아 먹는 귀신)가 서로 사귀면서 번개와 우박을 내려 4년 동안 농사를 망쳤다.

수로왕이 주술로써 이들의 악행을 막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자, 부처에게 설법을 청하여 이들에게 오계를 받게 하였다. 이때 동해의 수많은 고기와 용들이 불법에 감동을 받아 만어산으로 모여들어 돌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의 만어사 앞의 어산불영이다. 이 바위는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를 내었다. 특히 서북쪽의 큰 바위는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것이라고 전하는데, 멀리서보면 부처의 모습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그 모습이 사라진다고 한다.

경내 미륵전에는 미륵바위(미륵불상)으로 불리는 높이 5m 크기의 자연석 바위가 있는데 표면에 붉은색이 감도는 부분은 마치 부처님 가사(袈裟)와 같다. 미륵전은 최근 미륵바위를 보호하기 위해 지었다. 이 미륵바위는 사명대사 표충비처럼 임진왜란, 갑오농민전쟁, 한국전쟁, 4.19혁명 등 나라에 큰 일이 생길 때면 바위표면에서 땀을 흘렸다고 하다.

미륵전으로 가는 길

미륵전 옆에는 소원을 빌며 쌓아올린 돌탑 무더기가 있는 바위의 아래쪽 틈에 작은 샘이 있는데, 이 샘물은 낙동강의 조수에 따라 물 높이가 달라진다고 한다. 이는 너덜지대(암괴류) 아래에 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최근 노출 된 미륵바위를 보호하기 위해 미륵전을 지었다

제작연도가 고려 중기인 삼층석탑은 절이 자리한 위치와는 떨어져 있으나 석탑의 뒤편에 건물터로 보이는 널찍한 대지가 있어 이곳이 본래의 법당터로 여겨진다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한 돌로 구성되어 있다.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3단이다. 탑의 머리장식에는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얹혀 있으나 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탑의 바닥돌이 드러나 있고 지붕돌이 약간 파손된 상태이지만,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어 정돈된 모습을 보이는 뛰어난 작품이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어산불영(魚山佛影)

<고기(古記)>에 이렇게 말했다. “만어산(萬魚山)은 옛날의 자성산(慈成山), 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 이것은 마땅히 마야사摩耶斯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어를 말한 것이다)이니, 그 곁에 가라국(呵囉國)이 있었다. 옛날 하늘에서 알이 바닷가로 내려와서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이가 바로 수로왕(首露王)이다. 이때 국경 안에 옥지(玉池)가 있었고 못 속에는 독룡(毒龍)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萬魚山)에 나찰녀(羅刹女) 다섯이 있어서 독룡과 왕래하면서 사귀었다. 그런 때문에 때때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려 4년 동안 오곡(五穀)이 익지 못했다. 왕은 주문(呪文)을 외어 이것을 금하려 했으나 금하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부처를 청하여 설법(說法)한 뒤에 나찰녀(羅刹女)는 오계(五戒)를 받아 그 후로는 재앙이 없어졌다. 때문에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마침내 화()하여 골짜기 속에 가득 찬 돌이 되어서 각각 쇠북과 경쇠의 소리가 났다.”(이상은 <고기古記>에 있다).

또 상고해 보면, 대정(大定) 12년 경자(庚子; 1180)는 곧 고려 명종(明宗) 11년인데 이때 비로소 만어사(萬魚寺)를 세웠다. 동량(棟梁) 보림(寶林)이 임금에게 글을 올렸는데 그 글에 말했다. “이 산 속의 기이한 자취가 북천축(北天竺) 가라국(訶羅國) 부처의 영상(影像)과 서로 같은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산 가까운 곳이 양주(梁州) 경계의 옥지(玉池)인데 여기에도 역시 독룡(毒龍)이 살고 있다는 것이요, 둘째는 때때로 강가에서 구름 기운이 일어나서 산마루에까지 이르는데, 그 구름 속에서 음악소리가 나는 것이요, 셋째는 부처 영상(影像)의 서북쪽에 반석(盤石)이 있어 항상 물이 괴어 없어지지 않는데, 이것은 부처가 가사(袈裟)를 빨던 곳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이상은 모두 보림(寶林)의 말인데, 지금 친히 와서 모두 참례(參禮)하고 보니 또한 분명히 공경하고 믿을 만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골짜기 속의 돌이 전체의 3분의 2는 모두 금과 옥의 소리를 내는 것이 그 하나요, 멀리서 보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보이지 않아서 혹은 보이기도 하고 혹은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