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동남산에서 현존하는 사찰 중 가장 규모가 큰 보리사(배반동 산 66-2)는 비구니 사찰로 三國史記에 헌강왕릉(憲康王陵)과 정강왕릉(定康王陵)의 위치가 설명되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곳에 8세기 불상인 보물 제136호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보리사는 三國史記기록 이전부터 있었으며, 9세기에도 사찰은 존속해 있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보리사는 여러 차례에 걸친 공사로 창건 당시의 가람 형태를 알 수 없다.

보리사 대웅전
보리사 삼성각과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제136)

보리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경주 남산에서 신체, 광배, 대좌 모두를 갖추고 있는 불상으로 통일신라 중기를 대표하고 있다. 불상의 크기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 대좌 높이 1.22m이다. 석재(石材)는 광배석 1, 신체석 1, 대좌 4(지대석 1, 상대복련좌 1, 간주 1, 하대앙련좌 1)로 총 6매의 별석(別石)으로 되어 있다.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제136호)은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 대좌 높이 1.22m이다.

석조여래좌상의 육계(肉髻)는 이중(二重)으로 표현된 나발(螺髮)이 덮여있는데 머리와 얼굴 경계의 윤곽이 매우 뚜렷하다. 적당한 살이 오른 얼굴은 다소곳이 아래를 향한 눈과 미소를 머금은 입 등과 함께 평온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신비로운 표정을 한 부처의 모습이다.  비대하지 않은 단정한 신체는 목에 삼도가 있으며 수인은 항마촉진인을 하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서 옷 주름은 층 단(層 段)을 이루며 신체 각 부위를 감싸고 있.

나룻배 모양의 광배(光背)는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이중주형(二重舟形)으로 만들어 졌다. 광배의 내부 문양은 연꽃, 보상화(寶相華) 등 화문(花紋)과 화염문(火焰紋) 그리고 화불(化佛) 등으로 꾸며져 있다. 본존의 신체에 따라 굵은 선이 이중으로 돌려졌는데 선과 함께 큼직한 보상화 등 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선의 외부에는 불꽃 모양의 화염문, 내부에는 6구의 화불과 화문이 장식되었고 광배 상단 끝에도 하나의 화불이 표현되어 있다. 광배의 뒤 모습을 보면 상단이 반파(半破)되었음 알 수 있다. 최근 보존처리하여 복원되었다.

화불(化佛)과 화불사이에는 연꽃과 당초가 새겨져 있고 본존의 신체에 따라 굵은 선이 이중으로 돌려졌는데 선과 함께 큼직한 보상화 등 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대좌는 지대석 위에 복판연화대좌(複辦蓮華臺座)를 놓았고 그 위는 팔각받침을 3단으로 마련한 후 우주(隅柱)가 각출된 팔간 간주(竿住)를 세운 후 앙련(仰蓮)의 상대석(上臺石)을 얹어 놓은 구조이다. 이 상대석 역시 아래에서 간주와 만나는 부분에는 2단의 팔각 받침석을 마련했는데, 앙련(仰蓮)의 연화문은 단판(單瓣)이면서 중층(重層)으로 각출시켜 넉넉하게 마련하였다.

석가여래좌상은 수인을 보면 항마촉지인으로 석가여래로 불 수 있는데 광배 뒷면에 약사여래를 조성하였기 아미타여래로도 볼 수도 있다. 사방불을 조성한 바위를 보면 약사여래 맞은편에 아미타여래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당시 석공만이 알 수 있으리.

마애약사여래좌상(磨崖藥師如來坐像)

마애약사여래좌상은 석조여래좌상의 광배 뒷면에 얕은 돋새김(양각)과 선각으로 조각되어 있는 불상으로 마멸이 심하여 얼굴 등의 세부 모습은 확인하기 어렵다. 불상 높이 1.3m로서 연화문이 이중(二重)으로 된 앙련연화대좌 위에 여래상이 결가부좌하고 있다.

머리에 육계가 있으며 귀는 어깨까지 늘어뜨려져 있고, 목에는 삼도가 있으며 얼굴은 둥글다. 얇은 법의는 신체를 드러내 보여주며, 수인은 왼손에 둥근 약합(藥盒)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가슴 높이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광배는 석조여래좌상과 거의 동일하게 조각했으나 육안으로는 식별이 어렵다. 외곽의 화염문은 어렴풋이 보인다.

정리되지 않은 석재가 모퉁이에 쌓여있다.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 유형문화재 제193)

보리사 주차장에 있는 안내표지판
마애불좌상 찾아가는 길. 마애불좌상은 보리사에서 남쪽 미륵골 기슭을 따라 50m 가량 오르면 동쪽을 향해 절벽을 이루는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마애불좌상은 보리사에서 남쪽 미륵골 기슭을 따라 50m 가량 오르면 동쪽을 향해 절벽을 이루는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 바위는 넓적한 반원형으로 높이와 폭은 약 2.4m이다. 바위를 감실형(龕室形)으로 광배를 움푹하게 파서 부조(浮彫)했는데 신체 높이는 1.2m이며 어깨 너비는 60이다. 바로 앞에는 제단석이 놓여 있다.

보리사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 유형문화재 제193호)
마애불좌상 바로 앞에는 제단석이 놓여 있다.

머리는 낮은 육계로 표현되었고 두 귀는 옷깃에 닿을 듯 내려왔고 삼도가 있는 목은 짧다. 살이 올라 퍼진 얼굴은 사각에 가깝고 궁()눈썹에 가는 눈, 넓적한 코와 꽉 다문 입술 등의 표정 속에는 친근한 표정을 느낄 수 있다. 법의는 통견인데 수인은 옷 주름이 덮고 있어 알 수 없으며 결가부좌한 하체 역시 상체에서 내려온 옷 주름이 덮여 있다. 대좌는 3잎의 중판연화가 앙련(仰蓮)인 상태로 표현되어 있다.

 조성연대는 석가여래좌상 보다 후대로 보고 있으며 통일신라후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좌상을 조성한 바위뒤 끝부분에는 홈이 파여져 있는데 조성 당시 추가 공사를 하다가 중단된 것 같다.
마애불좌상에서 바라 본 들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