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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읍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는 연화리(蓮花里)는 주말이면 해물포장마차에서 해산물과 전복죽을 즐기고 커피를 마시며 바다 풍광을 보며 여유를 즐기는 인파로 가득하다. 심지어 교통체증까지 발생한다. 이곳에는 기장 8경 중 하나로 형상이 거북을 닮은 작은 섬 죽도(1,500)가 있다.

연화리 지명은 연화리와 석산리의 경계를 이루는 마을 뒷산 봉우리모습이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연화봉(蓮花峯, 154m)로 불리우지고 있어 비롯되었다옛날 기장고을의 형국을 말할 때 옥녀가 비단을 짜고 있는 옥녀직금(玉女織錦)형이라고 하고, 이러한 형국에서 연화봉은 연꽃무늬의 비단 폭에 해당되는 산봉우리이다.

지금 죽도는 매립과 연죽교(蓮竹橋)라는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육지와 200m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배로 왕래할 수 있는 곳이었다죽도의 원명은 무지포도(無只浦島)이나 대나무 숲이 울창하여 지명이 비롯되었으나, 근래에는 대나무가 줄고 동백나무가 자생하여 가득하여 동백섬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조선환여승람도서조에 의하면 죽도는 기장군 남쪽 8리 무지포 앞바다에 있으며, 거북이가 물에 떠 있는 것과 같다. 섬의 길이가 40척이고 넓이는 20척인데 섬 안에 대()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섬에는 대나무가 자생하고 시원한 샘, 암자(죽도암) 그리고 옥녀당(玉女堂)이라는 당집이 있었으며 옥녀를 위해 정월 초하루, 시월 초하루에는 마을에서 당제(堂祭)를 올렸으나 그 유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비오는 밤에는 댓잎의 떨림과 빗소리가 문풍지와 함께 화음을 내면서 많은 멋과 낭만을 전해주기에 죽도야우(竹島夜雨)의 승경이라 하였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묵객들이 자주 찾았던 기장의 대표적인 명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천부교 기장신앙촌 소유하고 주변이 철조망이 둘러 싸여 외부인의 접근을 금하고 있다. 섬 밖에서 보면 별장, 관리건물, 그리고 큰 담벼락이 보이며 그 곳을 갈 수 없음이 매우 안타깝다. 기장의 명소가 기장신앙촌 소유로 갈 수 없는 것이 용두대, 신라토성, 죽도 등 이다. 천부교는 대승적 차원에서 이들 명소에 대해서는 일반인에게 일부 개방하는 것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바람직한 종교의 참모습일 것이다.

연화리는 신암마을과 서암마을로 구성되어 있고 신암마을 해안가에 있는 섬이 죽도이다. 신암의 옛 이름은 무재다. 기장현읍지에는 이곳을 무지포(無知浦), 무차포(武次浦)라 적고 있다. 지금의 대변항까지를 포함하여 무지포라 불렀는데, 기장에서 가장 큰 포구다. 이곳은 예부터 수군영이 있는 변방의 요충지였다. 옛 이름인 무재에서 무는 물의 고어이고, 재는 잣이라고도 부르는데 성()의 고어이다. 따라서 무재 즉 물재는 수군영을 뜻하는 수성(水城)의 의미다.

연화리는 신암마을과 서암마을로 구성되어 있고 신암마을 해안가에 있는 섬이 죽도이다 .  신암의 옛 이름은 무재다 .  기장현읍지에는 이곳을 무지포 ( 無知浦 ),  무차포 ( 武次浦 ) 라 적고 있다 .
대변항 전경. 기장현읍지에는 지금의 대변항까지를 포함하여 무지포라 불렀는데, 기장에서 가장 큰 포구다. 이곳은 예부터 수군영이 있는 변방의 요충지였다.

신암의 신은 새롭다는 뜻으로 해 뜨는 곳, 동쪽의 의미다. 암은 바오의 와음(訛音)으로 보고 있다. 바오는 영의 옛말이다. 따라서 신암은 원래는 새바오 즉 동영(東營)을 의미한다. 무지포에 있는 수군영을 새바오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잘못 새바우로 발음하고,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신암(新岩)으로 표기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신암을 신촌(新村)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부산은 다양한 신흥 종교의 발원지로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바다를 끼고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새로운 외래 문물의 수용이 수월하기 때문 일까? 부산 사하구 감천2동 태극도 본산, 동구 범일6동 안창마을 통일교 성지(수정산 자락에서 문선명 교주가 통일교 기초와 원리를 세웠다고 한다), 기장군 기장읍 천부교 신앙촌, 영도구 동삼동 천리교 본부, 남산동 '이슬람 부산성원' 등 부산에서 발원한 신흥 종교이다.

신암마을 해변가에 있는 것으로 누군가 옥녀를 위해 제(祭 )를 올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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