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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사지(念佛寺址)는 양피사지에서 칠불암 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약 600m 떨어진 곳으로 통일신라시대 1금당 2탑식의 전형적인 사찰이다. 절의 규모는 경주시 남산동 1130번지 일원(면적 : 2,175)이고 삼국유사권 제5, 피은(避隱) 8 염불사(念佛師)조에 기록된 절이다.

삼국유사 염불사(念佛師)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남산(南山) 동쪽 산기슭에 피리촌(避里村)이 있고, 그 마을에 절이 있는데 피리사(避里寺)라 했다. 그 절에 이상한 중이 있었는데 성명은 말하지 않았다. 항상 아미타불을 외어 그 소리가 성() 안에까지 들려서 360() 17만호(萬戶)에서 그 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소리는 높고 낮음이 없이 낭랑하기 한결같았다. 이로써 그를 이상히 여겨 공경치 않는 이가 없었고, 모두 그를 염불사(念佛師)라 불렀다. 그가 죽은 뒤에 소상(塑像)을 만들어 민장사(敏藏寺) 안에 모시고 그가 본래 살던 피리사(避里寺)를 염불사(念佛寺)로 이름을 고쳤다. 이 절 옆에 또 절이 있는데 이름을 양피사(讓避寺)라 했으니 마을 이름을 따서 얻은 이름이다.

여기에 나오는 염불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알려진 내용이 없으나 삼국유사 5권 피은(避隱) 포천산(布川山) 5비구(五比丘) 경덕왕대(景德王代)를 보면 정토신앙(淨土信仰)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따라서 염불은 관음신앙과 정토신앙이 관련된 것으로 추정 된다.

창건 시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기록을 살펴보며 당() 천보(天寶) 4(745) 이전으로 추정되므로 최소한 8세기 초에는 창건된 것으로 생각된다. 폐사 시기는 삼국유사<皇龍寺九層塔>조와 고려사(高麗史)<세가(世家)>의 내용을 참조할 때, 고려 고종 25(1238)의 원의 침입에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폐사된 이후 조선시대 마을이 들어서면서 삼층석탑을 무너뜨리고 탑 부재를 석재로 이용하였다.

절 주위를 살펴보면 동편은 칠불암 진입로가 지나가고 서편에는 산자락이 산길을 사이에 두고 접해 있으며, 남편은 밭과 분묘가 분포하고 있다. 북편의 금당이 위치하는 곳에는 사찰과 민가가 들어서 있다. 2003년과 2008년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고, 20091월에 동·서 삼층석탑은 모두 복원되었다. 2003년 발굴조사 이전의 동 삼층석탑은 북쪽으로 넘어진 상태로 일부 부재만 잔존하고 있었고, 서 삼층석탑은 서쪽으로 넘어진 상태로 각 부재가 남아 있었는데 주변으로 와편과 토기편이 산재하고 있었다.

불국사역 앞 삼층석탑은 염불사지의 동 삼층석탑의 탑재를 사용하여 1962년 복원하였고 1층 옥개석만 이거사지의 탑재를 사용했다. 2009년에 이루어진 복원작업에 따라서 원래 자리인 전 이거사지(傳移車寺址)로 옮겨졌다.

동 삼층석탑

2003년에 이루어진 발굴 조사 당시 옥개석편 3매와 하층기단면석 1매만 남아 있었고, 나머지 부재들은 1962년에 불국사역 앞으로 옮겨져서 1963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복원 당시 1층 지붕돌(옥개석)의 파손 정도가 심하여 부근의 이거사지(移車寺址) 석탑의 부재로 대신하였고, 원래의 1층 옥개석은 이설된 석탑의 뒤에 묻었다. 또한 현재의 노반석은 이설 당시에 새로 만들었다.

염불사지(念佛寺址) 동 삼층석탑
이거사지(移車寺址) 석탑의 지붕돌(옥개석)

동 삼층석탑은 이층기단에 3층의 탑신부(塔身部)를 갖고 있는 석탑으로 상·하층기단면석에 탱주(撑柱) 2, 지붕돌(옥개석)의 옥개받침 5단 등 전형적인 8세기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석탑이다. 하층기단면석은 8매의 돌로 결구되었는데, 탱주 1주는 별석(別石)으로 만들어졌다. 상층기단면석 역시 8매의 돌로 결구되었는데, 그 형식은 하층기단면석과 같다. 그 위의 상층기단갑석에는 각형2단으로 탑신받침이 있다. 몸돌(탑신석)은 양쪽에 우주(隅柱)가 조각되어 있고, 옥개석은 5단의 옥개받침과 2단 괴임이 있는 갑석과 갑석부연이 탑신석을 받치고 있다.

그러나 1층 옥개석 옥개받침의 최하단이 1층 탑신석의 폭보다 훨씬 넓은 것은 1층 옥개석의 부재가 이거사지에서 옮겨온 데 따른 것이다. 또한 상륜부(相輪部)는 노반석(露盤石)만 남아 있는데 노반석이 작은 이유는 복원 당시 잘못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1963년에 불국사 역 앞으로 이전된 동 삼층석탑의 복원된 전체 높이는 588이었지만, 염불사지로 옮겨서 복원된 석탑의 높이는 583.7이었다. 이는 새로 복원하면서 1층 옥개석과 노반석을 원래 형태에 맞춰서 새롭게 교체하면서 높이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여겨진다. 

서 삼층석탑

염불사지(念佛寺址) 서 삼층석탑

서 삼층석탑은 2003년 조사 당시 탑재가 도괴되었으나 하층기단면석 2, 하층기단갑석 1, 상층기단면석 3, 1·2·3층탑신석, 2·3층옥개석이 남아 있었다. 기단면석과 지대석은 1매석으로 처리되었고 각 부재의 크기는 동 삼층석탑과 비슷하여 같은 크기의 쌍탑으로 만들어졌다. 동 삼층석탑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사리공을 서 삼층석탑이 3층 탑신석에서 확인 되었는데 방형으로 너비 18, 깊이 10.5이다. 복원된 전체 탑 높이는 545이다.

염불사지 동, 서 삼층석탑은 경주지역 삼층석탑의 시원이었던 감은사지 삼층석탑의 기본구조를 따라 세워진 후대 삼층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복원 공사 후 남은 석탑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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