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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면 진하리에 위치한 진하해수욕장은 울주군, 울산광역시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으로 길고 완만한 백사장과 시원한 바다바람으로 여름이면 많은 해수욕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특히 파도와 바람이 좋아 서핑과 카이트 서핑 명소로 유명하다. 예전에는 세계 여자비치발리볼대회, 세계 원드서핑대회를 개최 했었다. 그리고 지자체 주관으로 매년 해양스포츠제전, 서머 페스티벌 등 다양한 여름행사를 개최한다. 또한 캠핑장이 조성되어 사계절 가족, 친구단위로 즐길 수 있다.

울주군에서 운영하는 울주해양스포츠센터캠핑장의 송림

 진하해수욕장 앞바다에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섬이 있다. 바로 명선도(名仙島)이다. 신선이 내려와 놀았던 섬으로 과거에는 매미가 많이 울어다 하여 명선도(鳴蟬島)라고 불렀다. 한때는 동백이 자란다하여 동백도(동백도)라고도 불렀다. 섬의 둘레는 330m, 면적은 6,744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시원한 바다바람과 해안 풍광을 즐기고 느끼기에 좋다.

진하해수욕장 앞바다에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섬이 있다. 바로 명선도(名仙島)이다. 신선이 내려와 놀았던 섬으로 과거에는 매미가 많이 울어다 하여 명선도(鳴蟬島)라고 불렀다. 한때는 동백이 자란다하여 동백도(동백도)라고도 불렀다.
섬의 둘레는 330m, 면적은 6,744㎡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시원한 바다바람과 해안 풍광을 즐기고 느끼기에 좋다.

옛 풍경에 명선도 부근으로 고기잡이배가 들어오는 것이 절경이라 하여 선도귀범(仙島歸帆)이라 불렸다. 영남읍지(울산)에는 명선도(鳴蟬島)는 서생포에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울산서생진지도에는 명산도(明山島), 청구도에는 명산(鳴山), 조선지형도(장생포)에는 명선도(名仙島)로 각각 묘사하고 있다.

명선도에서 본 명선교
회야강 하류에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신식 다리인 명선교가 놓아 져서 진하마을과 강양마을 사이를 주민들이 편하게 이동하고 있다. 또한 야경이 아름다워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명선교에서 본 명선도
명선교에서 본 강양마을
명선교에서 본 강양마을 해안선

 서생면과 온산읍 사이를 가르며 유유히 동해로 흐르는 강이 있다. 이 강은 양산시 원효산 원효샘 동쪽계곡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강으로 이름이 회야강(回夜江)이다. 회야(回夜)는 배미를 돌아서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이다. ‘돈다는 말이 ()’, ‘논배미와 같은 말에서 흔히 쓰이는 배미바미(밤이)’로 보아 ()’로 한자화하면서 회야(回夜)로 변한 것이다.

  서생면과 온산읍 사이를 가르며 유유히 동해로 흐르는 강이 있다. 이 강은 양산시 원효산 원효샘 동쪽계곡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강으로 이름이 회야강(回夜江)이다

특히 화정리 앞을 흐르는 회야강을 일승강(一勝江)이라고 부르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조명연합군이 왜군을 무찔러 승리한데서 유래한다지금은 회야강을 따라 자전거 길과 인도가 조성되어 자전거 타는 사람과 트레킹 하는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화정리에서 강 건너 강양리로 가기위해 통시다리로 건너는데 이 다리는 강 속에 자연적으로 있던 돌 중간 중간에 다시 돌을 놓고 둥글게 무더기로 쌓아올리고 그 위로 나무를 놓은 다리다. 돌에 굴(石花)이 많이 붙어 자라기 때문에 다리 이름을 '꿀다리'로 불렸다. ''은 굴의 방언이다.

회야강을 따라 자전거 길과 인도가 조성되어 자전거 타는 사람과 해파랑길로 트레킹 하는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화정리에서 강 건너 강양리로 가기위해 통시다리로 건너는데 이 다리는 강 속에 자연적으로 있던 돌 중간 중간에 다시 돌을 놓고 둥글게 무더기로 쌓아올리고 그 위로 나무를 놓은 다리다. 돌에 굴(石花)이 많이 붙어 자라기 때문에 다리 이름을 '꿀다리'로 불렸다. ''은 굴의 방언이다

 지금은 서생교가 생겨나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나 돌들은 세월에 의해 많이 유실되어 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회야강 하류에 엘리베이터를 갖춘 최신식 다리인 명선교가 놓아 져서 진하마을과 강양마을 사이를 주민들이 편하게 이동하고 있다. 또한 야경이 아름다워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강양마을에서 본 서생교
서생교 다리 밑 바닷돌에 붙은 굴(石花)

 진하(鎭下)라는 이름은 서생포 진성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현재는 모두 육지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부는 육지, 일부는 기수 지역이었으나 그동안 해안의 융기 현상으로 지면이 높아졌고 이후 마을이 생겨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 서생포 왜성의 동문에 배가 접안 할 수 있는 선착장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유유히 동해로 흘러가는 회야강

임진왜란 전승 기념비문 편장군 승첩동(片將軍 勝捷洞)마애비(磨崖碑)

편장군 승첩동은 진하해수욕장에서 남창방향의 군도31호선 도로변 왼쪽 암벽(서생면 서생리 450-2번지)에 새겨진 마애비(磨崖碑)이다편장군은 명나라 신종 때 어양총절사로써 이름은 편갈송(片碣頌)이고 중국 절강성(浙江省) 출신이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 장군 휘하에서 유격장군으로써 평양전투, 마귀(麻貴) 장군 휘하에서는 종군도독으로써 울산왜성(도산성)전투, 서생포왜성 탈환전투 등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 본국으로 귀국하려 했으나 명나라 조사관 정응태의 모함으로 귀국을 단념하고 조선에 귀화하여 경주 금오산에 은거했다. 이후 편풍세(片豊世), 편풍원(片豊源), 편산보(片山甫) 등 세 아들 또한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와서 아버지 편갈성과 함께 금오산에 살았다편갈성이 세상을 떠나자 금오산에서 삼년상을 치른 후 편풍세, 편풍원은 전라남도 나주(羅州), 편산보는 만경(萬頃)에 각각 정착하여 살았으며 우리나라 절강 편씨(片氏)의 시조가 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편장군 승첩동여섯 글자가 새겨진 암벽 면의 크기는 높이 110cm, 70cm로 의미는 편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곳이라는 뜻으로 당시 편갈송 장군의 직책이 종군도독이라서 이곳을 도독동이라 불렸다. 이암벽에 누가, 언제 새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이후 새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옆에는 十一代孫 轉運郞 永基 下馬 壬辰 閏六月日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11대손 전운랑(轉運郞) 편영기(片永基)1892년 임진년(고종29) 찾아와 참배를 하였다는 내용이다. 전운랑은 세곡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직책이며 1598년 임진왜란 끝나고 294년 지나서 후손이 찾아 온 것이다1987년 후손들이 편갈송 장군 기적비 유명어양총절사동원도독중군(有明漁陽摠節使東援都督中軍) 유격장모헌편공길송기적비(遊擊將慕軒片公碣頌紀跡碑)를 서생포왜성 동문입구에 세웠다.

「十一代孫 轉運郞 永基 下馬 壬辰 閏六月日」 이라는 명문은 11대손 전운랑(轉運郞) 편영기(片永基)가 1892년 임진년(고종29) 찾아와 참배를 하였다는 내용이다.

성현의 용재총화10 내용을 보면 임진왜란 전 우리나라(조선)로 귀화한 인물은 원 말기에 온 설장수(偰長壽)와 명나라 태조 주원장 때 명옥진(明玉珍)의 아들 명승(明昇)과 진우량(陳友諒)의 아들 진리(陳理)이다설장수는 시문에 능해 근사재집과 예재집을 지었고 과거에 급제하여 2품 벼슬을 하였고 그의 아들 미수(眉壽)와 경수(敬壽)도 과거에 급제했다.

명옥진은 원 말기 수주(隨州)사람으로 촉()을 차지한 후 스스로 황제라 일컬었다. 나라이름은 대하(大夏), 연호는 천통(天統)이라고 했다. 그가 5년만에 죽은 후 그의 아들 명승이 우리나라로 귀화했다. 정치적 망명을 한 것이다. 이때 명 태조는 조선에게 그들에게 벼슬주지 말고 백성으로 삼지도 말라고 요구하여 나라에서는 초가집에 노비만 주었으나 여생은 편안하게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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