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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이구아수 폭포,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나이아가라 폭포는 다른 폭포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걸쳐져 있다. 오대호(五大湖) 중 슈피리어 호(Lake Superior), 미시간 호(Lake Michigan), 휴런 호, 이리 호(Lake Erie)를 지나서 흐르는 강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형성하였고 이 물이 온타리오 호(Lake Ontario)를 지나서 세인트 로렌스 강이 되어 최종 대서양으로 흘러간다.

나이아가라(Niagara) 폭포는 뉴욕 주 버팔로(Buffalo) 시의 미국 폭포와 캐나다 온타리오 주 나이아가라 폭포 시의 캐나다 폭포로 나누는데 고트 섬(미국) 경계로 사진의 왼쪽이 미국 폭포이고 오른쪽이 캐나다 폭포다.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나이아가라(Niagara) 폭포는 뉴욕 주 버팔로(Buffalo) 시의 미국 폭포와 캐나다 온타리오 주 나이아가라 폭포 시의 캐나다 폭포로 나누는데 고트 섬(미국) 경계로 동쪽이 미국 폭포이고 서쪽이 캐나다 폭포다. 캐나다 폭포는 낙차 54m, 너비 675m이며 말발굽(Horse Shoe) 폭포라고 부른다. 고트 섬을 끼고 건너편에 있는 미국 폭포는 낙차 56m, 너비 320m으로 규모와 수량을 비교하면 캐나다 폭포가 크고 웅장하다. 폭포를 구경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배를 타고 폭포 가까이 폭포수를 느끼는 것과, 헬기를 타고 보는 헬기 투어 또는 전망대(Tower)에 가서 보는 것인데 주변에 99m, 236m 등 다양한 높이의 전당대가 있어 폭포 전체 조망을 즐기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다.

단연 백미는 배를 타고 폭포를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것이다. 안개 아가씨 호(Maid of the Mist)에 승선하면 배는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 최대한 폭포에 가까이 접근하는데 폭포수에서 떨어지는 물보라를 체험하게 되는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그리고 승선하면 반드시 파란 레인 코트를 입어야 한다. 안개 아가씨 호(Maid of the Mist)는 1846년 최초로 운영한 이래 계속 운행 중이다.

안개 아가씨 호(Maid of the Mist) 선착장과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레인보 다리와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왼쪽부터 레인보 다리와 프로스펙트 전망 타워(86m)
안개 아가씨 호(Maid of the Mist)에서 본 미국 나아아가라 폭포
왼쪽부터 레인보 다리와 프로스펙트 전망 타워(86m) 그리고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캐나다 나이아가라(말발굽 : Horse Shoe) 폭포에 진입하는 안개 아가씨 호(Maid of the Mist)

그리고 퀸 빅토리아 공원에서 매일 해가 진 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등 형형색색의 조명을 비추는데 그 모습이 너무 황홀하고 아름답다. 또한 말발굽(Horse Shoe) 폭포 전경을 감상하기에도 제격이다.

캐나다 나이아가라(말발굽 : Horse Shoe) 폭포 상류

옛날 이곳에는 북미 세네카 인디언들이 살았었고 프랑스 선교사 루이 헤네핀이 1978년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발견했다. 발견 당시 그는 “세계에서 이에 견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감회를 묘사하였다.

숙소인 Radisson Hotel에서 바라 본 전경;캐나다 나이아가라(말발굽 : Horse Shoe) 폭포 상류

나아가가라 폭포에는 슬픈 전설이 하나 서려있다. 먼 옛날, 이곳에 살던 어느 북미 원주민 부족은 1년에 한 번씩 폭포의 신에게 제물을 바쳐야 했는데, 부족의 추장은 제비뽑기로 자신의 하나뿐인 딸이 선택되었다. 공정성과 추장으로서의 위엄을 위해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추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딸이 제물로 바쳐지던 날, 그녀는 꽃으로 장식된 작은 조각배를 타고 폭포를 향해 떠밀렸다. 그녀의 슬픈 절규가 물소리에 묻혀버리려던 찰나, 멀리서 그녀의 아버지인 추장이 배를 타고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두 부녀는 손을 맞잡은 채, 함께 폭포 아래로 사라졌다.

캐나나 퀘벡에서 출발하여 몬트리올 - 킹스턴 - 토론토- 나이아가라 폭포로 이어지는 여행경로에 만난 모습
레인보 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캐나다 - 미국 국경 검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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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은 루이 14세가 17세기말 베르사유로 궁권을 옮기기 전 까지 사용되었던 궁궐로써 800년 동안 증축공사의 결과가 현재의 모습이다. 1970년대까지 경제부처와 미술관으로 나누어 사용되었는데 1981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에 의해 전체가 박물관으로 변경, 사용되었다. 6만㎡의 전시실은 리슐리외관, 숼리관, 드농관 등 3곳으로 나뉘며 발권장소인 지하층을 포함하여 총 4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는 11개 분야로 방대하여 전부를 감상하려면 일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최초의 루브르는 12세기말 늑대로부터 시가지를 보호하기 위해 필리프 오귀스트가 축조하였다. 이름의 유래는 늑대를 뜻하는 라틴어 Lupus, 즉 프랑스어 Loup에서 유래가 된 것이다. 당시에는 망루를 지키는 문지기 숙소와 감옥에 불과하였는데 14세기부터 궁궐로써 확장을 거쳐 거듭나게 되었다. 궁궐이 베르사유로 옮긴 후부터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사무실과 유명 예술가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프랑스 혁명 때 왕족과 귀족들로부터 압수한 재물 660여점을 전시하기 위해 1793년 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되어다. 이후 계속된 정비와 확장을 통해 나폴레옹 3세 섭정기간 때인 1880년에 마무리가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 정문에 위치하고 있는 유리 피라미드는 1981년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에 의해 지어졌고 건축가 이오 밍 페이의 작품으로 1989년에 완공되었다. 피라미드의 정사각형 바닥면에서 꼭짓점까지의 높이는 21.64m, 603개의 마름모와 70개의 삼각유리로 95톤의 철근이 지지하고 있다. 유리 피라미드 아래는 박물관 안내소와 유무인 발권장소가 있다.
총 5개의 층과 3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리슐리외(루이 13세 때 재상) 관, 쉴리(앙리 4세 때 재상) 관, 드농(루브르 박물관 초대 관장) 관이다.

 

암사슴과 함께 있는 사랑의 여신 아르테미스. 일명 베르사유의 다이아나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는 1820년 한 농부에 의해서 에게 해의 밀로 섬에서 발견되었고 당시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샤를 프랑스와 드 리파르도가 루이 18세에게 바쳤다. 기원전 130 ~ 100년 당티오슈가 제작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날개를 단 사모트라케의 니케(승리의 여신)

날개를 단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기원전 331년 ~ 323년에 제작 된 헬레니즘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이다. 기울어진 날개의 각도, 왼쪽 다리의 위치, 바람이 불어 여신의 다리를 휘감는 듯한 옷의 표현은 조각을 보는 사람들에게 조각상이 날아오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은 15세기 작품으로 성모 마리아가 유다 산골의 즈가리아 집에 있는 엘리사벳을 만나는 것을 그린 작품이다. 고령으로 임신한 엘리사벳이 무릎을 꿇고 마리아에게 존경을 표하는데 마리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엘리사벳의 어깨를 짚으며 그녀의 행동을 만류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뒤에 서 있는 두 여자는 마리아 야코비와 마리아 살로메이고 마리아 야코비는 배가 부풀었고 마리아 살로메는 두 손을 모았다.
화면배경에는 개선문과 항구도시 전경이 보이는데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는 개선문은 승리의 문, 항구는 구원의 기항지를 의미하는 메타포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 모자상"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 모자상”은 1503년에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린 작품으로 피렌체에서 제작한 후기 작품이다. 중앙에 정면을 향해 앉아있는 여인이 마라아의 모친 성 안나이다. 어머니의 무릅에 앉아있는 성모 마리아는 양의 등을 타려는 아기 예수를 양과 떼어놓으려고 하고 있다. 양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희생양의 상징으로서, 마리아의 행위는 아들을 험난한 운명으로부터 막고 싶은 모정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성 안나의 머리를 정점으로 하여 삼각형의 오른편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리고 어린 양으로 구성 된 피라미드 구도다.
스푸마토 기법은 윤곽선을 뚜렷하게 그리지 않고 희미하고 뿌옇게 그리는 기법으로서, 인물이 살아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주는 효과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밀라노 귀족 부인의 초상"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밀라노 귀족 부인의 초상”은 15세기에 밀라노에서 그린 작품이다.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도발적인 눈, 꽉 다문 입, 밖에서 들어온 반사 된 빛까지 고스란히 담은 정교한 눈동자의 이 여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밀라노에서 초상화를 그릴 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요소다. 이 작품에는 손이 그려져 있지 않고 손 부분이 파라페토라고 불리는 난간으로 가려져 있는데 당시 이탈리아 화가들이 인물에 현실감과 공간감을 불어넣기 위해 자주 사용하던 요소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바위산의 성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바위산의 성모”는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린 작품으로 1483년 밀라노의 산 프란체스코 수도회 성당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1485년에 완성한 것으로 밀라노에서 제작한 첫 작품이다. 성 가족이 이집트로 피난을 하던 중 세례자 요한을 만났다는 전설을 그린 것으로 동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순간을 묘사한 작품이다.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 그리고 천사와 예수가 피라미드 구도로 화면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1503년 비단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가 그녀의 초상화를 다빈치에게 부탁해서 그린 작품이다. 모나는 이탈리어로 부인을 뜻하고 리자는 이름이다. 프란체스코가 작품료를 지불하지 않아 다빈치가 1519년 사망하기까지 그가 가지고 있었고 사망 후 그의 제자에게 남겼다.
피라미드 구도 속에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의 여인이 팔걸이의자에 몸에 살짝 의자에 앉아 있다. 모나리자의 원본은 관리차원에서 지하 아틀리에에 보관되어 있고 전시관에 걸린 작품은 최첨단 기법으로 그려낸 복제품이다.

로렌조 로토의 "간통한 여인과 예수"

로렌조 로토의 “간통한 여인과 예수”는 16세기 작품으로 이소케팔리아 원칙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소케팔리아 원칙은 다수의 등장인물로 짜이는 역사화의 구성에서 사람들의 머리 높이를 균등하게 맞추는 방식이다. 간음한 여인과 손바닥을 펴서 군중의 공격에 대한 저지, 만류, 반대하는 예수와 노란 옷을 입은 늙은 율법학자를 전면 중앙에 하나로 묶고, 손가락을 치켜들고 모세의 율법을 들먹인 남자, 병장기류를 든 군인 등 여인의 처벌을 요구하거나 예수의 반응을 떠보는 주변 무리를 묶어서 두 그룹 사이에 긴장감 넘치는 대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1814년 나폴레옹의 여동생 캐롤린 뮈라의 의뢰를 받아 그린 작품이다. 오달리스크는 터키어 오달릭(odalik)에서 유래한 말로, 규방의 여인을 뜻한다. 여인의 나체를 극도로 미화한 작품으로 나폴레옹 제국의 멸망으로 인해 주문자로부터 값을 치르지 못해 화가의 손에 남겨졌다. 앵그르의 스승은 자크 루이 다비드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
대관식 당시 조세핀은 마흔이 넘었는데 우아한 여인으로 묘사되었다.
전통적인 대관식에는 교황이 황관을 씌워주는데 나폴레옹은 본인 스스로 황관을 쓰는 쪽을 선택했다. 이로 인해 교황 피우스 7세는 나폴레옹 뒤쪽에 앉아 단지 축복하는 손짓만 하고 있다.
황관을 받는 인물은 그의 처남이자 나폴리 국왕인 뮈리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 은 나폴레옹의 대관식 3개월 전인 1804년 9월 황제로부터 직접 청탁을 받아 그린 작품으로 2년의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하였다. 1804년 7월 국민투표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12월 2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에게 직접 황관을 씌워 준 후 본인은 스스로 양손으로 황관을 썼다. 전통적인 대관식에는 교황이 황관을 씌워주는데 나폴레옹은 본인 스스로 황관을 쓰는 쪽을 선택했다. 이로 인해 교황 피우스 7세는 나폴레옹 뒤쪽에 앉아 단지 축복하는 손짓만 하고 있다. 대관식 당시 조세핀은 마흔이 넘어 는데 우아한 여인으로 묘사되었다.
황관을 받는 인물은 그의 처남이자 나폴리 국왕인 뮈리이고 조세핀의 두 시녀 뒤의 선 다섯 여인들은 나폴레옹의 여형제들로 첫 번째 여인이 데리고 선 사내아이는 나폴레옹과 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 나폴레옹 샤를이다. 황관을 받는 인물 뒤의 그림 중앙에 앉아 있는 여인은 나폴레옹의 어머니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의 맹세"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의 맹세”는 1783년 루이16세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신고전주의의 첫 작품으로 출장 전 호라티우스 형제를 묘사한 작품이다. 기원전 669년경에 로마와 알바(Albains)의 전쟁에서 싸웠던 사돈관계의 두 가문의 아들들, 즉 로마 호라티우스 가문의 세 형제와 알바의 큐라티우스 가문의 세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토대로 한 것이다.
그림의 왼쪽은 호라티우스 형제의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세 자루의 칼을 주면서 제국을 위한 죽음이나 전쟁의 승리를 맹세하게 있고 오른쪽은 고통스러워하는 큐라티우스로 시집 갈 누이 카밀라, 큐라티우스에서 시집온 아내 사비나 그리고 어린 손자를 감싸 안고 있는 어머니가 그려져 있다.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1819년 작품으로 1816년 7월 2일 영국에서 프랑스로 반환된 세네갈의 생루이 섬에 정착하기 위해 약 400명을 태운 군함 메두사호가 좌초되어 13일 동안 표류하였고 15명만 구조된 비극적인 사건을 그렸다.
작품은 생존자들이 13일간의 표류 뒤 수평선 멀리 구조선을 발견하는 순간을 묘사하였다. 먼 곳에서 지나가는 배를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드는 인물들과 무릎에 놓인 죽은 아들을 애도하는 아버지, 뗏목 가장자리에 곧 파도에 떠내려갈 듯한 시체들 등 피라미드 구도다.

역사화가 폴 들라로슈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역사화가 폴 들라로슈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1850년도 유화 작품으로 1800년 봄 이탈리아에 주둔한 오스트리아군을 기습 공격하기 위하여 제2차 이탈리아 원정 때 나폴레옹 보나파트트의 모습이다. 말 대신 노새를 타고 알프스 설산 그랑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하는 모습으로 추위를 막기 위하여 회색 코트를 입었으며 차갑고 힘겨워하는 분위기로 실제 모습에 가깝도록 표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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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위대한 작가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자 앤소니 퀀 주연의 영화 노트르담의 곱추의 배경이 된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 고딕의 대표 양식으로 시테섬에 위치하고 있다. 독일의 쾰른 대성당,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과 함께 중세 고딕 양식의 3대 성당에 포함되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1,302년 필리프 4세 때 삼부회가 개최되었고 1,455년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이 열렸다. 또한 1,804년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고 드골이 프랑스 해방을 축원하며 국가를 불렸고 프랑스 전 대통령 미테랑의 장례식도 치러졌다. 그리고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길이 127m, 너비 48m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원안에 꽃을 그려 넣은 로자스(rosace)를 중심부로 상단에는 양쪽으로 우뚝 솟아오른 사각기둥의 탑과 하단에는 3개의 출입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2019415일 오후 650분경 대성당 지붕에서 발생한 화재(火災)로 탑과 그 주변의 지붕이 붕괴되었고 화재는 약 10시간 만에 진압되었다. 프랑스 국민에게 노트르담 대성당의 상징성은 매우 커서 화재 충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현재 재건 및 복구 중이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24년까지 복구를 완료 하겠다고 한다. 2017년 파리 여행 때 노트르담 대성당 추억을 돌이켜 본다.

하단의 출입문 3개 중 왼쪽 문으로 성모 마리아가 조각되어 있다.

1160년 파리의 부주교였던 쉴 리가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기 위해 짓기 시작하여 200년이라는 공사 기간을 거쳐 1363년에 완공되었다. 노트르담의 뜻은 우리들의 귀부인이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를 가리킨다. 길이 127m, 너비 48m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원안에 꽃을 그려 넣은 로자스(rosace)를 중심부로 상단에는 양쪽으로 우뚝 솟아오른 사각기둥의 탑과 하단에는 3개의 출입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의 로자스 바로 앞 3명의 조각상은 가운데가 성모 마리아이고 좌우에는 아담과 이브인데 성당 정면의 모든 조각과 장식들이 이 조각상에 경의를 표하는 구도로 설계되었다. 성모 마리아, 아담과 이브의 조각상아래에는 28명으로 이루어진 제왕들이 떠받치고 있다. 가고일(gargoyle)을 비롯하여 성당 처마에 달려 있는 다양한 낙수받이 조각상 또한 보는 이의 흥미를 자극시킨다.

하단의 출입문 3개 중 가운데 문은 최후 심판의 문, 왼쪽 문은 성모 마리아, 오른쪽은 성녀 안나 각각 조각되어 있다. 성당내부는 성경 내용을 주제로 조각되었고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이 특히 뛰어나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뒤쪽은 예쁜 화초로 정원이 가꾸어져 있어 여행으로 지친 몸을 조용히 다독거리기에 좋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또 다른 볼거리는 푸앵 제로(Point Zero)이다. 노트르담 정문에서 앞으로 약 50m 떨어진 바닥에 있는 표지판으로 파리와 유럽 각 도시간의 고속도로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점이다. 예를 들어 여기서 디종까지 거리는 310km이다. 푸앵 제로의 기원은 중세 시대 죄수들이 대주교관의 문 앞에서 공개 참회를 했던 장소가 현재 푸앵 제로의 위치다.

푸앵 제로(Point Zero)는 바닥에 있는 표지판으로 파리와 유럽 각 도시간의 고속도로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점이다. 기원은 중세 시대 죄수들이 대주교관의 문 앞에서 공개 참회를 했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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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혁명 100돌 기념하기 위해 공학자 귀스타브 에펠에 의해 파리 만국 박람회 때 만들어졌다. 현재 프랑스의 유료 관광 명소 1위이다.
에펠탑은 1930년대 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로 324m. 무게 10,000톤으로 1964년에 프랑스 국가유산, 199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에펠탑을 만들 당시에는 문학가 모파상을 비롯한 보수 지식인들은 파리의 품격과 격조를 떨어뜨린다고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탑이 완공되고 관광객에게 개장했을 때, 유럽 각 국의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5개월 만에 2천만 명이나 이르렀고 반대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승강기를 이용하여 에펠탑 전망대에서 파리를 조망하고자 한다면, 1~2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현장에서 1~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에펠탑에는 전당대가 1층 전망대(57m), 2층 전망대(116m), 꼭대기 전망대(276m) 등 3곳이 있다. 2층 전망대에는 기념품 Shop, 레스토랑 등 있는데 여기 레스토랑을 이용하려면 3~4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당연히 꼭대기 전망대에서 보아야만 파리의 모습이 그려진다.

꼭대기 전망대(276m)에서 바라 본 파리시내와 세느강

승강기를 이용하여 에펠탑 전망대에서 파리를 조망하고자 한다면, 1~2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현장에서 1~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계단을 이용하면 바로 올라 갈수 있는데 “Stair Only”라고 표기 된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에펠탑의 진면목은 밤에 있다. 낮에는 경쾌한 모습이지만 밤에는 아름답지 못해 화려하다. 마치 밤을 깨우는 전령사 같다. 3만개가 넘는 전구와 스포트라이트 조명은 새벽 1시까지 탑을 밝히는데 저녁 7시부터는 정시마다 5분간 플래시 조명이 별처럼 반짝인다.

밤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에펠탑

특히 파리 야경을 감상하고자 한다면 세느강 유람선을 타면 더욱 기억에 남는 파리가 될 것 같다. 대표적인 유람선이 바토무슈 크루즈다. 유람선 코스는 앵발리드와 앵발리드 다리, 알렉상드로 3세 다리, 팔레 부르봉 왕궁과 콩코르드 다리 등 시작으로  오르세 미술관, 시테 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끝으로 시테 섬을 돌아서 콩시에르주리 왕궁 등 지나서 바토무슈 크루즈 선창장에 도착한다. 다양한 다리도 많이 볼 수 있어 파리 야경을 만끽할 수 있다.

바트무슈 유람선 선착장
유람선에서 바라 본 에펠탑
알렉상드로 3세 다리. 세느 강에 있는 다리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다. 1892년 프랑스와 러시아가 동맹을 체결 할 때 당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로 3세 이름의 따서 1900년 프랑스 만국박람회 기념으로 만들어 졌다.
팔레 부르봉 왕궁과 콩코르드 다리. 팔레 부르봉 왕궁은 루이14세 때 지어진 궁전으로 지금은 프랑스 하원 회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르세 미술관
노트르담 대성당
콩시에르주리 왕궁은 프랑스 초기 왕들의 왕궁으로 프랑스 혁명 때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퐁뇌프 다리.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앙리3세 때 짓기 시작하여 앙리4세 때 완공되었다. 영화 "퐁 뇌프의 연인들"의 배경이 된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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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베르사유와 함께 프랑스 3대 관광지 중 한 곳인 몽생미셸은 프랑스 북부 영국해협을 마주하고 있는 바스노르망디 망슈(Manche) 주의 생미셸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수도원이다. 생미셸 산은 92m 높이의 화강암으로 된 바위산으로 산의 형태에 따라 수도원을 아래에서 조금씩 지어 올렸고 수도원의 구성은 예배당(Chapelle)과 라 메르베유(La Merveille, 불가사의)로 나누어져 있다.

멀리 옥수수밭 위에 떠 있는 몽생미셸

조수간만의 차이가 유럽에서 가장 크고 10 ~ 15m의 수면 차이로 밀물 때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노을이 질 때 매우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밀물 때도 상관없이 몰생미셸로 갈수 있는 다리

708년 이곳에서 아브랑슈의 오베르 주교의 꿈에 대천사 미카엘 계시를 3번이나 받고 바위산에 수도원을 짓기 시작했고 유럽인의 성지 순례지로 유명해졌다. 966년 미로처럼 꾸며진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원이 세워졌고 그 아래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고 14세기에는 마을이 바위산 바로 아래까지 확장되었다.

12세기 수도원 주변에 성벽을 쌓으면서 백년전쟁 때 난공불락의 요새로 사용되어 영국군의 총공세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수도원은 프랑스 대혁명 때 해산되었고 1863년 까지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1874년에 사적기념물로 되면서 대대적인 복원공사가 시작되었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등록되었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성 미카엘(Michael) 대천사 숭배

오베르 주교

천사 군단의 수장인 성 미카엘은 중세의 중교적 감수성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성 미카엘은 신약성경 요한 묵시록에 악마의 상징인 용과 맞서 싸워 무찌르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내세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던 중세인들에게 성 미카엘은 최후의 심판일에 죽은 자를 인도하고 인간의 영혼을 저울에 다는 인물이다.

708년 아브랑슈의 오베르 주교가 꿈에 대천사 미카엘부터 계시를 받는 모습

성 미카엘에 대한 숭배는 492년 몬테 가르가노(이탈리아)에 최초의 성소가 건립되면서 5세기말에 등장하게 된다. 1,000년 경에는 성 미카엘을 기리는 교회와 예배당이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주로 언덕이나 갑()의 상단에 세워졌다. 백년전쟁 후에는 몽생미셸이 영국군에 저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서 성 미카엘에 대한 숭배가 새로운 차원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숭배는 반종교개혁과 함께 새롭게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교회의 입장(구교)에서 볼 때 오직 군대를 이끄는 천사만이 프로테스탄트 이단(신교)에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믿었다.

천사 군단의 수장인 성 미카엘

기독교의 도상에서 성 미카엘은 흔히 칼과 저울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전통과 민간종교는 성 미카엘을 무기와 저울에 관련된 모든 직종의 사람들과 기사들의 수호성인으로 만들었다.

수도원은 프랑스 대혁명 때 감옥으로 1863년 까지 사용되었다.

현재 몽생미셸 수도원 안에는 상업시설이 있어 식당에 들러 나폴레옹도 즐겨 먹은 굴 요리를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또한 노르망디 지방에서 나는 치즈 또한 유명하니 식당에서 주문할 때 참고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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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인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에는 19세기 부자들, 뉴욕 은행원이나 사업가들이 여름휴양을 보낸 뉴포트가 있다. 지금도 Belle-vue Ave에는 호화로운 저택과 식민지 풍의 건물이 남아 있고 요트와 음악축제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서양을 마주 보고 있는 19세기 뉴포트 호화별장(Mansions)은 뉴포트 컨트리 보존협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브레이커스(Breakers), 로즈 클리프(Rose cliff), 마블하우스(Marble House), 킹 스코트(Kings cote), 일름(Elms), 샤토 쉬르 메르(Chateau-sur-Mer) 등의 별장이 있다.

별장을 구경하려면 우선 Ticket을 구매해야 입장이 되는데 Ticket 종류에는 5개 별장을 구경할 수 있는 통합 Ticket, 브레이커스 별장에다 추가 별장을 볼 수 있는 Ticket, 브레이커스 별장만 보는 Ticket 그리고 다른 별장을 보는 등이 있다. Ticket 값은 좀 비싸다.

뉴포트의 대표 별장은 역시 브레이커스다. 시간 일정 때문에 브레이커스와 로즈클리프만 보기로 했다. 1895년에 지어진 궁전 같은 브레이커스는 70개의 방이 있고 코넬리우스의 밴드빌트2세를 위해 지은 건물이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따르고 있다. 로즈 클리프는 뉴포트에서 가장 큰 무도실을 갖추고 있고 베르사유의 그랑 트리아농을 닮았다.

별장관련 클리프 워크(Cliff Walk) 산책로를 걸으면 해안 따라 지어진 뉴포트 별장과 대서양의 푸른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클리프 워크(Cliff Walk) 산책로 구간은 Memorial Blvd와 베일리스 비치(Bailey’s beach)사이로 구간거리는 3.5마일이다. 뉴포트 별장 위치는 베일리스 비치와 가깝다.

뉴포트 맨션을 출발하여 포트 아담스 주립공원 도착 전 만난 해변

축제 장소로 유명한 포트 애덤스(Fort Adams) 주립공원은 1800년대 중반에 지어진 포트 애덤스 요새를 중심으로 한 공원이다. 공원에서는 재즈, 포크 등 다양한 음악축제가 열리고 소풍 및 일광욕을 즐기는 곳이다. 때 마침 자동차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는데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차를 전시하고 있었다. 사진에 담으려고 촬영 양해를 구하니 흔쾌히 승낙하였는데 본인 자동차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하였다. 역시 미국은 자동차 나라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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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년 영국인 탐험가 존 스미스가 지금의 매사추세츠 주, 로드아일랜드 주, 코네티컷 주, 버몬트 주, 뉴햄프셔 주, 메인 주 등 여섯 주를 뉴잉글랜드라고 명명하였다. 뉴잉글랜드는 지리적으로 서쪽으로는 애팔래치아산맥이 경계를 이루고 동쪽으로는 대서양과 접해 있다.

워싱턴 산을 비롯하여 소나무, 전나무 등 숲이 장관을 이루어 가을이 특히 아름답다. 미국의 철학자, 시인, 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의 월든(Walden)의 배경인 월든 호수(Walden Pond)와 오두막(Site Of Thoreau’s Cabin)이 콩코드에 있다.

대서양과 인접하여 바다가재, 조개, 굴 등 해산물이 풍부하고 대합과 감자, 우유로 만든 클램 차우더(Clam Chowder) 등 해산물 음식이 유명하다. 큰 사이즈의 바다가재도 마트에서 비싸지 않는 가격으로 쪄서 팔기 때문에 숙소에서 먹을 수 있다. 옛 생각에 한국 Costco에서 클램 차우더(Clam Chowder) 통조림을 사서 먹었는데 예전 맛이 아니었다.

특히 바다가재는 많이 잡히는 여름에 가장 싸다. 보스턴에 있는 마트에 가면 품질 좋은 소고기와 유제품을 구입할 수 있고 스테이크 용 소고기는 맛이 아주 좋다. 뼈도 저렴하게 구입하여 곰국으로 요리해서 먹으면 또한 좋고 우유와 요구르트 류 또한 맛이 좋다.

1819세기 뉴잉글랜드는 교육, 상업, 의술 등 발달하였고 제조업으로는 조선업, 면방직, , 신발, 기계류를 생산하는 대형 공장이 즐비했다. 또한 고래잡이를 비롯한 어업도 유명했다. 지금은 금융, 보험, 컴퓨터, 소프트웨어, 생물공학, 관광이 주요 산업이다.

전통적으로 뉴잉글랜드 지역 주민은 수줍음이 많고 소박하다. 이런 점은 말수가 적고 검소한 생활에서 비롯되었다. 여행객 입장에서는 신중함과 쌀쌀함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사실은 약간 점잖은 스타일이라 생각하면 된다.

미국의 지명에는 캠브리지, 옥스퍼드, 맨체스터, 리치몬드, 런던, 우스터, 포츠머스 등 유독 영국 지명이 유난히 많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미지의 땅 신대륙에 도착한 식민지 개척자들이 본능적으로 고국의 지명을 붙였고 영국과 비슷한 풍경이나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도 영국 지명을 사용했다. 이외에도 제임스타운이나 엘리자베스 빌, 리치몬드처럼 왕, 여왕이나 공작이름을 딴 지명도 있다.

심지어 이름뿐 아니라 특성까지 공유한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대학 도시 케임브리지와 매사추세츠 주 하버드 대학과 MIT 공대이다.

뉴잉글랜드의 중추이자 역사의 도시 보스턴

보스턴은 뉴잉글랜드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역사의 도시이다. 미국 첫 공립학교인 보스턴 라틴 스쿨이 1635년에 건립되고 1년 후에 하버드 칼리지가 생겼다. 최초 13개 식민지에서 발간한 신문도 1704년 보스턴에서 첫 선을 보였다. 또 보스턴은 독립전쟁 당시 영국 통치에 대항한 중심지였다. 1770년 보스턴 차사건, 1775년 벙커 힐 전투는 자유를 위한 대표적인 투쟁의 사례로 남아있다.

오늘날 보스턴 권역은 미국 교육을 견인해 나가는 곳이다. 전자공학, 생물공학, 의학 그리고 금융은 보스턴의 교육 자원이 배출한 중요 사업이며, 예로부터 보스턴은 미국에서 지식인 사회의 리더 역할을 맡아왔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없어 중간 경유지에서 환승하여만 보스턴에 갈 수 있었다. 그 당시 여행에서는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경유지 중 시카고 오해어 공항에서 환승하여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으로 보스턴에 도착하였다.

보스턴은 렌터카로 운전하기가 무척 힘들다. 좁은 일방통행도로가 많고 주차하기가 힘들며 주차료마저 비싸다. 그래서 시내 여행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으며 매사추세츠 항만교통공단(MBTA)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이때 지하철 표시를 T로 나타내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항상 느끼는 것이 깔끔하고 깨끗한 우리나라 지하철이 최고라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이용하고 필수적인 시설은 민간 기업이 아닌 국가가 관여하는 것이 국민이 생활하기가 좋은 나라이다.

관광차량을 이용하는 방법은 Boston Duck Tours트롤리 투어있다. Boston Duck Tours2차 세계대전 때 쓰이던 수륙양용 차, 일명 오리차를 타고 수로와 육로로 보스턴 관광을 하는 것이 있고 트롤리 투어는 시티 투어 버스처럼 보스턴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다.

그리고 도보로 여행하는 것도 좋다.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 자유의 길이라고 불리는 여행코스로 식민지 시대와 독립전쟁 시기의 주요 유적지 16곳을 두 줄의 붉은 벽돌 길로 조성한 것으로 벽돌 길을 따라 도보로 미국 건국 역사 여행을 하는 것이다. 보스턴 코먼 공원에서 출발하여 찰스 타운에 있는 USS Constitution 호 까지 여정으로 총 2.5마일(4km)거리다.

보스턴 코먼 공원은 1634년에 조성 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공원내에는 보스턴 학살 기념비와 남북 전쟁 전사자 기념비가 있다USS Constitution 호는 1797년에 건조되어 현재 미 해군이 보유한 군함 중 가장 오래 된 군함이며 Old Iron sides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보스턴에는 명문 하버드 대학과 메사추세츠 공과 대학(MIT)이 케임브리지에 있다. 하버드 Square 중심으로 약 3만 명의 대학생이 젊음의 도시로 이끌어 가고 주변에는 서점, 카페가 즐비하며 거리 공연도 볼 수 있다. 또한 주변 찰스 강에는 매년 10월 대학 조정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무료 야외 공연도 있어 대학도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하버드 대학은 1636년에 창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이며 케네디를 비롯한 6명의 대통령과 33명의 노벨상 수상자 등 인물들을 배출해 낸 곳으로 1500의 부지에 400개 이상의 건물이 있다.

MIT1861년에 창립되어 공학, 이학, 건축학, 인문과학분야에서 수많은 공적을 쌓았으며 유능한 과학자를 배출해 낸 세계 제일의 공과대학이다546의 부지에 80개 이상의 건물이 있다.

오늘날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대부분의 대학은 본래 각 종파의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되었으며 하버드대학(1636)은 퓨리턴 성직자, 프린스턴 대학(1701)은 장로교 성직자, 월리엄 메리 대학(1747)은 영국 국교도 성직자 육성을 위해 각각 설립되었다.

보스턴 미술관은 세계 4대 미술관 중 하나이다. 사실 미국에 있는 미술관이지만 미국 관련하여 볼 것은 빈약하며 주로 그리스·로마 미술, 인상파 미술 등 유럽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다. 일반인용 입장권을 구입하면 30일 이내에 2번사용 가능하다.

매사추세츠 주 의사당은 마치 이슬람 사원을 연상케 하는 금빛 돔형의 건물로 1789년에 지어졌다. 의사당 내에는 독립전쟁에 관한 물건들과 플리머스 식민지사 등의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여행객과 예술가들의 메카 프로빈스타운(Provincetown)

반도인 Cape Cod는 보스턴에서 가장 가까운 휴양지이고 반도 길이가 65마일이다. 가장 오래 된 마을 샌드위치(Sandwich), 유서 깊은 건물이 많은 두 번째 큰 마을인 팰머스(Falmouth)와 우즈홀(Woods Hole)이 있고 해안선, 연못, 습지 등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채덤(Chatham)에서 프로빈스타운(Provincetown)까지 국립해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프로빈스타운은 Cape Cod의 끝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술로 유명한 마을이다. 모래 위 산책과 해변 숲을 자전거 타기에 좋다. 1620년 필그림이 신대륙 땅에 맨 처음 발을 내딛은 곳이 바로 또한 이곳이다. 여기서 그들은 5주 동안 머문 곳으로 알려져 있다.

Commercial St에서 여장남자와 동성애자들의 화려한 축제가 있고 게이들의 활동도 많다. 여행 당시, 게이 둘이 2인용 자전거를 화려하게 꾸며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마치 신혼여행 하는 모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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